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불안한 햄스터 구하기
새 공책을 샀습니다. 첫 장을 폅니다.
숨을 참고 가장 예쁜 글씨체로 필기를 시작합니다.
아... 그런데 세 번째 줄에서 글씨가 삐끗했습니다.
화이트로 지워볼까 하다가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결국 '찌익' 소리와 함께 페이지를 찢어버립니다.
"에이, 망쳤어. 다시 써야지."
혹시 뜨끔하셨나요? 그렇다면 당신의 두뇌는 '완벽주의 햄스터형' 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신은 늘 불안합니다.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처럼 "잘해야 해, 실수하면 안 돼."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굴리느라 에너지를 다 씁니다.
정작 공부 진도는 나가지도 못했는데,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어버리죠.
남들은 당신에게 "그냥 대충 시작해!"라고 말하지만, 그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뇌 속에는 100점 아니면 0점이라는 무시무시한 공식이 입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완벽주의 성향이 강할수록 '미루기'를 더 많이 합니다.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실패에 대한 공포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완벽주의 햄스터형의 무의식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열심히 했다가 결과가 안 좋으면 어떡해? 그건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증거잖아."
"차라리 공부를 하지 말고 점수가 안 나오는 게 낫지. 핑계라도 댈 수 있으니."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자기 불구화(Self-handicapping)라고 부릅니다.
실패했을 때 자존심이 다칠까 봐 미리 변명거리를 만들어 두는 방어 기제죠.
또한 이 유형의 뇌는 시험이나 평가를 생존을 위협하는 맹수처럼 인식합니다.
'틀리면 끝장이다'라는 생각이 들면, 편도체가 비상벨을 울리고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을 마비시킵니다.
그래서 시험장에만 가면 머리가 하얗게 되고, 아는 문제도 틀리는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당신을 괴롭히던 것은 부족한 실력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잘못된 믿음이었습니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는 마라톤을 완주할 수 없습니다.
이제 그 갑옷을 벗고 가볍게 달리는 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1. 70점만 맞기 선언하기
오늘부터 당신의 목표는 100점이 아닙니다. 딱 70점입니다.
70점으로 어떻게 만족하겠냐고 묻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70점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태도입니다.
완벽하게 하려다 한 장도 못 쓰는 것보다 70점짜리 퀄리티로 10장을 쓰는 게 낫습니다.
"대충 하자, 일단 끝까지만 가보자."
이 말을 주문처럼 외우세요.
신기하게도 대충 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마비되었던 손이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2. 엉망진창 초안 만들기
글을 쓰거나 계획을 세울 때 일부러 쓰러기 같은 초안을 만들어 보세요.
맞춤법도 무시하고, 글씨고 개발새발 쓰고, 논리도 엉망인 상태로 일단 끝까지 휘갈겨 쓰는 겁니다.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어도 하늘이 안 무너진다는 것을 뇌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일단 초안이 생기면 백지상태보다 수정해서 완성하기가 100배는 쉽습니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명언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3. 걱정타임 예약하기
공부하다가 문득 "이번 시험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습격해 올 때가 있습니다.
이 유형은 걱정이 꼬리를 물다가 시간을 다 보냅니다. 이럴 때 걱정을 예약하세요.
"오케이, 너 걱정되는구나. 그런데 지금은 바쁘니까 저녁 8시에 걱정해 줄게."
그리고 포스트잇에 키워드만 적어두고 다시 공부하세요.
실제로 8시가 되면 그 걱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겁니다.
4. 내면의 재판정 열기
완벽주의자들의 머릿속에는 가혹한 검사가 살고 있습니다.
이 검사는 작은 실수 하나만 발견해도 '너는 실패자야', '이번 시험은 망쳤어' 라며 무시무시한 구형을 내립니다.
불안이 몰려올 때, 무조건 그 감정을 믿지 말고 마음속에 재판정을 여세요.
그리고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해 검사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겁니다.
감정이 아닌 증거로 싸워야 합니다.
처음엔 검사의 주장을 적어 보세요.
"피고는 문제집에서 3개나 틀렸습니다. 따라서 피고는 이번 시험을 완전히 망칠게 확실합니다."
그다음 단계로 검사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를 수집하는 겁니다.
변호사는 그 증거를 가지고 재판을 열겁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검사의 주장은 과장되었습니다. 3개를 틀린 것은 사실이지만 17개는 맞았습니다. 또한 지금은 연습 과정이지 실전이 아닙니다. 지금 틀린 걸 알았으니 실전에서는 맞힐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면 재판장은 판결을 내릴 겁니다.
"3개 틀린 건 아쉬운 일이지만, 시험을 망쳤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오히려 약점을 발견한 좋은 기회다."
이런 과정을 인지행동치료에서는 '소크라테스 대화법'이라고 부릅니다.
불안은 팩트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 검사에게 지게 됩니다.
반드시 종이에 적어서 눈으로 확인하세요.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논리적으로 자신을 변호할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유명한 회사 메타의 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고 합니다.
"Done is better than perfect.(완수가 완벽보다 낫다)"
불안한 햄스터형의 두뇌를 갖고 있나요? 그렇다면 기뻐하세요.
당신을 괴롭히는 그 꼼꼼함과 높은 기준은, 사실 엄청난 재능입니다.
일단 시작만 한다면 누구보다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능력이 당신에겐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준비 운동만 하다가 지쳐 쓰러지지 마세요.
조금 엉성하면 어떤가요? 글씨가 삐뚤빼뚤하면 어떤가요?
지금 당신이 긋는 그 삐뚤빼뚤한 선 하나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완벽한 백지보다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오늘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글씨체로 대충 계획표를 짜는 것입니다.
용기 내어 망쳐보세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완벽하게 못 할 바엔 시작도 안 할래!"
늘 불안하고 꼼꼼하게 준비하지만 정작 시작을 못하는 당신
아래 항목 중 나에게 해당되는 것을 모두 선택해 주세요. (5개 이상이면 확정입니다)
1. 필기하다가 글씨가 삐끗하면 페이지를 찢거나 새로 쓰고 싶다.
2. 공부 계획을 세우거나 플래너를 꾸미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쓴다.
3.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문제 풀기를 자꾸 미룬다.
4.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배가 아프거나 소화가 안 되는 등 신체 증상이 있다.
5.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그 문제에 집착하느라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6. '이번 시험 망치면 내 인생은 끝이야'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잦주 한다.
7. 남들의 평가나 시선에 지나치게 예민하다.
8. 사소한 실수 하나에도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고 자책한다.
9. 100점을 맞지 못하면 실패한 것과 다름없다고 느낀다.
10. 시작하기 전에 책상 정리나 주변 정돈이 완벽해야 마음이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