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Personal Training

왜 나는 또 '울컥'하고, 왜 또 '버럭'했을까?

by 백소라


감정을 ‘문제’가 아닌 ‘기술’로 다루는 시대

우리는 이제 감정을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다루어야 할 ‘기술’로 인식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감정’은

억누르거나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조절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나는 감정에 대한 훈련을 연구해왔다.

감정을 다스리는 프로세스에 대해 공부하고,

훈련을 통해 성장하는 여러 사례들을 보았다.

가장 처음에는 내가 그 사례기도 하다.

감정훈련은

개개인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며,

반복을 통해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감정 Personal Training

그것을 시작해보려 한다.


울컥' 나를 덮치는 순간

눈물이 차오른다.
방금 전까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단 한마디,

단 한 장면에 가슴 어딘가 깊은 틈에서

무언가가 솟구친다.

말도 안 되는 감정이 아니라,

말로 다 하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억울함, 고마움, 외로움, 안도.
그 모든 것들이 뒤엉켜 한순간 목울대까지 차올랐다.

숨을 들이켜도 가라앉지 않고, 고개를 돌려도 쏟아질 것 같아서 그저 가만히, 그대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울컥’이었다.


“왜 울컥을 조절해야 할까?”

나는 다섯 살 때부터 나만의 ‘울보송’이 있었다.

”짤순이 짤순이 울보래요.“

그랬다.
하도 울보 소리를 들으니, 울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껏 울었다.

그러다 보니 울음과 울분, 울컥을 조절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나는 참 많은 순간들을 불편하게 살아왔다.

억울함을 토로해야 할 때,
서럽게 맞이한 상황 속에서 냉정을 되찾아야 할 때,
눈물보다 말이 필요할 때,

나는 늘 눈물로 시작해,

결국 나를 설명하지 못한 채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큰아이가 나를 닮았다.
그 불편함을 너무 잘 알기에,

나는 아이를 타이르고 또 채근했다.


“울면 해결되는 게 없어.
너의 마음은 더 약해지고, 결국 울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엄마가 그랬거든. 우느라 말 못 한 날이 너무 많았어.
그래서 엄마의 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억울함을 남긴채 살다보니 그게 너무 힘들어“


아이에게만큼은 이 불편함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배우기 시작했다.


살면서 그랬다.
울컥, 도리없이 쏟아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합리화했다.

“세상에나, 그리도 힘들었구나.
이런 말에 울컥하다니.”
“그럼, 그럼. 넌 그럴 만도 하지.”

어쩔 때는 일부러 울컥할 준비를 하기도 했다.
“이제 곧 울컥하겠지. 오늘은 울어도 괜찮아.”
그렇게 나를 안심시켰다.

바로 그때가, 우리가 조절해야 할 ‘타이밍’이다.


버럭' 나를 뚫고 나오는 순간

결국 터지고 말았다.

몇 번을 눌러보았지만,

감정은 생각보다 먼저, 나를 뚫고 나왔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에잇, 모르겠다.”

나를 뚫고 나온 ‘버럭’은 어느새 내 손에 잡히지도 않을 만큼 멀리 가버렸다.
그 파장이 아이의 어깨에 닿았고,

상대의 표정을 얼어붙게 했다.

순간은 끝났지만,
공기에는 내 안에서 흘러나간 그것이

여전히 무겁게 떠 있었다.

분노, 화, 조급함, 수치심, 불안.
그 모든 것이 한순간 뒷덜미까지 차올라

정수리를 뚫고 나갔다.

이미 늦었다.
주워 담을 수 없는 그 무게는 반복이 된다.
학습이 될 법도 한데, 결국 또 내보내고 말았다.


“왜 분노를 조절해야 할까?”

분노는 정당하다.
하지만 표현 방식이 잘못되면,
상대도 다치고, 나도 다친다.

참으면 병이 되고, 터뜨리면 후회가 된다.
그래서 분노는 참는 게 아니라, 다루는 것이다.

지키고 싶은 관계를 위해,
무엇보다 무너지고 싶지 않은 ‘나’를 위해.


첫 번째, 버럭의 기억

서른 살, 동대문에서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엄마가 갑자기 집에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쁨 반, 설렘 반, 그리고 두려움 반.
아마도 몇 년 만의 방문이었다.

