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왼손에만, 매니큐어를 덧바른다. 이미 한 번 덧바른 것임에도 왼손 손톱에 정성스레 칠해 놓았던 반짝반짝한 젤은 이미 형태를 잃은 지 오래다.
왼손 손톱에 젤을 바르느라 바쁜 오른손으로 눈길을 돌린다. 새로 자란 손톱만이 흘러간 시간을 증명할 뿐, 시간이 흘렀냐는 듯 완벽한 네일이 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수고로움을 덜어주기는 하지만, 그 의미를 아는 내게 마냥 유쾌할 수만은 없는 법이다.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오로지 왼손의 몫이다. 왼손으로 세상을 감각했고, 세상과 부딪쳤다. 지금 이 순간에도, 16년 전에도, 왼손이 곧 나였고, 내가 곧 왼손이었다. 오른손은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이방인에 불과했다.
오른손이 멈춰 있는 동안,
오른손이 그저 가만히 있는 동안, 왼손에는 세월의 흔적이 점점 생겨났다. 주변의 여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펜을 쥐는 중지에는 굳은살이 생겼고, 손은 거칠어졌다.
이쯤 읽은 독자라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하나 있을 것이다.
두 손이 해야 할 일을 한 손이 모두 한다면, 얼마나 피곤할까?
웃기긴 하지만 나도 가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곤 한다. 제 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대답은 당연하게도 YES겠지만, 난 의외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애초부터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기 때문에 힘듦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오른손이 해야 할 것을 왼손이 대신하는 게 아니라, 원래 왼손이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당연했다.
그럼에도, 오른손을 못 써도 아무 상관없다고 할 자신도, 생각도 없다. 나는 장애가 없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맞도록 설계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편마비인이자, 다수가 오른손잡이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왼손잡이이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기타를 치거나 피아노로 반주를 하는 건 꿈에도 못 꿔보고, 음악을 좋아하지만 흔하디 흔한 리코더조차 불지 못해 음악시간은 악몽이 되어 버렸다. 활동적인 아이였지만, 몸에 맞지 않는 체육활동에 주눅 들어 창피함만이 기억에 남았고, 체육은 단연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되어버렸다. 학교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 중 하나는 옹기종기 모여 술게임이라고 일컬어지는 게임을 하는 것이지만, 화려한 손동작이 오가는 것을 보며 참여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친구들이 같이 하자고 부추겨도 온갖 핑계를 대며 싫어하는 척 내빼는 내 모습이 싫다. 덕분에 나의 성격만 이상해보일 것 같아 거절할 상황이 오기 전에 자리를 피하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나름의 방식으로 도움 없이 일상생활을 해낸다 한들, 그 외적으로는 제약이 있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분명,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장애로부터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의 신체적 제약은 변하지 않았는데 한 순간에 불편해졌다. 어쩌면, ‘장애’ 자체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회로 인한 불편함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