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보이지 않는 손 VS 최후통첩 게임]

경제에도 `도덕`이 필요한 이유

아담 스미스는

1723년 태생의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의 정치경제학자이자 윤리철학자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며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에 대한 이론을 세웠다.

저서로 <국부론>, <도덕 감정론>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나무위키 -아담 스미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715%EF%BC%BF010349%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아담 스미스-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국부론>에서


경제 체제는 자동적이며, 지속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 놓여졌을 때
그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종종 `보이지 않는 손`이라 일컬어진다.

독점과 세금 우선권, 로비 집단, 다른 사람의 비용으로
어떤 경제 일원에게 늘어나는 "특권"은
경제 체제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위협한다.

[출처] 위키백과 -국부론-


고 말하고 있다.


경제가 원활하기 위해서 이론적일지라도 `특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자본의 탄생부터 `특권`이 있어 왔다는 것이 말해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들이 이러한 `특권`때문에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특권`이 없다면 투자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스미스는


자유 경쟁에 의한 자본의 축적과 분업의 발전이
생산력을 상승시켜 모든 사람의 복지를 증대시킨다.

[출처] 위키백과 -국부론-


고 주장한다.


자본의 축적은 누군가의 금고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은행을 통해 재투자되거나 아니면 사업에 바로 투자되는 그런 자본의 축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의 순환은 `특권`이 없을 때 원활하게 돌아갈 것인데

이러한 `특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본가가 자본을 자신의 금고에 묻어두는 것이 '특권'이니까.


또한 스미스는


국가의 경제력, 그러니까 한 국가가 얼마나 잘 사는지를
어떻게 판단하는가는 국고에 쌓여 있는 돈이나 자산은 경제력의 기준이 되지 못하고
그 나라가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경제력을 판단할 수 있다.

[출처] 나무위키 -국부론-


고 말하고 있다.


역시 국고에 쌓여만 있는 돈은 `돈맥경화`를 일으킬 뿐이고

물건을 생산하고 유통시켜야만 경제력이 향상된다는 말이다.

국가는 계속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경제의 막힘과 부작용과 위험이 줄어들 것이다.

건물이 붕괴될 조짐이 없는지 살펴야 하고 축대가 무너질 염려는 없는지 조사해야 하고

하수구의 물이 넘쳐나지 않을지 등을 미리 파악하여 부작용과 위험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법 조항이 없으면 TF를 조직해서라도

그 기술에 대한 법안을 신속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국가가 움직인다면 경제는 순풍을 탈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 체계가 돌아간다고 주장하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란


국부론에서 주장하는 가장 이상적인 `보이지 않는 손`은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으로 하여금 모든 시장 참가자가 열심히 일하고

자원이 효율적으로 거래되는 시장에서
가격 결정권이 소수가 아닌 시장 참가자 전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장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각자의 이기심으로 최선의 생산과 소비를 택하며
이는 곧 공공의 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으로

이렇게 되면 `생산자`는 최적의 가격으로 최적의 이윤을
`소비자`는 최적의 가격으로 최대의 만족을 이루는 서로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지게 되며
이를 유지하는 힘을 바로 시장 속의 가격 곧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한 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보이지 않는 손-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인간의 심리상 현실적인 한계점이 존재하며
사람들은 그렇게 정직하고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돈이 걸린 문제라면 사람들은 이 개념을 엄청나게 악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미스가 가장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보이는 손' 곧 정부와 같은 특정의 집단 혹은 소수의 이익집단이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들의 의지대로 가격이 임의로 조절되거나 독과점 현상으로
자원의 자유로운 유통을 막아 시장의 순기능을 막아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보이지 않는 손-


그렇기 때문에 스미스는

정부는 국방, 사법, 공공 토목사업같이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나

개인이 하려고 하지 않을 일만을 해야 하며


길드 같은 특정 집단이 법을 등에 업고 자원을 독점하여

시장 유통을 통제하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기업들의 담합과 독점을 장려하는 의미가 아니며
오히려 독점을 억제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보이지 않는 손-


