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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하드 Feb 15. 2024

내 남편을 폐기해 줘

2024. 01. 11. 일기장

어느 날, 배가 아프고 머리가 지끈 아프다며

학원에 빠지만 안되냐고 묻는 첫째.

워낙 자주 배탈이 나는 아이라 꾀병이라 생각하고 많이 안 아프면 학교, 학원은 가는 거라고 말해줬다.

학교에는 양호실이 있지만 학원에는 양호실이 없잖아. 입 대발 나와서 투덜거리는 망아지.


그때까지만 해도 지난 주말새 기관지에서

폐렴 초입까지 간 둘째만 신경 쓰였고

이미 4일째 둘째 가정보육 중이라 심신이 지쳐있어서 신경질적으로 첫째를 대했나 보다.

그러다 첫째가 셀프 체온계를 쟀고 결과는 38.5도.

어차피 오늘 약을 타러 둘째랑 소아과 방문해야 하니 오늘 하루 특별히 학원을 빠지고 같이 진료를 받아보자 했다.


소아과에 도착하니 대기환자 2명!

럭키를 외치고 있었는데 첫째의 열을 간호사가 재주니 39.1도.

진료실에 들어가면서도 현실부정..

옷을 포옥폭 껴입고 와서 열이 순간적으로 올랐을 거야~

청진기와 콧속 사진을 찍더니 표정이 어두워지신 의사 선생님.

열이 언제부터 열이 몇 도까지 올랐는지 물어보시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첫째와의 병원진료는 오랜만이라 너무 신경을 안 썼나 보다.

(아닌 게 아니라 코로나기간 동안 마스크를 써서 

그런가 몇 달째 감기로 소아과에 온 적이 없었다.)

오히려 첫째에게 아까 몇 도였지?

언제부터 열났어? 환자에게 되묻기까지~

기관지염에서 폐렴으로 갈 수 있다고 간호 잘해야 한다고 신신당부.


이어서 둘째 진료. 다행히 폐렴까지는 안 가고 

호전되는 중이라고 하심.

그런데 중이염이 새로 왔단다.

두 아이 가정보육 당첨에 머리가 지끈지끈!!

집에 오자마자 공장이 가동된다.

점심때 먹고 남은 산낙지를 조져서 낙지죽을 뚝딱.

(옛날에는 산낙지 만지지도 못했는데 아이들이 낙지를 좋아하니

 살다 살다 살아있는 산낙지 다리도 가위로 자르는 엄마).

집에 있는 야채를 다 찾아 다져서 야채낙지죽과 6인분 이상의 야채볶음밥 완성.

가정보육 할 동안 먹을 식량을 가득 준비해 놓으니 그나마 속이 후련했다.


첫째는 저녁도 안 먹고 겨울잠을 자듯 새벽녘까지 잠을 내리 잤다.

주방공장 가동에 지친 나도 미친 듯이 잠으로 빠져들었다.

자정쯤 신랑 들어오는 소리에 중간중간 잠깐 의식이 깬 적이 있으나

예전 같으면 새벽녘 아이들 체온 체크까지 하고도 

남을 열정이었을 텐데 몸뚱이가 말을 안 듣는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10걸음만 걸어가면 되는데 그게 안돼서 

열이 많으면 본인이 힘들어서 날 깨우겠지하며 

초등이라는 힘을 믿고 그냥 자버렸다. ㅠㅠ


그때 갑자기 새벽 4시 30분에 변기로 뛰어가

토하기 시작하는 첫째 소리에 강제 기상해서 

열을 재보니 39.1~39.5도.

머리는 뜨끈뜨끈한데 너무나 멀쩡한 첫째에게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니 머리는 안 아파서 참을만하단다.

다 컸구나. 혼자 스스로 커버린 느낌.


안쓰러운 마음에 

거실에서 이불을 감고 자는 푸 신랑을 그냥 노룩패스

하고 죽을 데우고 해열제를 먹였다.

그러고도 바로 잠이 안 와 안방 침대에 

누워 한 시간가량 새벽 수다 데이트를 했다.

이제 자자하니 더 떠들고 싶다는 첫째.


엄마는 이제 너무 졸린다. 자야겠다.
잠 안오면 거실에 있는 아빠 깨워서 놀아 봐~~


아빠가 거실에 있었어?

아까 우리가 그 거실에서 죽도 먹었는데
진짜 아빠 못 봤어? 

그냥 이불 덩어리인 줄 알았지!!


존재감 제로에 저 둔한 놈은

이번 주말에 시댁행 어때?

일하는 와중에 해맑게 물어대질 않나~

거실등 다 켜놓고도 잘 자질 않나~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애가 아파도 잘만 쳐 자는구나 

이미 몸져누운 몸은 말을 안 듣고 삼분의 일 열어놓은 

안방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거실등 불빛은 신경 쓰이고

머리로만 아 눈부셔 눈부셔 누가 좀 꺼줘 생각만 되뇌다 

궁여지책으로 옆에 있는 갑갑하여 빼놓은 

브래지어로 안대삼아 눈을 가리고 거실등을 아침까지 켜놓고 그냥 자버렸다.

                  < 아빠랑 놀이터 가면 더 널 뛰는 망아지!! >


빰빠빠빠빠빠빠빠빠 굿모닝!!

7시 새벽 기상 벨소리.

푸 신랑의 출근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벨소리

아.. 시끄러워~~~ 둔한 신랑은 작은 방에서 울리는 본인 핸드폰 벨소리가 안 들리는지 거실에서 계속 자고 있고 새벽녘에 자는 바람에 녹초가 된 체력에서 쥐어짜 낸 나의 샤우팅!!

" 여보! 벨소리 좀 꺼 "

" 자기가 좀 꺼줘 "

" 나 새벽녘에 깨서 애들 봤어. 자기가 꺼 "

" 망아지야(첫째) 알람 좀 꺼 줘 "

" 망아지 아파!! "

" 강아지야(둘째) 알람 좀 꺼 줘 "

" 강아지도 아파!! "

" ...................... "


결국 안 방에 있는 생존자 3명이 모두 패전병임

깨닫고 푸 신랑이 직접 알람을 끔.

어제 거실등 안 끈 복수다 하며 나는 다시 잠 속으로 스르륵.

십분 지났나. 출근준비 끝난 푸신랑이 안방 문을 벌컥 열더니

“ 테이블 위에 계란 삶은 계란이야? 이거 먹으면 돼? ”

“ 어! 맞아(제발 가라. 이 원수야) "

“ 응. 싸갈게 나 출근한다”

하고 제발 안방 문 좀 닫고 가라는 내 말을 가볍게 씹어주고 안방문을 대문 마냥 활짝 열어놓고 출근.

다시 자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지만 거실에서 들어오는 새벽녘 공기에 가뜩이나 아픈 아이들 추위에 떨까봐

저 활짝 열린 문은 신경 쓰이고 내적갈등 중 결국은 먹던 힘까지 짜서 일어나 문을 닫았다.


아!! 이겼다. 결국 나의 모성본능이 나를 일으켜 세웠구나.

부성애 따윈 나라에 팔아먹은 이 매국노 같은 남의 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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