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제2의 뇌다: 의지력을 아끼는 공간의 비밀

내 의지를 믿지 말고, 내 책상을 믿으세요

"아인슈타인 책상 봤어? 천재들은 원래 책상이 지저분하대. 나도 그래서 안 치우는 거야."


시험기간, 산더미처럼 쌓인 책상을 보며 이런 핑계를 대본 적이 있나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연결해야 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는 약간의 무질서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려는 건 창의적인 예술활동이 아닙니다.

지루한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공부죠.

집중이 목표라면 당신의 그 지저분한 책상은 뇌를 가장 빨리 지치게 만드는 독극물입니다.


당신의 눈은 쉴 새 없이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우리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시각정보처리에 쓰입니다.

눈을 뜨고 있는 한, 눈앞에 보이는 모든 물체를 스캔하고 분석합니다.

책상 위에 놓인 커피잔, 굴러다니는 영수증, 일본여행에서 사다 놓은 피규어 등등

당신은 신경 안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의 무의식은 1초에도 수십 번씩 이 물건들에 주의를 빼앗깁니다.


이것을 시각적 소음이라고 합니다. 마치 시끄러운 공사판 옆에서 공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귀가 아니라 눈이 시끄러운 상태죠.

책상 앞에 앉기만 해도 피곤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눈앞의 잡동사니들이 당신의 인지적 배터리를 야금야금 방전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의지력은 소모품이다

우리는 흔희 의지로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뇌과학적으로 가장 미련한 소리입니다.

의지력은 아침에 충전되었다가 저녁이면 방전되는 배터리와 같습니다.

스마트폰이 책상 위에 있으면 당신은 공부하는 내내 스마트폰을 보고 싶다는 욕구와 참아야 한다는 의지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합니다.

설령 스마트폰을 보지 않았더라도 참는 과정에서 이미 엄청난 의지력을 소모해 버립니다.

정작 공부에 써야 할 에너지를 유혹을 참는 데 다 써버리는 꼴이죠.


진짜 고수는 의지력으로 유혹과 싸우지 않습니다. 애초에 싸울 일이 없게 만듭니다.

그게 바로 환경설계입니다.


저절로 공부하게 만드는 넛지 전략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으로 타인의 선택을 부드럽게 유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원리를 책상 위에 적용하면 의지력을 1%도 쓰지 않고 공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간단합니다.

1. 나쁜 행동, 즉 딴짓은 하기 귀찮게 만든다.

2. 좋은 행동, 즉 공부는 하기 쉽게 만든다.


나쁜 행동의 진입장벽은 높이고, 좋은 행동의 진입장벽은 낮추는 것입니다.


전략 1 스마트폰 감금하기(20초의 법칙)

하버드대의 숀 에이커 교수는 '20초의 법칙'을 제안했습니다.

나쁜 행동을 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20초만 늘려도, 뇌는 귀찮아서 그 행동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자주 보는 습관을 없애기 위해

하수는 스마트폰을 책상에 뒤집어 놓습니다.

중수는 가방 안에 넣습니다.

고수는 서랍 깊숙이 넣어두거나 아예 다른 방에 둡니다.


"폰 보고 싶은데, 거실까지 나가서 보기 귀찮네. 공부나 더 하자."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당신의 귀차니즘을 오히려 활용해서 스마트폰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의지력으로 버티려 하지 말고, 물리적 거리를 이용하세요.


전략 2 '공부의 활주로' 깔아 두기

비행기가 이륙하려면 긴 활주로가 필요하듯 공부도 시작하기 위한 활주로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활주로를 매번 새로 까는 데 에너지를 다 써버린다는 것입니다.


공부하려고 자리에 앉았을 때,

가방에서 책을 꺼내고,

필통을 찾고,

지난번에 어디까지 했는지 페이지를 찾고,

어떤 과목부터 할지 고민합니다.


이 과정에서 뇌는 벌써 '아, 귀찮아'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시동을 거는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잠깐만 유튜브 보고 할까' 하는 유혹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공부를 마치고 일어날 때, 내일 공부할 활주로를 미리 깔아 두세요.


실전팁 1 - 내일의 미션을 구체적으로 적어둡니다.

'수학공부 (X)', 너무 막연해서 뇌가 거부합니다.

'수학문제집 34-37쪽 풀고, 틀린 문제 오답 정리 (O)', 앉자마자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실전팁 2 - 첫 5분 동작을 미리 정해둡니다.

'영어공부' 대신 영단어장 펴고 1번부터 20번까지 읽기'처럼, 시작 후 정확히 5분 동안 할 행동을 구체적으로 정해 두세요.

뇌는 시작을 가장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일단 5분만 굴러가면, 그다음은 관성의 법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마치 무거운 바위를 밀기 시작하면 점점 쉬워지는 것처럼요.


실전팁 3 - 준비물을 미리 세팅해 둡니다.

내일 풀 문제집을 펴서 해당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아두고, 필기도구, 노트까지 책상 위에 일렬로 배치하세요.

"어디 있더라?" 하고 찾는 그 3초, 5초가 쌓이면 귀차니즘 모드로 다시 전환됩니다.

손이 자동으로 펜을 잡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실전팁 4 - 어제의 나에게 힌트를 남깁니다.

공부하다가 막힌 부분이 있나요? 그 옆에 내일 이 개념 검색해서 보기라고 메모를 남기세요.

이해가 잘 안 되는 문제가 있었나요? 이 문제 선생님께 질문하기라고 표시해 두세요.

다음 날, 당신은 '어디서부터 시작하지?'가 아니라 '여기 이어서 하면 되겠네'하고 자연스럽세 시동을 걸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책상에 앉자마자 고민 없이 바로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활주로를 깔아 두는 진짜 이유입니다.


전략 3 한 가지만 원칙

책상 위에는 지금 당장하고 있는 한 가지만 놓으세요.

수학을 한다면 수학문제집과 노트만. 영어를 한다면 영어 교재만.

나머지는 전부 서랍이나 책장에 넣어 두세요.


"나중에 할 거니까 미리 꺼내놓는 거야"라고 변명하지 마세요.

그 나중에 할 것들이 지금 당신의 시야를 어지럽히고, 뇌에 아직 해야 할 게 이렇게 많아라는 압박감을 줍니다.

한 과목을 끝내고 다음 과목으로 넘어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끝난 것은 치우고, 새로운 것을 꺼내세요.

이 작은 의식이 뇌에게 이제 새로운 시작이야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책장은 당신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

지금 당신의 책상을 한번 바라보세요.

어지럽게 널려 있는 물건들은, 지금 당신의 복잡하고 산만한 머릿속과 닮아 있지 않나요?


책상을 정리하는 건 단순히 청소가 아닙니다.

흩어진 마음을 정돈하고, 이제 집중하겠다고 뇌에게 보내는 가장 강력한 선전포고입니다.

깨끗한 책상은 깨끗한 정신 상태를 만들고, 깨끗한 정신 상태는 깊은 집중을 가능하게 합니다.


깔끔한 책상이라는 외부단서가 당신의 뇌에 지금은 공부모드야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질러진 책상은 지금은 휴식모드야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오늘 공부를 끝내기 전, 딱 5분만 투자해서 책상 위를 리셋하세요.

쓰레기는 버리고, 필요 없는 물건은 치우고, 내일 쓸 것만 정갈하게 배치하세요.

내일 아침, 깨끗하게 비워진 책상이 당신을 반겨 줄 때, 당신의 뇌도 가볍게 질주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깨닫게 될 겁니다.


"아 문제는 내 의지가 아니라 내 환경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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