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보영 Aug 20. 2017

1. 너무나 다른 내 두 아버지

아빠와 아들만의 특별한 1박 2일

난 아직도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른다. 


아버지라는 단어에 거리감이 느껴져서 아버지보다는 아빠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나이 들어서 아빠라고 부르면 나잇값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아빠가 나에겐 더 정감 있게 느껴져 앞으로도 한동안 아빠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단어를 쓸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따로 떨어져 사는 건 핑계일 뿐 아빠와 나 사이에는 대화가 실종된 지 오래다.

옛날 내 아버지도 여느 아버지들과 다름없이 집에서는 과묵하고 언제나 밖에서 일만 하셨다. 아버지의 노력 덕분에 우리 식구는 밥을 굶거나 따로 돈 걱정을 한 적은 없다. 나 역시 평범한 가정에 살면서 별 문제 일으키지 않으며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평범했던 어린 시절만큼 남들과 비슷한 부자지간의 추억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이렇다 할 추억이 없다.

물론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있다. 그런데 그 기억들도 추억이 될 만한 기억이라기보다 내가 떠올리는 어떤 장면에 아버지가 계셨다는 정도여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원래 아버지는 그런 존재인 걸로만 알고 컸다. 왜냐하면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 바빴고 남의 집 사정을 알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남들도 비슷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친구들의 아버지에 대해 궁금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장가를 가고 또다른 아버지가 생기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또다른 아버지인 장인어른은 내가 아는 아버지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두신 다복한 장인어른은 겉으로는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지만 속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잔정이 넘치시는 분이시다. 아내는 장인어른을 무서워하면서도 진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한다. 이젠 연세가 많아지셔서 가끔이라도 어디 편찮으시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아내는 가슴 아파서 눈물을 보일 정도로 부녀간의 정이 돈독하다. 그건 비단 막내딸인 내 아내만 그런 건 아니다. 가깝진 않지만 우리보다 비교적 가까이 사는 큰처형과 작은처형도 장인어른을 생각하는 정이 남다르다. 처가에 갈 때면 가끔 나오는 옛날 어린 시절 얘기에 장인어른과 함께 한 추억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장가를 잘 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게 그렇게 살갑게 해주시지 않았던 내 아빠에 대한 야속함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와 좋은 추억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극히 제한된 소통마저 없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반면교사로 삼아 내가 배운 것은 적어도 아버지처럼 자식을 키우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돈을 벌어오고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들고 자식들에게 옷을 사입히고 먹을 것을 먹이고 학교를 보내 교육시킴으로써 자식을 사회에서 쓰일 재목으로 키우는 것은 사회적 존재로서 당연히 해야 할 부모의 역할이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 할 역할을 다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술 더 떠서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다는 것 혹은 남들이 존경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으로 다른 어떤 부모보다 자신이 월등히 자식들에게 잘 해주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것은 자가당착일 뿐이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내 아버지도 그리 넉넉하지 않은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게다가 6남매 중 막내로 자라면서 아마도 부모의 애틋한 정을 많이 받고 자라지는 못하셨던 것 같다. 내가 태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나이 30대 초반에 아버지를 여읜 것이다. 중학교 때 시골에서 서울로 학교 다니러 상경했으니 그나마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은 채 15년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보고 배운 아버지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대가 그랬고 경제적인 상황이 그랬고 남자라는 이름이 가진 시대의 허울이 그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객관적인 상황이 부모 자식 간의 사랑마저 냉각시켜 버렸다고 하기에는 생물학적 부자관계가 너무나 끈끈한 면이 있어 보인다. 내 자식을 낳아 키우다보니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어쩌면 부자 사이의 소원한 관계의 원인은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가 원인일 경우가 많다. 일하는 시간은 많은데도 월급은 쥐꼬리에다가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만 간다.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에는 부업이라도 해야 아이들 학원비라도 댈 수 있다. 전업주부인 엄마들은 무료 생활정보지의 파트타이머 일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이 현실이다. 하루하루 경제활동에 지친 몸을 가지고 자식들을 좀 더 살갑게 보살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지극히 사회구조적인 것으로 국가가 책임을 져야하는 부분도 있다. 탁아와 보육 그리고 교육에서 국가적 역할과 책임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소통과 이해는 개별적인 경제적 문제라든가 국가가 가지는 사회적 책무와는 깊은 상관관계를 갖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로지 가정에서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인간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도전, 아빠와 아들만의 특별한 1박 2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