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파가 인상파를 넘어서게 된 이유
앙리 마티스는
1869년 태생의 20세기 야수파 프랑스 화가이다.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꼽힌다
[출처] 위키백과 -앙리 마티스-
마티스는 회화에서 '표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표현`이란
얼굴을 찡그린다든지 강렬한 동작을 과시한다든지 하는 격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티스는 `표현`이란
화가가 주체적으로 화면에 만들어 내는 `색과 모양의 배합`을 의미하는 것이며
`긴밀한 질서`를 가리키는 것
[출처] 위키백과 -앙리 마티스-
이라고 말한다.
`구스타브 모로`라는 프랑스 화가가 마티스에게
"자네는 회화를 단순화시키고 말 거야."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라고 말한 바 있다고 한다.
이처럼 마티스의 그림은
단순하고
모든 힘을 색채 자체가 가진 표현력과 의미를 탐색하는 데
쏟아부은 것처럼 보인다.
또한 마티스는 아프리카 조각의 단순하고 거칠고 힘 있는 조형에 매료되었는데
그런 이유로 그의 그림에서 강렬한 색채와 원시 예술의 매력이 느껴진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라고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1910년에 그린 `춤`이라는 작품을 보면
`색과 모양의 배합`과 강렬한 색상의 대비가 느껴진다.
이처럼 강렬한 표현과 색을 선호하는 미술가들을
야수파(野獸派) 또는 포비즘(fauvism) 이라고 한다.
야수파의 화가들은
하늘과 바다는 푸른색, 나무가 울창한 산은 초록색이라는 색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로써 개성 강한 색채를 사용
[출처] 위키백과 -앙리 마티스-
하였고
아프리카의 원시주의에 영향을 받아
더욱 과감하고 강렬하게 색채를 왜곡해 나갔으며
여기에 더해
생략된 묘사와 허술한 표현 그리고 성의 없어 보이는 붓질의 흔적으로
[출처] 위키백과 -앙리 마티스-
당시 비평가들은 야수파의 그림을
`추한 그림` 또는 `미치광이의 반란`이라고 혹평을 하면서
야수파의 작품들을 야수적이라고 비꼬았다.
[출처] 위키백과 -앙리 마티스-
고 한다. 여기서 '야수파'라는 새로운 사조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화풍은 확고한 이론을 갖지 못하고 흩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야수파의 이러한 화풍은
9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의 미술활동이었지만
20세기 현대미술의 신호탄과 같은 주요 사조로써 평가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앙리 마티스-
고 한다.
그 이유는 야수주의를 시작으로 화가의 주관이 색채로 표출되는
즉 관념적 사상이 색채로써 표출될 수 있는 색채의 추상성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그림들이 눈에 익은 듯 어색하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바로 현대미술의 화풍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앙리 마티스가 이런 화풍의 그림을 그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까지의 화풍은 인상파였으니 말이다.
인상파의 그림은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
색조의 순간적 효과를 이용하여 눈에 보이는 세계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
[출처] 위키백과 -인상주의-
하는 그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신적인 사조가 1870년대에 이르러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미술작품이 상품으로써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과거의 예술 형식에 대한 염증, 심미 취향과 스타일의 변화가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예술과 충돌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했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의 흐름을 따라가되 도덕과 상식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아무튼 마티스가 그 당시의 화풍을 깨트리고 강렬한 색과 단순함으로
`표현`하는 것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티스 자신이 생각한 화풍을 끝까지 믿고 추구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화풍을 어느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았고 오히려 비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티스는
나는 균형이 잡힌 무구(無垢)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지쳐버린 사람에게 조용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그림을 말이다.
[출처] 위키백과 -앙리 마티스-
라고 말하면서 끝까지 자신의 화풍을 믿었던 것이다.
이처럼 마티스는 자본주의의 흐름에 편승하면서
인간의 삶에 해를 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앙리 마티스가 작업하는 모습이다.
너무 평화로워 보이고 행복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