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그대에게 권합니다 - 김만중『사씨남정기』
얼마 전 한 결혼 정보 업체에서 흥미로운 설문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결혼을 염두에 두고 이성 교제를 할 때 부모에게 언제 교제 사실을 알립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결과, 예비 신랑·신부 3명 가운데 1명이 연애 중에는 연인을 숨기다가 결혼 상대로 확정한 뒤에야 부모에게 알린다고 답했어요.
과거에는 결혼을 ‘집안과 집안의 결합’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혼인 상대를 부모나 친척의 소개로 만나는 일이 많았지요. 어릴 때부터 부모가 신랑감·신붓감을 아예 점찍어 둔 경우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 당사자의 생각을 더 중시합니다.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인연’이며, 자기 인생에서 중대한 일이기에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연인을 결혼 상대로 확정한 뒤 부모에게 ‘통보’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는 유명한 고전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처첩 간의 갈등, 축첩 제도의 부당함, 가부장제의 현실 등 여러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이번 시간에는 주인공의 ‘혼사’ 장면을 통해 그 시대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금과는 다른, 낯설고도 익숙한 그때로 함께 가 볼까요?
작품의 줄거리를 살펴봅시다. 명(明)나라 때 유현의 아들 ‘유연수’는 열다섯 살에 과거에 급제하고 한림학사에 오릅니다. 그리고 재덕을 겸비한 ‘사씨’와 결혼하지요. 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9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습니다. 이에 유 한림은 외모가 아름다운 ‘교씨’를 첩으로 들이지요. 얼마 뒤 교씨가 아들을 낳고, 곧이어 사씨도 아들을 낳습니다. 집안에는 경사가 났지만, 사실 이는 위기의 시작이었어요.
교씨는 시기심이 많고 천성이 간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정실부인이 되기 위해 사씨를 모함했지요. 결국 교씨는 문객(門客) ‘동청’과 짜고 사씨에게 누명을 씌웁니다. 그 방법이 참으로 악랄해요. 자신이 낳은 아들을 죽이고 그 죄를 사씨에게 뒤집어씌운 것이지요. 결국 사씨는 집에서 쫓겨나고, 교씨는 정실부인이 됩니다. 유 한림 역시 동청의 모함으로 유배를 가게 되고요. 집안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납니다.
위기가 닥치면 극복해야겠지요. 세월이 흘러 유 한림은 모든 불행이 교씨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침 조정은 충신을 모함한 죄로 동청을 처형하고, 유연수의 벼슬을 회복시켜 주었어요. 이제 유 한림은 사씨를 만나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칩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유 한림은 교씨를 처형하고 사씨를 다시 정실로 맞이해요. 그리고 유씨 집안이 영화(榮華)를 누리는 것으로 작품은 끝나지요.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유 한림과 사씨의 혼인 장면입니다. 요즘은 직장이나 동호회, 지인의 소개, 혹은 결혼 정보 업체 등을 통해 상대를 만나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하지만 조선 시대 양반 가문에서 그런 ‘자유연애’는 흔치 않았습니다. 설령 마음껏 연애했다고 쳐도, 상대방과의 결혼은 별개 문제였지요.
이제 혼사 부분을 살펴봅시다. 아까 유연수가 열다섯 살에 과거에 급제해 한림 벼슬을 받았다고 했지요? 아들이 출세하고 결혼할 나이가 되자 아버지인 유 소사는 바빠집니다. 그래서 한양의 모든 매파(혼인을 중매하는 할멈)를 불러 며느릿감으로 가장 좋은 여인을 찾지요. 마침 가장 나이 많은 매파가 말합니다.
“만약 부귀한 집안을 원하시면 엄 승상댁 손녀 만한 규수는 없답니다. 또 어진 며느리를 원하신다면 사 급사댁 처녀 만한 규수는 없지요.”
‘재물’이냐 ‘성품’이냐, 고민되네요. 아버지는 ‘성품’을 택합니다. 이제 사 급사댁 처녀가 과연 아들과 혼인을 맺을 만한 여인인지 확인해 봐야겠지요. 아버지는 누이의 도움을 받습니다. 누이는 친분이 있는 여승을 그쪽 집으로 보내서 사 급사댁 규수에게 관세음보살 그림에 시를 한 편 써 달라고 요청해요. 여인의 외모를 확인하고, 글짓기 능력까지 알아보려는 속셈이지요.
사 급사댁 규수는 역시 소문대로 아주 아름답고 재능도 뛰어났습니다. 이제 혼사를 진행해야겠네요. 하지만 그 집안에는 가장(家長)이 없습니다. 사 급사는 왕에게 충언하다가 귀양을 가서 예전에 죽었거든요. 원래 혼사란 집안의 가장끼리 만나서 의논해야 하는데, 여자 쪽 집안에는 어린 남자아이밖에 없지요. 그래서 유 소사는 매파를 대신 보내 혼사를 진행합니다. 이제 매파는 사 급사 부인을 찾아가 묻습니다.
