가장 위험한 짝꿍, 완벽주의 햄스터와 미루기 청개구리의 결합
시험이 2주 남았습니다.
당신은 이번 시험에서 반드시 올 1등급 혹은 토익 900점을 넘기겠다는 비장한 목표를 세웁니다.
계획표도 아주 촘촘하게 완벽하게 짰습니다. 그럼 당신은 완벽주의 햄스터형이겠죠?
그런데 막상 책상에 앉으니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하지? 실수해서 점수 안 나면 어떡하지?'
갑자기 숨이 막혀옵니다. 그때 뇌 속의 다른 자아가 속삭입니다.
"야, 머리 아프다. 일단 유튜브 딱 하나만 보고 머리 식히고 하자."
미루기 청개구리형의 전형적 모습이죠.
그렇게 당신은 3시간 동안 유튜브를 봅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밤 11시
이제 완벽한 계획을 지키는 건 불가능해졌습니다.
"아, 망했네. 완벽하게 못 할 바엔 그냥 자고 내일 새벽에 하자."
그리고 다음 날, 불안감은 두 배가 되고,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또다시 도망칩니다.
결국 시험 전 날 밤, 울면서 벼락치기를 합니다.
"난 진짜 이것도 못 하는 사람인가 봐."
혹시 이 지옥 같은 루프가 남 일 같지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가장 고치기 힘들다는 완벽주의 햄스터와 미루기 청개구리의 복합형, 즉 '완벽주의적 미루기'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겉보기에 모순적입니다.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목표가 높지만(완벽주의 햄스터형), 행동은 누구보다 느리고 무겁습니다. (미루기 청개구리형)
주변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렇게 걱정되면 그냥 빨리 시작하면 되잖아?"
하지만 당사자는 정말 답답한 상황입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니까요.
이 유형의 마음속에서는 지금 두 개의 마음이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완벽주의 햄스터 : 반드시 최고가 되어야 해! 실패는 용납 못 해! (엄청난 압박감이 형성됩니다)
미루기 청개구리 : 그 압박감 너무 무서워... 도망칠래! (회피 본능이 발동됩니다)
목표가 높을수록 두려움이 커지고, 두려움이 커질수록 더 강하게 미루게 됩니다.
마치 자동차의 엑셀(욕심)과 브레이크(공포)를 동시에 밟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차는 움직이지 못하고 엔진만 과열되어 터지기 직전인 상태, 그게 바로 이 유형의 마음입니다.
이 유형의 핵심은 역설에 있습니다.
당신은 미루는 이유는 공부가 하기 싫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공부를 너무 잘하고 싶어서입니다.
대충 해도 된다는 사람은 미루지 않습니다. 그냥 대충 해서 끝내버리죠.
하지만 당신에게 대충은 죽음과 같습니다. 당신의 무의식에는 이런 무시무시한 공식이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결과물은 나의 무능한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뇌는 어설픈 시작을 하느니 차라리 아예 안 하는 상태를 선택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0점이지만, 노력을 안 해서 못한 거야라는 핑계는 남길 수 있으니까요.
이 지독한 결합을 끊어내려면, 햄스터의 기준을 낮춰서 청개구리를 안심시켜야 합니다.
가장 강력한 심리기법은 쓰레기 같은 초고 전략입니다.
미국의 유명 작가 앤 라모트가 제안한 이 방법은 완벽주의자들에게 망칠 권리를 허락하는 것입니다.
공부하기 전 스스로에게 이렇게 선언하세요.
"지금부터 나는 공부를 하는 게 아니야. 그냥 쓰레기 같은 오답노트를 만들 거야."
"지금 쓰는 에세이는 어차피 버릴 거야. 세상에서 제일 엉망으로 써 보자."
글씨? 개발새발 씁니다. 논리? 개나 줘버립니다. 이해? 못해도 그냥 넘어갑니다.
신기하게도 망쳐도 된다, 쓰레기를 만들자고 목표를 확 낮추는 순간, 공포에 질려 있던 청개구리는 굴 밖으로 나옵니다.
비록 엉망이라도 시작해서 결과물이 나오면, 완벽주의 햄스터가 등판할 차례입니다.
햄스터는 수정하고 다듬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백지를 채우는 건 어렵지만 채워진 쓰레기를 고쳐서 명작을 만드는 건 제일 잘하는 일입니다.