국가의 개입을 반대한 이유는


국가가 거대 상인들과의 결탁해 그들의 독과점을 정당화해 주고
그들로부터 국가가 필요한 자본을 충당하려고 하기

[출처] 나무위키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정경유착`을 말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도덕과 윤리와 양심이 경제를 좌우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특히 돈 앞에서는 정직하지 않기 때문에 창출한 부를 악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가 경제학자이면서 `윤리 철학자`임을 감안했을 때

<도덕 감정론>을 지필한 이유가 경제의 원활한 순환을 위해서는

도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 것이 분명하며

제대로 분배하지 않고 사기를 치는 이런 행위가 발생할 것을 이미 예견한 것이다.

실제로도 경제의 순환에는 도덕이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현재 우리는 체험으로 알고 있다.


최후통첩 게임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란

두 명의 참여자가 주어진 돈 예를 들어 `100달러`라면 이 돈을 어떻게 나눌지 결정하는 게임이다.


첫 번째 참여자가 돈을 어떻게 나눌지 제안하면
두 번째 참여자는 이를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다.

만약 두 번째 참여자가 거절을 선택하면 두 사람 모두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두 번째 참여자가 '수용'을 선택하면 첫 번째 참여자의 제안에 따라 돈이 나누어진다.

[출처] 위키백과 -최후통첩 게임-


이렇게 했을 때 고전경제학 이론들은


인간이 이성적인 계산 기계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99달러를 갖고 나머지 1달러를 다른 사람에게 줄 거라고 예측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도 그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예측한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1달러가 공짜로 생긴다면 두말할 것 없이 수락할 것이다.

[출처]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낮은 액수의 분배 제안을 `불공평하다`는 이유로 거절하면서
그들은 상대방에게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1달러를 잃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출처]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고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이러한 결과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데


최후통첩 게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두 번째 참여자의 입장에서 거절은 결코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출처] 위키백과 -최후통첩 게임-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상대방에게 아주 낮은 금액을 제안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똑같이 나누거나

자신이 조금만 더 갖고 30~40달러를 상대방에게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명예 개념과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100달러가 아니고 10억 달러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0억 달러를 들고 1달러를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100달러의 1%는 1달러이지만
10억 달러의 1%는 1000만 달러이고, 0.1%도 100만 달러이고, 0.01%도 10만 달러이기 때문이다.

만일 100억 달러의 0.01%를 줄 테니 무릎 꿇어라고 해도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10만 달러를 받을 것이다.
10만 달러면 1억 3천만 원이라는 거액이기 때문이다.


최후통첩 게임은 지금 생활에 필요한 돈의 규모에 따라 판단이 될 것이다. 개인의 명예가 아니라.

100달러의 1%인 1달러는 받더라도 나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명예 운운하면서 받지 않을 테지만


10억 달러의 0.01%를 받는다는 것은

명예를 떠나서 거지로 여겨질지라도 나의 생활 수준보다 값어치가 훨씬 크기 때문에 무조건 받을 것이다.

'거지 근성이다'는 말을 듣더라도 말이다. 명예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결국 1% 혹은 0.01% 때문에 받고 안 받고 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활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규모의 돈인지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이 아닌 나의 생활을 위해서 필요하면 명예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최후통첩 게임`이 보여주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여기서 사람들의 수와 돈의 규모도 키워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서 한두 명이 아닌 100만 명씩인 두 집단을 대상으로

최후통첩 게임을 실시해 1,000억 달러를 나눠갖게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100만 명이 한자리에 모여 결정을 내릴 수는 없으므로
각 집단은 소규모의 지배층을 구성할 것이고

한 집단의 지배층이 다른 집단의 지배층에게 100억 달러를 제안하고
나머지 900억 달러는 자기들이 가진다면 어떨까?

[출처]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라고 유발 하라리가 제안하면서


두 번째 집단의 지도자들은 이 불공평한 제안을 받아들여
100억 달러 중 대부분을 자신들이 가지고
당근과 채찍으로 추종자들의 반란을 막을 것이며

지배층은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처벌을 내릴 거라고 위협하는 한편
온순하고 참을성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세에 영원한 보상을 받을 거라고 약속할 것이다.