그런데 차가 막혔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늘 초조하고 조급하셨다.
그 단어들은 엄마를 설명하는 상징 같은 것이었다.

'어쩌나, 엄마가 화내기 전에 얼른 도착해야 하는데.’

손톱은 이미 너덜너덜했고,
입에서는 온갖 빠른말이 흘러나왔다.


"엄마 지금 가고 있어~

차가 너무 막혀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네 어쩌지~"

나는 여느 때처럼 주눅이 잔뜩 든 목소리로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돌아오는 말은 역시나, 엄마다웠다.

차안은 온통 불안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그 순간,
참아왔던 초조와 불안이 폭발했다.

“엄마, 그냥 집에 가!!!
내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와서
사람을 힘들게 해!
일하다 말고 오라니까 오긴 왔지만, 차가 막히는 걸 내가 어떻게 해!!!
그냥 가!!!”

뚝, 전화를 끊었다.

'oh my God!!'

그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엄마에게 말대꾸 한 번 크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늘 착한 딸, 말 잘 듣는 딸, 모범생 딸이었다.

그런 나의 ‘버럭’은
삼십 년의 세월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나를 뚫고 나와버렸다.

전화를 끊고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후련함, 대견함, 그리고 이상한 해방감.

이게 뭐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 순간의 차 안 공기,
그 묘한 자유의 감각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 잘했어"

물론, 집에 도착해서 난,

서른 살의 나이에 엄마에게 뺨을 맞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삼십 년 말대꾸도 못해 본 내가 그렇게 쏟아봤으니

이젠 쏟아낸 순간의 기억이 남게 되었으니 말이다.

'쏟아냄의 기억'

다음번에도 나를 쏟아낼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하지만 깨달았다.
스킬이 필요했다.

뺨을 맞지 않으려면,
세상의 원망을 한 몸에 받지 않으려면,
버럭을 다루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오락실의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을 떠올린다.

캐릭터는 조이스틱으로

발공격, 팔공격, 필살기를 조합한다.
처음엔 공격에 맞기도 하고,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하지만 반복 훈련을 통해
가장 적절한 대응 스킬이 자동으로 발동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울컥 공격에 대응하는 기술,
버럭 공격에 대응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제 나는 ‘울컥’할 준비가 되었다.
버럭’할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주도할 준비도 되었다.

그날의 버럭은 나의 첫 ‘필살기 발동’이었다.


하지만 그건 단 한 번의 크리티컬 히트였을 뿐,
나는 여전히 울컥에 맞고, 버럭에 데이고 있었다.

이제 진짜 ‘감정 스킬 트레이닝’을 시작할 때다.


울컥과 버럭은 모두 나를 지키기 위한 뇌의 반응 시스템이다. 울컥은 억눌린 감정이 터져 나오는 정서적 SOS,
버럭은 통제 불능 상황을 막으려는 생존적 방어반응이다.


즉, 이 둘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볼륨 조절”

볼륨을 줄이지 못하면
— 울컥은 자기표현의 기회를 삼켜버리고,
— 버럭은 관계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건 감정의 끄기(off)가 아니라

볼륨 조절인 것이다.


울컥은 “지금 내 안에 말하지 못한 억울함이 있다”는 신호. 이 신호를 조절하지 않으면 감정이 ‘몸’으로 넘치고, 조절하면 감정이 ‘언어’로 바뀐다.

버럭은 화가 아니라 두려움의 언어. 그래서 버럭을 ‘참으라’고 하면, 그건 두려움을 ‘방치하라’는 말인 셈이다.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이 책은 그 훈련의 첫 페이지다.


나의 감정을 훈련하기 위해,

울컥’과 ‘버럭’이라는 대근육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그 대근육을 지나,
멘탈 코어’, ‘불안’, ‘비교’, ‘미루기’, ‘인내’, ‘회복’ 같은
감정의 소근육들을 단련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감정을 유지하고 다스릴 수 있는

‘감정 유지어터'가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나’를 위해서 말이다.


이 책이
누군가의 울컥과 버럭을 다루는 첫 연습이 되기를,
그 대근육을 통해 감정의 주도권을 되찾기를,
그리고 결국 ‘나를 다스릴 수 있는 나’로 성장하기를
마음 깊이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