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By Me - Oasis
졸업 후 2년,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것보다 친구들의 얼굴을 보는 일이 더 어려워진 시기였다. 우리는 약 2주 전, 오랜만에 회포를 풀기 위해 뭉쳤다. 목적지는 경기도 어딘가의 펜션. 남자들끼리의 여행이 으레 그렇듯, 우리는 숙소의 '안락함'이나 '인테리어' 따위는 고려 대상에 넣지 않았다. 우리의 기준은 오로지 하나, '가성비'였다.
"야, 여기 가격 실화냐? 주말인데 이 가격이면 거저다." "방 크기 봐라, 운동장이다 운동장."
앱에서 본 사진과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에 혹해 덜컥 예약을 마쳤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옛말이 왜 수백 년간 전해져 내려오는지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펜션은 흡사 '폐가 체험' 현장을 방불케 했다. 대학가 원룸촌 구석에 있을 법한 휑한 방 하나가 전부였고, 외풍은 창호지 뚫리듯 들어왔다. 그 흔한 침대 프레임도 없이 얇은 요 몇 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압권은 바비큐장이었다. "사장님, 혹시 여기 난로는 없나요?" "아, 난로는 따로 없어요. 숯불 들어오면 따뜻해져요."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한겨울, 우리는 비닐 천막 하나에 의지한 채 야외나 다름없는 곳에서 고기를 구워야 했다. 입김이 용가리처럼 뿜어져 나오는 그곳에서 우리는 생존을 위한 식사를 준비했다.
시설은 처참했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고, 그 상황에서 덜덜 떨며 고기를 굽는 서로의 꼴이 우스워서 또 웃었다. 불판 위의 고기는 기이했다. 강력한 숯불 열기에 겉은 까맣게 타들어 가는데, 속은 아직 해동도 덜 된 상태였다. 우리는 "이게 미디엄 레어지"라며 낄낄거렸고, 쌈을 싸 먹으려 집어 든 상추는 손대면 '파사삭' 하고 부서질 듯 얼어 있었다. 실시간으로 채소가 동결 건조되는 광경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친구들이 취기가 오르자 대화의 온도는 바비큐장 기온과 반대로 뜨거워졌다. 대학 시절, 술자리 안주의 8할은 '여자 이야기'였다. 누가 예쁘다더라, 누구랑 썸을 탄다더라 하는 가벼운 설렘들. 하지만 10년 가까운 세월은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대화를 바꿔 놓았다.
"너 청약 넣고 있냐?" "야, 머리 심는 데 얼마 드는지 아냐? 나 요즘 M자가 깊어지는 것 같아." "결혼은 해야겠는데... 지금 월급으로 서울에 전세나 구할 수 있을까."
주정뱅이들도 세월 앞에서는 철이 든다. 우리는 결혼의 현실적인 무게, 탈모라는 거부할 수 없는 유전적 공포, 그리고 '인생의 의미'와 '주말의 짧은 쾌락' 사이의 괴리에 대해 논했다. 겉은 타고 속은 안 익은 그 고기처럼, 우리 인생도 무언가 어설프게 익어가고 있다는 씁쓸함이 우리를 휘감았다.
그렇게 밤이 깊어갈 무렵, 사건의 서막이 올랐다. 장을 볼 때부터 노래를 부르던 친구 녀석이 결국 일을 저질렀다. "야, 고기만 먹으니까 느끼하다. 내가 쏠 테니까 회랑 굴 좀 사 오자."
평소 공금으로 뭘 사자고 하면 "그건 안 돼. 사기로 한 것만 사"라며 발을 빼던 녀석들이, 한 명이 쏜다니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배달 앱에서 공수해 온 회와 석화는 차가운 날씨 덕분인지 유난히 신선해 보였다. 나 역시 해산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터라, 의심 없이 젓가락을 들이댔다.
"크으, 역시 겨울엔 굴이지."
초장을 듬뿍 찍은 굴이 입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바다의 향, 친구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콜라가 없는 게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것이 내 위장으로 침투하는 '노로바이러스'라는 이름의 트로이 목마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다음 날 아침, 나는 교회를 가기 위해 자고 있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일찍 숙소를 나섰다. 평소라면 전철을 탔겠지만, 그날따라 진짜 나답지 않게 버스를 탔다. 그게 화근이었다. 버스 안에서 나의 위장은 칼춤을 췄고, 그 칼춤을 잠재우기 위해 길거리에서 내릴 수도 없는 운명이었다. 게다가 버스가 얼마나 덜컹거렸는지 내 속은 더욱 요동쳤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결국....
