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서 그러지”
퇴근 시간이 지났지만 끝나지 않는 업무에 계속 모니터 우측 하단의 시간을 확인한다.
그저 덮어두고 내일 와서 해도 될 일인데 가끔 끝내지 못하는 병에 걸리고야 만다.
내가 직면한 문제들을 유관부서에 ‘오늘’ 요청해 놓아야 ‘내일 오후’에라도 리마인드 해 볼 수 있기에 그럴 것이다.
크고 작은 고객사 수주건과 프로젝트에 대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책임이 있다 보니 당연 여러 부서에 협조를 구하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대개 부드럽고 상냥한 매너를 가져야 한다.
역지사지의 마인드를 늘 장착하여 내가 조금 더 손해 보며 실리를 따지는 것은 잠시 내려놓게 되는 그런 일이다.
이런 일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
10년 즈음되니 나 자신은 희미해지고 일을 처리하는 사람만 남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당돌하고 당찼던 나는 지금은 분쟁은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것이 됐다.
그러나 갑자기 쥐도 새도 모르게 분쟁의 기로에 서게 될 때가 있는데 목소리를 키우는 대신 상대방을 최대한 이해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다 좋은데 모든 과정엔 에너지가 쓰이고 힘이 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평소보다 나 자신은 고이 접어둔 날이었다.
1시간의 초과 근무 후, 얼른 차에 올라타고 집으로 향했지만 무슨 플레이리스트가 차 안 공기를 채우는지도 모르는 채 또 쌓인 메일을 쳐내며 곡예 운전을 했다.
그리고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니 당연히 뻐근한 눈과 손가락이 하루의 피로를 더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빠르게 생각한다.
‘안심 한 덩이가 남았었지 구워야겠다. 고사리 유통기한이 오늘 까지지. 밥솥에 밥은 있었나? 오늘 저녁밥이 너무 늦겠네. 울아기 배고프겠다.‘
9월 중순의 저녁은 아직도 후텁지근했다.
퇴근 후 옷만 갈아입고 불 앞에 서서 고기를 굽고 반찬을 하는 것조차 습관이 되었다.
아이에게 하나라도 갓 지은 음식을 해 먹이는 보람이 크다.
7시가 넘어서야 다 같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아이는 역시나 재잘재잘할 말이 어쩜 그리도 많은지 나랑 남편이 밥을 반 이상 먹을 때까지 밥에는 손도 안 댔다.
몇 차례 얼른 먹으라고 말했지만 장난만 치는 아이가 잠시 야속하게 느껴졌다.
“왜 안 먹어~ 고기랑 채소 반찬이랑 같이 먹어야 튼튼해져. 키도 100cm 넘을 수 있고!”
“먹을 거야~ 엄마 아빠 거의 다 먹었어?
“응~ 혹시 반찬이 맛이 없어서 안 먹는 거야? “
아이는 끄덕거리며 내 눈치를 살짝 살폈다.
“어유~~~~ 키 크고 튼튼해질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건데 그럼. 얼른 먹어!”
라고 쿨하게 말했지만 내 표정이 안 좋아 보였나 보다.
몇 숟갈 뜨더니 의자를 내 옆으로 직접 옮기고
식판도 끌고 와 내게 딱 붙어 앉았다.
그러더니 내 오른 어깨에 자기 머리를 기대어 밥을 오물오물 씹었다.
“왜 이리 왔어?”
“엄마가 그냥 너무 좋아서 엄마 옆에서 붙어서 먹으려고 왔지. 엄마 사랑해요 “
난 또 갑자기 눈에 눈물이 꽉 차 올라 앞이 흐려졌다.
엄마 좋다는데 사랑한다는데 엄마는 왜 우는 거지? 하는 놀란 눈으로 아이는 날 쳐다봤다.
“엄마 나 안사랑해서 우는 거야? “
“아니야 네가 엄마 사랑한다고 해서 너무 좋아서 우는 거야”
하루감 꼬깃꼬깃 접어 두었던 나 자신이 꼿꼿이 펴졌다.
하루간 심적 피로가 싹 맑게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너에게만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 인정 받는 것 같다 사랑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