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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Aug 18. 2017

새로운 도전,
아빠와 아들만의 특별한 1박 2일

추억, 그 무한의 조력자

추억, 그 무한의 조력자


여행? 초등학교 1학년 애만 데리고? 그것도 아빠랑 단둘이? 집으로 가는 만원 전철 안에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피식'하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전철 차창 속 어둠 저편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던 아저씨도 나와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얼토당토 하지 않게 무슨 여행인가? 요즘 너무 피곤했나. 별 쓸데없는 생각이 다 든다. 초딩 1학년 아들 녀석만 데리고 여행이라니. 파주에서 서울로 왕복하는 출퇴근길이 여행길이자 고난길이건만 여행은 무슨. 하고, 생각이 정리될 때쯤 붐비던 경의선 전철도 한산해졌다. 최근 우리집 인근에 신도시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서 갑자기 유동인구가 늘면서 괜히 전철만 더욱 복잡해졌을 뿐, 거리마저 가까워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서울에선 먼 곳이다. 이내 전철의 안내방송이 내 목적지를 알리고 있었다. 내일모레면 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여행이 떠올랐다. 떠올랐다기보다는 내 몸 어딘가 숨어있던 여행이 나를 흔들어 깨운 것 같았다. 여행 가자고. 근데 왜 여행이었을까?

이날 문득 떠오른 '여행'이라는 단어는 며칠 동안 머리 속에 맴돌았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대학에 들어간 이후 가끔 여행길에 오르곤 했었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즐거웠다. 사실 더 좋았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루 종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대학생활은 내가 꿈꿨던 것과 일치하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단 한 가지 일치하는 것이 있었다면 친구들과 함께 밤새 술 마시고 놀 수 있다는 것뿐. 무미건조하고 반복되는 일상의 피로함은 짧은 여행으로도 충분히 회복되었다. 사실 회복이라기보다 지나친 과음의 후유증으로 술독만 잔뜩 올라 집으로 기어 오다시피 한 음주 여행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1년에 한두 번 친구들과 떠났던 그때의 추억들이 몸속 깊이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여행은 힘들고 지친 내게 새로운 활력을 주는 그런 존재였는데 사느라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어제 만난 것처럼 아무 스스럼이 없는 것도 우리가 함께 쌓아 둔 추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좋은 추억. 특히 어린 시절 가족 간의 아름다운 추억만큼 귀하고 강력하며 아이의 앞날에 유익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간직한 아름답고 신성한 추억만 한 교육은 없을 것이다. 마음속에 아름다운 추억이 하나라도 남아있는 사람은 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추억들을 많이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다” 


이 글은 아빠인 나와 아들인 진우와 함께 떠난 지난 1년 간의 여행기록이다. 아들에게 아빠와 함께 한 기억을 그리고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떠난 다섯 번의 여행에서 난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할 수 없는 무형의 탑을 쌓았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 아들과 함께 만든 추억은 내 삶이 끝날 때까지 나를 안전하게 지켜 줄 보호막을 만들어 주었다. 그것만으로 난 너무나 벅찬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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