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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가정교사 Part.2

Ep.8 공부를 가르친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공부

전업주부도 엄연한 직업이고,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누군가는 맡아야 할 역할임에도 

왜 이리 집에서 놀고 있다는 생각만 들고,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걸까?

자격지심을 비롯한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딱히 해결책은 없다.

그저 아내에게 미안하고, 주어진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역할을 늘리고 싶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아이들의 공부를 봐 주게 되었다. 


아들의 영어 문법과 독해 문제집을 열어 차례가 나오는 첫 장부터 훑어보았다. 

to 부정사, 수동태, 현재완료...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어렸을 때 이것을 어떻게 배웠고, 어떤 방법으로 외웠는지 금방 기억이 났다. 

과외를 꾸준히 받은 결과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효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이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니 헛웃음이 났다.

주입식 교육은 아침 7시 30분까지 학생들을 조그만 교실에 몰아넣고

전국 900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맞아가며 배워놓고, 오랜 세월 잊은 채 살았는데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써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먼지 가득한 창고에서 보물 상자를 꺼내듯, 아들에게 숨겨진 비법을 전수해 줄 생각을 하니 굉장히 기뻤다.


수학이나 국어도 충분히 버틸만한 수준임을 확인한 후에는 건방이 하늘을 찔렀다.

게다가, 첫째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둘째 역시 가르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의미한다.

1타 강사가 된 듯 우쭐한 기분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학원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돈을 벌지 않는다면, 돈을 굳게 만들면 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하루하루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모르는 문제가 없는 천재 아빠, 문제를 푸는 쉬운 방법을 알려주며 

머리에 쏙쏙 박히는 해설을 해주는 훌륭한 아빠로 거듭나고 있었다. 

나 역시도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최대한 많은 정보를 주려고 노력했다. 

할 줄 모르는 요리를 유튜브를 참고해가며 만들고, 맛을 평가받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약간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알려줬던 부분을 계속해서 모르거나,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마다 알게 모르게 짜증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런 감정은 의외로 둘째를 가르칠 때 많이 노출되었다.

눈높이가 첫째 아들에게 맞춰져 있다 보니 

훨씬 쉬운 과정에 있는 둘째 딸이 실수를 하는 것에 나도 모르게 불만이 생겼다.

정작 둘째는 오빠와 상관없이 묵묵히 자신의 과정을 가고 있는 것인데 자꾸 간과해 버렸다.

예를 들어

딸은 1톤이 1000kg인 것을 알면서도 10톤은 10,000kg이 되는 것을 힘들어했다.

내 마음은 이미 100kg이 0.1톤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며, 소수의 개념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한마디로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컸다.

1시간 72분이 2시간 12분이 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가분수를 대분수로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가 나올 때마다 나의 목소리 톤은 올라가고 있었다. 

화를 낸 것이 아닌데 아이는 주눅이 들어있었고, 그것은 사실 화를 낸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결국, 단순한 연산마저 틀려나가고, 한 소리를 하려 고개를 돌렸을 때

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큰일났다.'


울음을 참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어떠한 방법으로 대처해야 할지를 몰랐다.

'뭘 잘했다고 우는 것이냐?'라는 식의 모진 아빠는 되기 싫었고

'괜찮다'라고 말해주기엔 솔직히 괜찮지 않았다.

'미안하다'라고 안아주기엔 아이에게 끌려가는 것 같아 선뜻 굽히기가 어려웠다.

결국에는 모른척하며 차분히 문제를 풀어준 후 잠시 휴식하는 방법을 택했다. 


아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왜 수학 문제의 정답을 적을 때 매번 단위를 쓰지 않는 걸까?

왜 본인이 쓴 글씨를 읽지 못할 정도로 휘갈겨 적는 걸까?

역시나 기본적인 잔소리가 반복되었고 

특히, 거듭되는 영어 단어 검사에 힘들어했다.

외워도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건데 영원히 머리에 박히게 하려고 

자꾸 반복을 시켜서 자괴감에 빠져 울게 만들었다.


'이게 아닌데...'


그 순간, 뭔가 근본적인 것부터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지금 뭘 가르치고 있는 거지?'

아무 생각 없이 문제집 속 교육 과정만 보고, 내가 배운 대로 변화 없이 아이들에게 답습하고 있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데,  제 멋에 취해 단순 무식한 주입 교육을 하고 있었다. 


제일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자라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면서

공부로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이중적 모순이었다.  

공부는 그저 머리를 좀 더 똑똑하게 만드는 훈련일 뿐인 것을

공부로 줄 세워서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하는 구시대적 발상 속으로 아이들을 몰아넣었다.


학원을 보내지 않는 대신 집에서 학원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가정교사로서 아이들의 교육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다.

일단, 국. 영. 수는 절대 기본적인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남들보다 단어 하나를 더 외우고, 수학 문제를 하나 더 푸는 식의 개념을 완전히 지웠다.

과정에 맞게 부담 없는 선에서 최소한의 이해를 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공부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니 설명도 차분해지고, 아이들도 오히려 이해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흥미를 이끌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가령, 영어 독해에 에디슨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더 이상 지문 속 문법이나 단어를 외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험 성공을 위해 5000번을 실패했다는 이야기나 

고종이 경복궁에 전구를 달아달라고 에디슨에게 편지를 보낸 일화를 알려준다.

국어 지문에 손기정 선수가 나오면, 일장기와 관련된 일화뿐 아니라 

히틀러와 만난 최초의 한국인임을 알려주며, 세계사와 한국사가 따로 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수학 문제를 풀다가 이자나 투자의 개념을 알려주고, 돈이 돈을 버는 마법을 소개한다.

그날의 숙제를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꾼이 되어 대화를 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학창 시절 수업 시간은 때때로 잠이 쏟아지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지만 

가끔씩 선생님들이 진도와 상관없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해 주실 때는 재미를 느끼게 되고 오래 남는다. 

수십 년째 기억하고 있는 단어, 숙어, 수학공식을 토해내듯 알려주기보다 

조금은 쓸모 없어 보여도, 시험에 전혀 나올 것 같지 않아도

내가 아는 신비한 잡학사전을 공유하며 아이들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에 주안점을 두게 되었다.


자녀 교육에 정답은 없겠지만 목표는 같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바르게 커 주는 것과 언제나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나는 그 이전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과거를 만회하야 하는 숙제가 있다.

공부에 대한 압박과 잔소리를 늘어놓기엔 시간이 아깝다.


p.s

어느 날, 딸아이가 학교에서 영어 단어 쪽지시험지를 가져왔다.

7문제 중에 4개를 맞혔는데 틀린 문제 중에 dog가 있었다 

bog로 써져 있는 걸로 보아 또 'b'와 'd'를 혼동한 모양이다. 


나는 그날 딸의 실수를 지적하지도, 단어를 외울 때까지 강요하지도 않았다.

트럭을 목욕차로 개조하여 강아지 출장 목욕으로 한 달에 2000만 원을 버는 사람에 대해 딸과 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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