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만>시한부, 그러나 '인생'은 아직 ing

by 톺아보기

책 <인생 수업>은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들이 남겨준 '인생의 가르침'을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책으로 엮은 것이다.



왜 '수업'일까? 그건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그 누구라도 예외없이 '삶'이라는 학교에 등록된 것이라고 책은 말한다. 즉 '배움'을 얻기 위해 우리는 이 세상에 왔다고.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 등 우리가 살아있는 한 배워야 할 과목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배움'을 제대로 못하면 평생 '나머지 학습'을 하듯이 반복된 미션을 부여받게 된다는 것이다.



삶의 미션이라던가, 수업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수도 있다. 인생이 학교라니, 뭘 배워야 한다니, 생뚱맞기도 하다. 살기도 바쁜데. 책 속에는 죽음을 앞둔 한 소년이 등장한다. 죽음을 앞둔 소년에게 무슨 수업이 필요할까? 저자가 처음 만난 소년은 자신의 모습을 곧 포탄을 맞으려는 모습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아직 어린 소년에게 다가올 죽음은 '파괴'일뿐이었다. 하지만 저자와 함께 '호스피스' 작업을 하며 자신에게 닥친 일에 순응한 소년은 날개를 달고 천국으로 날아가는 자화상을 그렸다. 두 그림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자화상를 다르게 그리기 시작한 소년은 다가올 죽음에 고통받는 대신 남은 생의 즐거움과 의미를 찾았다고 한다.



IE002917156_TEMP.jpg



인숙 앞에 다가올 죽음


곧 포탄을 떨어질 모습으로 자신을 그린 책 속 소년은 <한사람만> 주인공 인숙(안은진 분)과 다르지 않다. 아직 젊다. 그런데 돈을 벌기 위해 목욕탕에서 아줌마들과 악다구니를 하며 때밀이를 한다. 인숙의 유일한 동거인인 할머니는 좀 폼나는 일을 하라고 안쓰러워한다. 그런데 어릴 적 친구들에게 떠밀려 수영장에 빠져 생긴 귀앓이를 제때 치료 못해 생긴 '장애'를 가진 인숙 때밀이가 이 세상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두통과 어지럼증에 시달리다 쓰러져 병원에 간 인숙, 뇌종양이란다. 심지어 '시한부', 그녀에게 허락된 시간이 몇 달 남지 않았단다. 그런데 인숙은 덤덤하다. 살면서 이 세상의 '일원'이 된 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미련이 없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안타깝다. 할머니에게 죽음을 보이고 싶지 않은 인숙은 제 발로 '호스피스 아침의 빛'을 찾는다. 생전 처음으로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아버지에게 호스피스 입소 비용 500을 요구한다.



<한사람만>은 그렇게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인숙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즉 이제 '마침표'를 찍을 일만 남은 인숙, 그런데 책 <인생 수업>이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마지막 '인생 수업'을 하듯, 이젠 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인숙에게 아직 남은 삶의 미션이 있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IE002917157_TEMP.jpg



두 사람을 살리고 한 사람을 죽인 인숙


이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 표인숙과 민우천(김경남 분), 여느 로맨틱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그들은 '첫 눈'에 반한다. 그리고 심지어 어린 시절부터 얽힌 '사연'도 있다. 게다가 3회 엔딩, 두 사람은 급작스럽게 키스까지 하게 된다. 러브 스토리의 클라셰는 다 등장한 두 주인공의 '인연', 하지만 그 인연의 속내를 살펴보면 만만치 않다.



호스피스 아침의 빛에 들어온 인숙, 그런데 인숙에게는 할머니 말고 맘에 걸린 또 한 사람이 있다. 인숙의 동네에 사는 산아, 가정 폭력으로 엄마가 집을 나간 형편에 거듭된 폭력은 이제 산아의 목숨을 노린다고 인숙은 생각한다. 그래서 어차피 죽을 거 '한 사람만' 데리고 함께 죽자는 세연(강예원 분)의 비몽사몽간의 분노에 인숙이 반응했다. 의기투합 함께 나선 인숙과 세연, 그리고 미도(박수영 분)는 산아의 아빠를 징벌하러 나섰다. 그리고 산아의 아빠를 인숙이 골프채로 후려치고, 그 빗속에서 산아를 감싼 우천을 보고 후드를 벗었을 때, 거기서 우천의 가슴이 반응했다.



이 어이없는 '첫 눈에 반함', 그런데 사실 두 사람은 오랜 인연이 있다. 우천의 아버지가 우천과 엄마를 데리고 차 안에 연탄을 피워 동반 자살을 획책했을 때 그 차의 유리창을 깨서 우천과 엄마를 살려낸 사람이 다름 아닌 인숙이었다.



<한사람만>은 죽음을 앞두고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찾은 아침의 빛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죽음의 시간,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숙은 삶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게 된다. 그 역설적 구성을 통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묻는다.



이 세상에 소속되어 본 적도 없다던 인숙, 그래서 더는 삶의 미련도 없어서 '한 사람만' 데리고 죽겠다는데 동참한 인숙은 산아를 구했다. 그리고 오래 전 죽어가던 우천도 구했다. 그렇다면 인숙은 '의인'일까? '살해범'일까?



늘 삶에서 배제되었다던 인숙, 그녀가 생각한 시작은 부모의 이혼이었다. 아버지도 자신을 버리고, 엄마도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인숙, 그리고 처음 아버지가 자신을 할머니에게 데리고 갔을 때 할머니의 매몰찬 외면은 여전히 인숙에게 생생하다. 그런데 호스피스 비용을 대준 아버지가 찾아와 하는 말은 달랐다. 인숙을 두고 이혼하던 부모님은 서로 인숙을 맡겠다고 싸웠다고 한다. 그런데 아빠가 인숙을 놓아주지 않은 거였다고 한다. 심지어 엄마가 미웠던 아빠는 인숙을 보고싶어하던 엄마에게 인숙을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엄마가 병을 얻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죽음 앞에서 인숙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삶의 색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심지어 그녀가 목격자라서 찾아온 줄 알았던 우천의 태도가 이상하다. 심지어 그녀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단다. 세상에 사람을 골프채로 때려죽인 날 밤 반하다니! 게다가 그저 한 방에 배정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었던 세연과 미도가 그녀와 죽이 맞기 시작했다. 평생 친구 한 명 없던 그녀의 인생 무대에 등장인물들이 줄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 사람이 아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삶이 지속되는 시간이라는 막달레나 원장 수녀의 말처럼 오래도록 멈춰졌던 인숙의 인생 시계가 시한부 판정을 받자 움직이기 시작한다. 과연 포탄처럼 죽음이 자신을 파괴할 순간만을 기다렸던 인숙도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모습으로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될까? 2021년의 마지막 <한사람만>이야말로 지나온 시간, 그리고 다시 살아가야 할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작품일 듯 싶다.



작가의 이전글시리즈와 피터의 '성년식', -어른의 무게, 삶의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