진입 장벽을 바닥까지 낮추세요. 이 유형에게 시작은 에베레스트 등반과 같습니다.
진입장벽을 문지방보다 낮게 깎아야 합니다.
문제 1단원 푸는 게 어려워 청개구리가 도망간다면, 문제집 펴서 날짜만 적으세요.
'겨우 날짜 적는 게 무슨 공부야?'라고 비웃지 마세요.
당신의 뇌에게 일단 진입했다는 신호를 주는 게 핵심입니다.
날짜를 적고 나면 펜을 든 김에 1번 문제라도 읽어보게 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니까요.
당신이 겪는 이 고통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성장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증거입니다.
그 거대한 에너지가 두려움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방향만 살짝 틀어주면 됩니다.
기억하세요.
오늘 당신의 목표는 100점이 아닙니다. 엉망진창 1분 버티기입니다.
자, 이제 그 무거운 갑옷 벗어던지고, 기꺼이 망치러 가 볼까요?
결과가 아닌 과정을 상상하라 (프로세스 시뮬레이션)
완벽주의자들의 뇌는 항상 희망적 결과(성공한 나, 시험 100점 맞은 나 등)와 현재(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사이에 간극을 계산합니다.
간극이 클수록 공포심을 느끼는 뇌의 편도체가 비상벨을 울리고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이거이 얼어붙는 현상입니다.
이때 뇌를 속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정 시뮬레이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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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잘 봐서 합격하는 상상은 결과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에 좋은 상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의 초라함만 부각되죠.
그래서 좋은 상상은 의자를 빼고 앉은 소리를 상상하거나, 책상에 앉아 따듯한 커피잔을 감싸 쥐는 상상을 하거나 패드나 노트에 글을 쓸 때 펜의 사각사각 소리를 상상하는 등입니다.
뇌과학적으로 구체적인 행동 과정을 상상하면 우리 뇌의 운동피질이 활성화되면서 실제로 그 행동을 할 준비를 마칩니다.
뇌에게 이건 무서운 평가가 아니라 그냥 단순한 움직임이라고 안심시키는 것입니다.
10초만 눈을 감고 펜을 잡는 느낌만 상상해 보세요.
놀랍게도 공포가 가라앉습니다.
절친에게 조언하기 기법 (이중 잣대 알아차리기)
인지행동치료에서는 완벽주의자들의 많은 문제를 이중잣대라고 봅니다.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나에게만 가혹한 기준을 들이대는 거죠.
이건 인지적 오류의 한 유형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공부를 미루고 자책하고 있는 친구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 완벽하게 하려다가 무서워서 하나도 못했어. 나 정말 최악이야."
이럴 때 당신은 뭐라고 말해 줄까요? "그래, 넌 최악이야. 포기하는 게 나아."라고 말할까요?
아마 절대 그렇지 않을 거예요. 아마 이렇게 말해 주겠죠.
"괜찮아. 누구나 그럴 수 있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일단 한 줄이라도 써보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바로 그 따스하고 합리적인 말을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해 주면 어떨까요?
종이를 반으로 나눠서 써보세요.
왼쪽엔 나를 비난하는 생각(난 게으르고 의지가 약해 등)을,
오른쪽엔 친구에게 해 줄 법한 응답(불안해서 그랬던 거구나. 괜찮아. 작게라도 시작해)을요.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스스로를 좀 더 객관적이고 부드럽게 대할 수 있습니다.
일부러 불안전하게 해 보기 실험(두려움과 친해지기)
완벽주의자에게 실수는 두려운 일입이다.
이 두려움을 줄이기 위해 인지행동치료에서는 행동실험을 활용합니다.
실수가 정말 큰 일인지 직접 경험해 보는 거예요.
오늘의 작은 실험을 이렇게 정해 보세요.
오늘 문제집 10문제 풀 때, 10문제 중 2문제는 의도적을 대충 풀어보기.
정말로 일부러 불완전하게 풀어보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일부러 대충 풀었어.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지? 세상이 무너졌나? 내 가치가 사라졌나?"
대부분의 경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뇌는 조금씩 배우게 됩니다. 불완전해도 괜찮구나. 실수해도 안전하구나.
이런 감각을 천천히 익혀가는 것이 완벽주의적 미루기를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