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동을 잘한다. 강연을 듣거나, 글을 읽을 때, 누군가의 삶을 들려주는 TV 프로그램을 볼 때 툭하면 감동을 한다. 남의 인생에서 배울 점도 잘 찾는다. 감정 이입은 또 얼마나 잘하는지, 올림픽 시상식을 보면서도 어김없이 운다. 선수의 감격한 표정 하나만으로 내 마음은 이미 그의 고통스러운 지난날들에 가닿고는 지인이라도 되는 듯 운다. 누구의 이야기든 참 뭉클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다.
유명인이나 전문가의 이야기뿐 아니라 누구의 이야기를 듣더라도 다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새겨 듣게 되고(물론 길게 가지는 않는다), 그의 삶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기꺼이 백수가 되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택했다든가, 비혼을 결정하고 가만가만 자신을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산다든가, 온가족이 낡은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간다든가, 좋아하는 일을 즐겨 하다가 직업으로 삼게 된 이야기라든가. 특별하든 특별하지 않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참 좋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존경과 깨달음에 뒤이어 자연스럽게 부러운 마음이 들고, 연이어 나는 지금까지 뭘하며 살았나 하는 자기 반성을 하게 된다. 이럴 때면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는 거다. 다른 사람의 삶은 그대로 다 좋아보인다면서 정작 스스로에게는 호의적이지 않다니. 모든 삶이 그대로 가치 있고 아름다워 보인다면 내 삶도 마찬가지여야 하는데 정작 내 자신은 참 못마땅하다는 것.
내가 나를 긍정하며 응원할 수 없다면, 즉 어떤 이유로 내 자신이 마음에 안 든다면, 누군가의 삶은 다른 이유로 멋있어 보였다는 이야기다. 그래, 그 사람들이 좋아 보였던 것은 그가 선택한 삶의 어느 한 부분이 사실은 내가 바라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애초에 나는 박애주의적 관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 맞아,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사람들이 오죽 많았었나.
그럼 솔직해져 보자. 나는 어떤 삶을 사랑하는가. 열심히 도전해서 성공한 사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 자신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돌보는 사람, 자신의 가치관을 기꺼이 좇는 용기 있는 사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즐기는 사람, 따뜻하고 너그러운 사람, 상처를 극복해가는 사람, 꾸준함의 미덕이 있는 사람, 그리고 읽고 쓰는 사람. 맞아 읽고 쓰는 사람!
만약 꾸준히 읽고 쓰게 된다면, 타인의 삶을 긍정하는 게 취미였던 내가 스스로의 삶도 긍정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사이 위에 열거한 다른 모습들에도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미 이 글을 쓰는 오늘만 해도 다른 날과는 분명 달랐으니까.
우선, 그 귀하다는 첫걸음을 뗀 나를 칭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