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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m Jul 25. 2024

아주 그럴듯한 음모론으로 던지는 의문 - <댓글부대>

완전한 진실도 아닌, 완전한 거짓도 아닌 이야기들의 범람 속으로

* 스포일러 포함


진실은 어디에 

바야흐로 인터넷이 지배하는 시대다. 인터넷을 토대로 한 SNS와 유튜브 콘텐츠가 넘쳐흐르고 있다. 정보 과잉 시대에서 한 장의 사진이, 한 줄의 문장이, 1분도 채 되지 않는 영상이 사람들 눈에 들기 위해 무한한 속도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사실의 여부는 중요치 않다. 어떤 것이 빠르게 내 눈에 들어와 시선을 끌었고, 그럴듯하고, 최종적으로 '떠들 거리가 되는지'가 관건이다. 사실이면 땡큐고 아니면 '아니래' 해버리면 그만이다. 한없이 가볍게 떠들고 쉽게 소비해버리고 마는 이 시대 속에서 사실을 밝혀내고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의 막중한 책임감은 잊혀가고 있다.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언론이 무책임하게 가십을 택한 건지 사람들이 가십을 택해 언론이 무력해진 것인지 그 순서는 알 수 없지만 100% 진실의 중요성과 그 힘이 사라져 가는 슬픈 현실이 이어지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 <댓글부대>는 주인공 '임상진'(손석구) 기자가 제목 그대로 '댓글부대'를 취재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하이패스 단말기를 만드는 중소기업 회장이 대기업 '만전'(당연히 가상의 이름이다. 유추는 가능할지언정)의 계략에 의해 망하게 되었다는 제보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대대로 부를 쌓는 재벌로 대부분 이루어진 대한민국 대기업들의 횡포와 비리는 서민들의 반발심을 사기 좋은 토픽이다. 임상진 역시 제보에 현혹되었고 뒷받침할 근거도 충분하다 판단했기에 호기롭게 기사를 써 내려갔지만, 그는 한순간에 가짜뉴스를 쓴 '기레기'로 전락하고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세 명의 댓글부대원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임상진의 눈과 귀에 닿게 된다. "기자님 이렇게 된 건 다 만전의 공작 때문"이라는 아주 그럴듯한 제보와 함께.


100% 진실보다 거짓이 섞인 진실이 더 진짜 같다. 

여론 조작의 핵심 인물로서 활약했다고 주장하는 제보자 '찻탓캇'(김동휘)은 임상진에게 세 가지의 사례를 통해 댓글부대의 수법을 설명한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를지라도 이들의 방식은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 그럴듯한 메시지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던져주고 사람들이 알아서 떠들면서 화젯거리로 키우도록 하는 것. 소위 말해 여론 조작을 하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광고를 할 수 없는 담배를 홍보하기 위해 왈가왈부하기 딱 좋은 사치스러운 여성의 이미지를 활용하며 은근하게 담배를 미디어에 노출시킨다. 영화 흥행을 위해 '이 영화가 좋다'는 무수한 댓글 홍보 대신 경쟁작의 횡포를 역바이럴하여 경쟁작을 망하게 한다. 이때 경쟁작의 제작사가 실제로 부당한 일을 저질렀는지의 여부는 따질 필요가 없다.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이야기면 된다. 이미 불타오른 상황에서 해명은 의미 없다는 것을 아는 제작사는 긴말 없이 사과를 택한다. "100% 진실보다 거짓이 섞인 진실이 더 진짜 같다고요."라고 말하는 댓글부대원들은 영화 제작사들의 임금 체불, 스태프 부당 대우 이슈 등은 흔한 일이기에 완전한 거짓도 아니라며 자신들의 수법을 정당화한다. 일종의 바이럴 마케팅으로 시작했던 이들의 일은 당시 국정원처럼 보였던, 사실은 만전에서 온 직원에 의해 규모가 커진다. 한 남성의 1인 시위를 막기 위해 그 사람의 딸 '이은재'를 화젯거리로 만들어 여론을 조작한 댓글부대원들은 이은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소정의 목적은 달성했으나 애써 정당화했던 자신들의 업무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다소 겁을 먹은 듯한 셋은 서로에게 화살을 겨누며 잘잘못을 따지고, '찡뻤킹'(김성철)은 그 간의 일들과 이 모든 만전의 수법을 댓글부대원으로서 했던 방식대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폭로하며 영화는 절정을 향해 간다. 이 세 번째 댓글 공작 과정이 영화 내에서 풀어지기까지 찻탓캇이 설명하는 댓글부대 수법들은 사실상 동어 반복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설명하는 댓글부대의 행적들은 빠른 화면 교차와 댓글부대원을 연기한 세 배우들(김성철, 홍경, 김동휘)의 핑퐁하듯 이어지는 대사들, 그리고 그러한 대사들을 따라 전환되는 짧은 컷들로 리듬감을 형성하며 몰입감을 고조시킨다. 이은재의 죽음으로 세 사람이 와해되는 과정에서 이들이 대기업의 검은 그림자와 법의 울타리에 겁을 먹고 울먹거리며 싸우는 장면들 속에서 어린 청춘들을 대표하는 것 같은 세 배우의 얼굴들은 댓글 부대원들을 부리던 대기업과 아무렇지 않게 가십거리에 휘둘리는 이 사회를 경계하게끔 하는 데 효과적이다. 