[출처]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돈이든 사람의 수이든 규모가 커지면 지배계층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 지배계층의 욕심의 정도, 권력에 대한 욕심, 도덕관, 경제관 등에 따라

대규모 집단의 운명이 달라지게 된다는 말이다.


아마 지배계층은 지금까지의 역사와 똑같이 할 것이고 과거의 역사처럼 되풀이될 것이다.

다만 지금 현재는 이렇게 흘러온 역사에 의해 지구 운명의 시간이 코앞에 와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처럼 대규모 협력은 결국 `상상의 질서`에 의해

`질서 지워진 우리들`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면 대표하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대표에 의한 권력이 생기게 되고

그 대표의 욕심에 따라 새로운 질서가 잡히게 된다고 유발 하라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도 어떻게 보면 다른 집단으로부터 불공평한 제안을 받아들인 한 사람인 것이다.

불공평함에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금액이 엄청 컸기 때문이고

대표가 대부분을 가져가고 나머지만 나누어도 자신의 집단이 유지될 것이기에 말이다.


아마 우리의 현실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나머지 사람들과 '최후통첩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손'에게는 0.01%, 0.001%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0.01%, 0.001%는 엄청난 위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들은

이런 퍼센트% 즉 `백분율의 함정`을 이용하여 공정한 척 내세우지만

백분율은 공정하지 않은 함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백분율에 의해 생활하는 비용 이상의 돈이 창출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백분율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10%라고 해도 모두에게 다 같은 10%가 아닌 것이다.


앵거스 맥과이어의 공평과 평등의 그림을 보면


구글 이미지 -앵거스 맥과이어-
구글 이미지 -앵거스 맥과이어-


키 큰 학생에게는 상자가 필요 없지만 키 작은 아이에게는 상자가 두 개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백분율의 함정이다.


백분율의 함정


은행의 이자가 연 1%라고 가정하자.

A가 은행에 100만 원을 B는 10억을 저축한다고 했을 때

A는 1년에 1만 원을 받게 되지만

B는 1년에 1000만 원을 받게 된다.

이처럼 1%는 모두에게 똑같은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C가 아주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데 연 매출이 100억이라고 하자.

여기서 인건비를 제외하고 사업체 운영하는 비용과

재투자하는 자본이 60억이라고 가정하면 순수익은 40억이 된다.


여기서 C가 10억을 받아 가고

나머지 30억으로 일하는 직원들을 나누어 준다고 했을 때


직원 수가 50명이면 6천만 원을 받게 되고

30명이면 1억을 받게 되고

20명이면 1.5억을 받게 되고

10명이면 3억을 받게 된다.


물론 사업체의 자동화 여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C가 받아 가는 돈의 규모는 직원들의 5~10배는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현실에서는 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605%EF%BC%BF030556%EF%BC%BFGallery.jpg?type=w966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대담한 제안 -린다 유 지음, 청림출판-


위 사진을 보면 200배~20배인 경우도 있는 것처럼

C가 받아가는 돈은 `보이지 않는 손`들의 `특권`인 것이다.


이 `특권`을 내려놓지 않는 한 자본주의에 의해 나타나는 모든 부작용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부작용이 있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C가 받아 가는 돈의 규모와 나머지가 받아 가는 돈의 규모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의 한 원인이 될 것이다.


물론 C는 자신이 만든 제품을 팔기 위해 온 사방을 뛰어다니고 비참한 상황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제품을 만드는 직원이 없다면 C의 일은 헛수고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재투자 비용을 남기고 엇비슷하게 분배한다면

부의 불균형으로 인한 부작용은 사그라들지 않을까 한다.



<참고>

[공정 VS 공평] - 백분율(%)의 함정 (1), (2)

https://blog.naver.com/bbulii/223784503722

https://blog.naver.com/bbulii/223785770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