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가족'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15년 전 장남 '준페이'를 떠나보낸 상처를 떠안고 지내는 부모의 집에 모인 3대의 가족들이 함께 준페이의 기일을 보내는 하룻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먼저 데뷔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은 대개 그 연출 경험이 묻어나는데, <걸어도 걸어도>도 마찬가지로 극적인 서사나 적극적인 감정 표현 없이 일상적인 어느 하루를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
다큐멘터리적 형식을 통해 사실적이고 자연스럽게 인물들을 보여주는 고레에다의 영화들은 크게 두 가지 효과가 나타나는데, 먼저 첫째는 일상 속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에서 하나의 기억만을 선택해야 하는 사후 세계를 다룬 영화 <원더풀 라이프>가 대표적인데, 사후 세계라는 판타지적 설정을 지니고 있지만 인물들이 각자의 인생을 돌아보고 이야기하는 방식은 다큐멘터리와 상당히 유사하다. 때문에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의 인생과 연결 지으며 영화와 함께 그동안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두 번째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태도를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영화 <아무도 모른다>와 <어느 가족>은 각각 실제 있었던 아동 방임 사건과 죽은 노부부의 연금을 불법적으로 받아 생활하다 체포된 사건에서 모티브로 만들어, 영화 속 서사를 사회적 문제로 확장한다. 극적인 서사나 감정들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각 인물들을 세심하게 다룬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약자들의 삶을 공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 한 명으로서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그 책임감을 다시금 일깨우게 된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한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다루고 있는 만큼 전자의 효과가 나타난다. 장남을 잃은 부모의 상황과 그 이후 다소 서먹해진 3대 가족들, 재혼한 차남으로 인해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손주까지 함께 하는 모습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하며 누군가의 죽음은 반드시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가족에게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적이 한 번쯤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걸어도 걸어도>의 가족은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기에 영화 내에서 가족 간의 솔직한 소통을 어려워하고, 형과 부모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주인공 '료타'의 모습을 보며 관객은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고 영화가 다루는 상실, 애도, 그리고 후회의 감정을 여러 차례 느끼게 된다.
'가족 영화'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최근 몇 년 간은 혈연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족, 즉, 유사 가족 혹은 대안 가족을 소재로 삼으며 가족의 의미를 확장하고 또 반문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보다는 사뭇 이전(2009년 개봉)에 만들어진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료타와 재혼한 유카이의 아들 아츠시를 제외하고는 3대가 모두 혈연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던데 묘하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 가족을 보고 있으면 (혈연) 가족이 과연 정말 다 가깝고 끈끈한 유대감이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인지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이후 대안 가족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묻게 된 시작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족이니까 서로 이해할 수 있다거나 가족이니까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가족이니까 들키기 싫다'거나 '가족이니까 모른다' 같은 경우가 실제 생활에선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한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中 -
아들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서 의사가 되어 의사 집안을 유지하고 싶었던 보수적인 아버지 '요코야마' 밑에서 유감스럽게도 두 아들들은 의사 일을 선택하지 않았다. 심지어 료타는 현재 안정적으로 일을 하고 있지 않아 일이 바쁜 척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준페이가 희생하여 구한 소년 '요시오'를 15년 동안 매년 준페이의 기일에 부르는 어머니 '토시코'에게 료타는 "이제 요시오를 그만 불러도 되지 않냐"라고 말하지만, 이에 어머니는 "증오할 상대가 없는 만큼 괴로움은 더한 거야. 그러니 그 아이한테 1년에 한 번쯤 고통을 준다고 해서 벌 받지 않아. 그러니까 내년 내후년에도 오게 만들 거야"라고 말한다. 이후 집에 들어온 나비를 보며 어린아이처럼 준페이를 찾는 토시코의 모습을 본 료타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과 상실감이 무뎌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다. 야구를 좋아하던 아버지가 최근엔 축구에 빠졌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고, 설에 다시 보자고 말하는 부모님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료타는 유카이에게 "설에는 가지 않아도 되겠어. 1년에 한 번이면 됐지"라고 말한다. 걸어도 걸어도 힘겨운 집 앞의 그 계단처럼, 걸어도 걸어도 가족의 진심에 닿는 길은 멀게만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늘 이렇다니까. 꼭 한 발씩 늦어.
요시오가 어떤 스모 선수를 닮았다고 토시코와 대화하던 료타는 그 스모 선수의 이름을 밤새 기억해내지 못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뒤늦게 그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서 내뱉은 '늘 이렇다니까, 꼭 한 발씩 늦어'라는 일상적인 한 마디는 걸어도 걸어도 좁혀지지 않는 가족 간의 거리와 걸어도 걸어도 맞지 않는 가족 간의 발걸음을 보여주는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다. 영화 속 준페이의 기일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토시코와 요코야마는 모두 세상을 떠난다. 료타는 나중에 아츠시가 크면 함께 축구장에 가자고 아버지와 약속한 것을 영원히 지키지 못하게 되었고, 스모 선수의 이름을 어머니에게 직접 말해주지 못하게 되었다.
한 발씩 늦었다는 대사 뒤에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돌아가셔서 '새로운 자동차에 어머니를 태워드리는 것'과 '아버지와 축구장에 가는 것'을 하지 못했다는 내레이션이 나오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나중으로 미뤄두었던 가족들과의 수많은 약속들과 가족에게 말하고자 했지만 애써 삼켰던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걸어도 걸어도>가 자신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느꼈던 감정을 담아 만든 영화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걸어도 걸어도>는 혈연으로 이어져 가장 가깝다는 '가족'의 맞지 않는 발걸음들의 현실을 슬프게 보여줌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되어 있기에 가족과 함께하는 현재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가족의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