기사는 끝나지 않는 연재소설과 같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촛불 시위의 시초를 파헤친다. "이것은 모두 실화이다"라는 자막과 함께. 만전의 PC 통신 유료화 소식에 분노한 한 중학생이 촛불을 들고 나왔고 이는 만전의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당시의 인터넷 속도는 빠르지 않았기에 촛불 시위의 규모는 작았지만, 대기업의 고개를 숙이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던 한 중학생의 패기는 이후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시위로 이어졌다고 한다. 


제보와 폭로글에 의하면 만전은 과거 중학생에게 당한 아픈(?) 과거로 인해 여론 조작을 전담하는 팀을 구성했다고 한다. 확실한 물증만 없을 뿐 만전의 행적은 충분히 사회적으로 고발할만한 기사거리였다. 임상진은 찻탓캇을 믿고, 개인적으로 조사를 더 이어간 뒤 이 모든 내용을 기사로 써서 세상에 공개한다. 하지만, 기사가 공개되자마자 이는 찻탓캇이 연재하던 웹소설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후 임상진의 시선 너머 세 명의 댓글부대원들이 기사를 보고 비웃는 컷이 합쳐지고 주저앉는 임상진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영화 초반부 임상진이 읊던 "기사는 끝나지 않는 연재소설과 같다"는 문장이 떠오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되었던 만전의 댓글부대 운영 내용은 음모론 같아도 그럴듯했는데 기사화되고 공개적으로 퍼지자 오히려 신빙성이 급격하게 떨어졌다는 영화 속의 한 댓글처럼, '이것은 모두 실화이다'라고 확신에 찬 자막과 내레이션으로 시작된 이 영화의 신뢰도 역시 순식간에 떨어진다. 영화 <댓글부대>는 임상진이 취재하던 내용뿐만 아니라 과감하게 영화 전체가 좇던 진실을 가볍게 만드는 방식을 통해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가 함께 찾고자 했던 완전한 진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는 인터넷 속에서 무수하게 쏟아지는 글들 중 무엇을 선택적으로 보고 애써 믿어왔을까.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정말 진실일까.

영화에서 절망했던 임상진은 자신의 소설, 아니 기사를 연재하기 위해 고독한 취재를 계속한다. 임상진은 새로운 제보자에 의해 찻탓캇의 제보 내용은 실제로 다 거짓이었으며, 사실은 새로운 제보자와 찻탓캇 둘이서만 댓글부대 활동을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영화가 스스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방식을 택한 이상 이 제보 역시 관객에게 찝찝함만을 남긴다. 임상진은 기사 대신 온라인 커뮤니티를 택한다. 실명 대신 가명을 택한다. 흔하디 흔한 '이영준'이라는 이름의 사람이 찻탓캇이라는 가명 뒤에 숨었던 것처럼 임상진도 흔한 자신의 이름에 커뮤니티 닉네임을 입힌다. 무수하게 올라가는 조회수를 보여주며 끝나는 영화 위로 가명 뒤에 숨은 평범한 이름들이 써내려 갔던 아주 그럴듯한 온라인 커뮤니티 속 완전한 진실이 아닌 이야기들의 그림자가 무섭게 드리운다. 임상진의 허무한 선택은 추락한 언론의 권위와 빠르게 정보가 오고 가며 휘둘리는 여론을 등에 업고 군림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현주소 그 자체를 상징한다. 인터넷 시대의 포문을 열고 그 과도기와 함께 성장한 80년대생 안국진 감독은 영화의 기둥이 되어준 손석구 배우, 그리고 현재 인터넷 시대를 익숙하게 살아가고 있는 90년대생 젊은 세 배우들의 앙상블을 통해 이 시대에 충분히 품을 만한 의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영화 <댓글부대>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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