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에서는 정치를 이렇게 바라봅니다.
정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진보와 보수, 좌와 우 같은 구분을 사용합니다. 이런 분류는 오랫동안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어 왔고, 지금도 일정한 설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의 정치적 선택들을 바라보다 보면, 이러한 구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장면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PolitiScale( https://politiscales-kr.github.io/) 처럼 사회주의, 자유주의, 시장주의, 환경주의 등 다양한 주의, 주장을 스펙트럼으로 나누는 시도도 등장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사람들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어떤 정책과 가치를 선호하는지를 비교하는 데에는 분명히 흥미롭고 유용합니다.
그러나 이 연재에서 던지고 싶은 질문은 조금 다릅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복지를 지지하면서도 강한 질서를 원하고, 자유를 말하면서도 불안해지면 통제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이는 논리적 모순이라기보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회주의나 자유주의 같은 주의주장에 따라 움직이기보다, 불안과 기대, 위협과 안도감 같은 감정에 먼저 반응합니다.
군주정, 민주정, 전제정 같은 헌법적·규범적 구분을 설명하려는 글도 아니고,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쪽이 옳은지를 가리려는 글도 아닙니다. 대신 질문을 이렇게 바꿔 보려 합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정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회에서는 왕이나 종교처럼 권위를 바탕으로 권력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국민은 복종의 대상이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선거를 통해 권한을 맡기되, 이후에도 감시와 책임을 요구합니다.
또 어떤 사회에서는 정치를 특정 집단에 오래 맡긴 채 일상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참여를 요구받으며 동원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고,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경기를 보듯 정치 과정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위치에 머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상적으로는 시민이 정치 과정에 함께 참여하며, 결정과 책임을 나누는 방향을 지향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를 각각 권위체제, 위임체제, 위탁체제, 동원체제, 응원체제, 그리고 동행체제라고 나누어 정리했습니다.
여러 정치체제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주권이라는 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에 따라서 나누어 보는 것이죠.
* 권위체제 : 왕, 종교, 지위 같은 권위를 지닌 이들이 권력을 갖고, 국민은 복종의 대상이 됩니다.
* 위임체제 : 국민이 권한을 맡기고, 선거와 감시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묻습니다.
* 위탁체제 : 정치를 특정 집단에 오래 맡긴 채, 국민은 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 동원체제 : 행사나 주의·주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참여가 요구되지만, 개인의 자율성은 제한됩니다.
* 응원체제 : 정치는 경기처럼 소비되고, 국민은 지지자나 관객의 위치에 머뭅니다.
* 동행체제 : 시민이 정치 과정에 함께 참여하며, 결정과 책임을 나눕니다.
중요한 점은, 현실의 국가는 이 중 하나의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회는 여러 방식이 섞인 채로 작동하며, 시기와 상황에 따라 그 비중이 달라집니다.
참여와 위탁이 공존하고, 동원과 응원이 동시에 나타나며, 때로는 안정과 변화가 충돌합니다.
이 연재는 바로 그 섞여 있는 상태,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감정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살펴보려는 시도입니다.
이 연재는 정답을 제시하거나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 온 진보나 보수라는 말이 놓치고 있는 지점, 그리고 그 틈에서 정치가 어떻게 지배·위임·위탁·동원·응원·동행의 형태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함께 이해해 보자는 제안에 가깝습니다.
이제부터의 글들은 특정 국가나 정당을 평가하기보다, 사람들의 마음이 정치와 만나는 방식을 차례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정치의 언어가 과연 충분했는지도 함께 질문해 보고자 합니다.
[ 수많은 질문으로 다양한 성향을 나누어 보여주는 PolitiScales. MBTI 같아서 재미있지만, 정말로 이게 내 마음을 잘 말해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