“유 소사 가문이 대대로 부귀하며 특히 한림의 문채(문장의 멋)와 풍류가 뛰어납니다. 그래서 많은 집안에서 혼인을 청하였지요. 그러나 소사께서는 사 소저의 외모가 국색(國色, 나라 안에서 으뜸가는 미인)이며 능력이 출중함을 듣고 혼인을 진행하고자 한답니다. 부인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사 급사 부인은 속으로 무척 기뻤습니다. 매파의 말에 틀린 곳이 없는 데다가, 상대 집안은 요즘 말로 빵빵(!)하니까요. 마음속으론 이미 ‘오케이’했지만 딸과 의논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부인은 딸에게 가서 매파의 말을 전하고 그 뜻을 묻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소저는 그 댁에 들어가길 원치 않는다고 말해요.
그 이유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소저는 매파의 말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고 합니다. 군자는 덕을 귀하게 여기고 색(色)은 천하게 여기는데, 매파는 먼저 소녀의 색을 칭찬했다고요. 또한 유씨 가문의 ‘부귀’는 자랑하면서 자기 아버지인 사 급사의 ‘덕’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말하지요. 매파가 미천해서 유 소사의 뜻을 잘못 전한 건지, 아니면 유 소사가 예의를 지키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어머니도 딸의 생각을 중시해 거절의 뜻을 전합니다. 매파로부터 이 사실을 들은 유 소사는 무척 불쾌했어요. 하지만 매파의 말을 상세히 듣고는 자기 잘못을 깨닫습니다. 그러고는 정말로 ‘예의’를 차릴 수 있는 사람을 보내지요. 그 고을의 으뜸 벼슬아치인 ‘지현’에게 부탁해 사 급사의 청명(淸名, 청렴한 명망)과 소저의 부덕(婦德, 부녀자의 아름다운 덕행)을 꼭 전하도록 합니다. 지현은 사 급사댁으로 가서 그대로 전하고요. 드디어 성사된 혼인! 어렵게 이어진 남녀의 인연이자, 두 집안의 결합이지요.
이 혼사를 통해 우리는 그 시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먼저 정작 당사자에게는 혼사 결정권이 없었습니다. 유 한림은 별다른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결혼 전에 상대 여성의 얼굴도 보지 못했어요. 혼사는 모두 아버지 유 소사의 뜻대로 진행됐습니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서 지현이 중매를 청하러 오는 장면을 보면, 사 급사 부인이 아닌 유모에게 안긴 사 소저의 어린 남동생이 손님을 맞습니다. 집에 남자가 왔으니 남자가 맞이해야 한다는 논리지요. 이처럼 조선 시대는 가장(남성)이 중심이 되는 철저한 가부장제였습니다.
혼인한 뒤 9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자, 유 한림에게 첩을 권한 주체는 사씨입니다. 가부장제하에서 아들을 낳지 못한 것은 칠거지악(七去之惡) 가운데 하나지요. 아들이 없다는 것은 집안의 대를 이어 나가지 못함을 의미해요. 아내는 반드시 가문의 계승자인 아들을 낳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장자 계승의 논리는 남성이 첩을 둘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사대부 집안에서는 본처 외에 첩을 들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하지만 이는 많은 문제를 낳았습니다. 첩이 낳은 자식은 ‘서얼(庶孼)’이라고 불리며, 관직 진출에서 차별받았지요. 첩 본인도 신분이 불안정했으며, 가족 간에 불화와 이간의 원인이 되곤 했습니다. ‘축첩제’는 본질적으로 갈등을 품은 제도였지요.
작가는 혼사 장면을 통해 여성이 가져야 할 덕목을 이야기합니다. 사 소저는 외모보다는 품성이 중요하며, 내 자랑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칭찬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요. 그의 모습에서 지혜로움과 당당함이 느껴지지요. 좋은 조건을 가진 상대방이라고 해서 성급히 허락하지 않고, 신중히 생각해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태도는 우리가 정말 배울 만합니다.
참고로 ‘사씨남정기’라는 제목은 ‘사씨가 남쪽으로 간 이야기’를 뜻합니다. 작품에서 사씨가 쫓겨 간 남쪽은 중국 창사[長沙] 지역이에요. 이 지역은 ‘순(舜)임금’의 두 왕비인 ‘아황’과 ‘여영’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자매인 두 왕비는 순임금을 묵묵히 내조했으며, 그가 죽자 강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떴지요. 둘은 최초의 열녀(烈女)로 칭송받는 인물입니다. 문학 작품에서 제목은 무척 중요합니다. 사씨가 남쪽으로 갔다는 것은 그 역시 열녀이며, 많은 여성이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장치예요.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씨는 인현 왕후, 유 한림은 숙종(조선 제19대 왕, 재위 기간 1674~1720), 교씨는 장 희빈을 가리킵니다. 현모양처인 사씨를 쫓아낸 유 한림은 나중에 크게 후회하지요. 실제로 소설을 읽은 숙종 역시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인현 왕후를 복위시켰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문학은 시대를 비추는 창(窓)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씨남정기』는 그 시대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 줍니다. 오늘 밤에는 옛 문학을 읽으면서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