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놀기만을 좋아하던 나는 공고에 입학하면서부터 정신을 차렸다. 대학에 가고 싶었다. 대학에 가면 드라마에서나 보던 캠퍼스의 낭만과 여유를 느끼며 공부하고, 졸업을 하면 다들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였고, 지방이지만 나름 이름있는 국립대에 수시 합격 하였다.
하지만, 그런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 준비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정형편이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여 부모님께서 내 뒷바라지를 해주실 수 있는 처지가 못되셨고 공고를 졸업하여 취업을 하길 바라셨다. 하지만, 대학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학비 벌어서 내가 다닌다는 생각으로 낮에는 공장 알바를 하며 야간대학교를 다녔다. 공고를 졸업 하다 보니 다른 인문계 학생들에 비해 기본과목에서 뒤쳐지기 시작하였고, 낮에는 공장 알바를 하고 야간대학을 다니다 보니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그렇게 대학의 부푼 꿈도 사라지고 공부에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하였고, 1학년 1학기 나는 학사경고를 맞는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갔다. 어쩌면 군대에 있던 시절이 마냥 행복했던 시간 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역을 하고 복학을 한 나는 학교에 다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대학교였지만 자퇴를 할까도 생각했으니 말이다. 2학년때부터 전공을 선택하여 같은 과 학생들과 계속 수업을 들었지만 평소 내성적인 성격인 나는 쉽사리 누구와도 친해지지 못했다. 그렇게 3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과에서 하는 술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역시 술을 마시면 다들 친해 지는건가… 술을 마시면서 조금 말을 트던 한살 많은 형 2명과 친해지게 되어 3학년부터 졸업까지는 열심히 공부하였다. 1,2학년때 너무 놀았던 탓에 계절학기 수업까지 들으며 학점을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해보았지만, 원서접수 최소 컷트라인인 3.0도 넘지 못하였다. 하지만 졸업을 유예하고 학교를 더 다닐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그렇게 아무런 학점도, 스펙도 없이 졸업한 나는 정말이지 운이 좋았던걸까 아니면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야간대학교를 다녔던 나를 성실하다고 생각 하였던 걸까 처음으로 서류를 넣은 자동차 부품 만드는 중견기업에 합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원하던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에 배정받게 되었고, 또라이 같은 상사를 만나게 되면서 3개월만에 퇴사하고 만다. 그땐 이 회사 아니라도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 뒤로 서류를 수십 곳을 넣었지만 연락 오는곳이 없었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 고졸 생산직에도 여기저기 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난 먹고 살았어야 했으니깐.
고등학교 때 나름 열심히 공부했던 탓에 그래도 중견기업 생산직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처음 해보는 교대근무에 방진복까지 입고 일하느라 힘들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회사에서 하는 인사평가 점수도 잘 받으며 나름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원이 되었다. 연차가 지날수록 월급도 나쁘지 않게 벌었고 먹고 살만하니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 조차 잊어버리고 생산직 생활에 안주하게 되었다. 입사하고 2년 정도가 지나 조금 안정되었다고 느꼈을까 만나고 있던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하자마자 아이가 생겼고, 아이가 생겼다는 책임감에 더 열심히 일하였다. 결혼 당시 보증금 3천만원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시작을 하였고 3년이 지나 25평짜리 새 아파트를 분양 받게 되었다. 운이 좋게 새 아파트에 입주하자마자 집값이 올라가기 시작하였고, 33평 넓은 집으로 옮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랬으면 안됐는데… 무리하게 빚을 내어 33평으로 이사를 하였지만 잔업, 특근 빼지 않고 열심히 했던 탓에 그나마 생활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야간 출근 날 이어서 자고 있었는데 회사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사에 불이 났단다.
뭐 금방 꺼지겠지 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회사에 화재가 발생해 일단 출근 하지 말고 대기하라고, 그래도 회사로 갔다. 회사근처부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나고 있었고, 소방차 수십대가 출동해 있었다. 대형화재였다.
다음날부터 전직원이 대기를 하였고 한달 뒤에 회사에서 청천병력 같은 연락이 왔다. 회사를 청산하겠단다…. 10년을 넘게 다니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실직자가 되었다.
회사가 문을 닫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내 나이 서른여덟, 새로운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일단 이곳 저곳 이력서를 넣어 보았다. 그러나 연락 오는 곳은 없었고 도저히 이렇게 해서는 답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기사 자격증 하나, 영어 성적 하나 없었다. 자격증과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기사 자격증도 따고 영어 성적도 어느 정도 만들어 놓으면 사무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있었던 걸까? 나름 실업급여도 받고 회사가 폐업하면서 준 위로금으로 생활하며 공부를 시작했다.
3~4개월만에 자격증도 취득하고 영어 성적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산업안전기사와 같이 있으면 시너지가 좋다고 하여 대기환경기사도 다시 공부하면서 사무직 이곳 저곳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연락 한 곳 없었고, 2시간은 가야 하는 다른 지역에 넣은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래도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차 화상 면접을 치르고 대면 면접을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40년 가까이 된 자동차 주물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면접을 볼 당시 한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한 나의 끈기를 인정 받았던 것일까 면접 일주일 후 출근을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일단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안정이 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고 이사를 할 계획으로 입사를 하였다.
정말 오래 된 회사이니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 난 10년동안 클린룸에서 일했는데…..
먼지도 많고 쇳가루도 많이 날리고.. 처음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기침을 달고 살았다.
누가 말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나름 사무직이라 현장에 들어갈 일은 많이 없겠지 생각했던 건 큰 오산이었다. 생산팀 관지라였던 나는 거의 현장에 살다시피하고 현장을 모르면 일을 할 수가 없었기에 현장을 많이 돌아다녔고 지금도 출근하면 현장부터 돌아본다.
옛날 어른들이 뭘 하든 열심히만 하면 인정받고 성공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난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일까. 하지만 이제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열심히만 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열심히도 하고 잘도 해야된다.
나는 글을 잘 쓰는 방법을 배우지도 못했고 써 본적도 없다. 두서없이 써 내려간 내 글을 누가 읽어 주고 좋아해 줄 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는 동안은 잡생각도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부자도 더 큰 부자가 되고 싶어 하듯이 말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만이라도 현재 생활에 안주하며 살지 말고 내가 살아왔던 길을 한번쯤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 생각 없이 반복된 일상생활만 하다가는 글쓴이 꼴이 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모든 직장인들 모두 힘냈으면 좋겠다. 화이팅!
퇴근 하는 길에 로또나 사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