어찌어찌 집에 도착해 화장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변기를 붙잡고 있자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변기 물과 함께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탈진 상태로 변기에 머리를 박고 있을 때였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뜬금없이 멜로디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Stand by me, nobody knows the way it's gonna be...'
오아시스였다. 죽을 듯한 고통 속에서 떠오른 게 오아시스라니. 물 한 모금 못 마시는 내 처지가 사막 같아서였을까? 밴드 이름 한번 기가 막히게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노엘 갤러거가 했던 인터뷰 하나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아시스의 리더 노엘 갤러거는 이 명곡, 'Stand By Me'를 식중독에 걸린 상태에서 썼다고 했다. 런던으로 처음 상경했을 때, 밥은 잘 먹고 다니냐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고 제대로 된 요리를 해보려다 탈이 난 것이다. 가사 첫 줄, "Made a meal and threw it up on Sunday" 는 은유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팩트였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헛웃음이 나왔다. 변기를 붙잡고 오열하는 내 모습이나, 런던의 좁은 방구석에서 토하다가 기타를 잡은 노엘의 모습이나 다를 게 뭔가. 하지만 그는 그 찌질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전 세계가 따라 부르는 '앤섬'으로 바꿨다.
인생이란 게 참 묘하다. 지금 당장 내 인생은 꼬인 것 같고, 잘못 먹은 굴처럼 속을 뒤집어 놓지만, 이 고통이 훗날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노엘이 식중독 덕분에 명곡을 썼듯, 어쩌면 나도 오늘 이 변기 앞에서의 처절한 사투를 통해 글감을 하나 건진 게 아닐까? (실제로 지금 이렇게 쓰고 있지 않은가.)
오아시스의 노래가 10대부터 80대까지, 시대를 막론하고 위로를 주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들은 "다 잘 될 거야"라는 무책임한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나도 토해봤어. 인생 원래 엉망이야. 근데 뭐 어쩌겠어, 그냥 사는 거지."라고 말하며 어깨를 툭 쳐주는 느낌. 그 시니컬한 위로가 이 새벽, 나를 버티게 했다.
나는 밤새 앓으면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이야기다. 'Stand By Me'의 뮤직비디오는 반전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덮치거나, 가게를 때려 부수는 폭력적인 장면처럼 보인다. 하지만 카메라 앵글이 넓어지고 시간이 흐르면 진실이 드러난다. 덮치는 게 아니라 넘어지는 사람을 잡아주는 것이었고, 부수는 게 아니라 갇힌 사람을 구하는 것이었다.
"The Whole Picture." 전체를 보라는 메시지다. 단편적인 장면만 보면 내 여행은 '최악의 숙소'와 '노로바이러스'로 점철된 비극이다. 하지만 전체를 보면 어떨까? 10년 지기 친구들과 얼어붙은 상추를 씹으며 나눈 진지한 대화, 밤새 서로의 안부를 물어주던(사실은 술 주정이었지만) 시간들. 이 모든 맥락을 합치면 이번 여행은 꽤 괜찮은 희극이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내가 겪는 취업의 어려움, 불확실한 미래, 혹은 오늘 겪은 이 배탈 같은 불행도 인생 전체라는 앵글에서 보면 해피엔딩을 위한 하나의 에피소드일지 모른다. 오아시스의 가사처럼, 우리 발밑에는 불행을 열어젖힐 열쇠가 이미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문 뒤를 두려워해서 줍지 않았을 뿐.
인생, 사실 까보면 별거 없을지도 모른다. 문을 열어봤자 텅 빈 방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릴 수도 있다. "이미 태어났는데 뭐라도 해야지." 이것이 오아시스가 던지는 모순적인 희망이자 전언이다. 허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잃을 게 없으니까.
다만, 그 무거운 문을 혼자 여는 건 좀 버겁다. 그래서 우리에겐 친구가 필요하고, 음악이 필요하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 "Stand by me, nobody knows the way it's gonna be."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냥 내 곁에 있어 달라고.
속을 다 비워낸 나는 비틀거리는 다리로 화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편안한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불안한 미래 앞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서로가 얼어 죽지 않게 이불 한 자락 덮어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