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맛, 문명의 맛

- < mbc 다큐플렉스 - 칿과 불, 1부 불의 맛>

by 톺아보기

인류와 유인원 사이의 유전자적 차이는 아주 미미하다. 미미한 유전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종의 행보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 '차이'를 낳은 것은 무엇일까? 여전히 과학자들은 그 '차이'를 두고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 중 하나를 '화식'으로 보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인간에게 '불'을 나눠주는 바람에 매일 고통스런 벌을 받게 된 프로메테우스, 제우스 신이 숨길만큼 소중한 불, 그 '불'을 얻게 된 인간은 그 덕에 지구 별을 지배하는 우세종이 되었다. '불'을 사용하게 된 인간에게 가장 변화된 조리 대상은 '고기'이다. 고기를 불로 구워먹기 시작하며 인간은 보다 많이 고기를 '취'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덕에 영양 흡수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당연히 몸집도 커지는 게 인지 상정, 또한 몸집과 함게 인간의 뇌용량이 무려 3배 가까이 증가하게 되었다. 결국 불을 이용한 '화식'은 인류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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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다큐플렉스는 '불' 그리고 그 '불'로 요리를 하기 위해 도구가 되는 '칼'을 오늘날 인류 먹거리 문명의 핵심 키워드로 뽑았다. 2부작 <칼과 불>은 바로 그런 모티브로 부터 시작된다. 3월 18일 방영된 1부 <불의 맛>은 양식, 중식, 일식, 한식을 섭렵하며 문화별 불을 이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탐구한다.



문화별 다양한 불의 맛


그 시작은 근대 초 아직 일본을 통한 서구 문물 유입이 대부분이던 시절 서양 문명의 교두보 역할을 하던 조선 경성 철도 호텔이 전신이던 오랜 전통의 한 호텔을 찾는다.



서양 요리의 대표적 음식인 스테이크, 그저 고기를 불에 굽는 것이 아니다. 겉은 노릇노릇, 속은 촉촉하게 구워지는 고기, 이제는 요리라 보편적인 취미가 된 것과 함께 요리 좀 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마이야르 반응'이 스테이크의 포인트가 된다. 즉 아미노산과 환원당 사이의 반응으로 고기가 갈색으로 구워지며 나타나는 독특한 풍미를 일으키는 화학적 변화가 바로 서구식 '불의 맛'이다. '불맛의 제왕'이라는 '바베큐'도 다르지 않다. 직화에서 훈연까지 '불'을 다루는 방식과 정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타난다.



하지만 '불맛'이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건 '중식'이다. 중식의 대가 왕육성 씨는 중식의 3요소를 '칼, 불, 면'이라 정의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중식의 시작은 바로 '웍'으로 대변되는 불이라고 말한다. 웍을 기름으로 코팅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중식 요리, 화덕을 지렛대로 삼아 웍 안에서도 높은 온도의 부분과 낮은 온도의 부분을 오가며 빠르게 구워내는 중식이야말로 말 그대로 '불맛'이다. '웍헤이'라는 용어로 통용되는 이 '불맛'은 '기운', 숨결'이라는 헤이의 뜻처럼 재료의 향미가 절정을 이루는 순간을 뜻하는 것으로 '타이밍'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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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일식에는 '불맛'이 없을까? 일식의 불맛은 우리가 아는 불맛과 다르다. 23년 일식 외길 인생을 걸어온 윤상돈 씨는 일식의 불맛을 '정교함', '섬세함'으로 정의한다.



예를 들어 그가 자신하는 황금빛 고등어 초밥을 만들기 위해 낫으로 베어 낸 벼를 5년 이상 말려 그걸로 '오로시'한 고등어를 훈연한다. (오로시; 포를 뜨고 소금을 뿌려 수분을 제거한 후 식초로 겉면을 응고시키는 과정) 또한 생선회의 표면을 소나무 껍질처럼 보이게 만드는 과정인 '마츠카와'를 위해 뜨거운 물로 생선의 겉표면만을 익혀 콜라겐을 응집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불맛'은 어떤 것일까? 밥을 잘 먹기 위해 국과 반찬을 필요한 '탕반문화'인 우리의 불맛은 '섞은 맛'이다. 대표적인 조리 도구가 바로 '가마솥'이다. 가마솥이라는 조리 도구를 통해 제 3의 맛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른바 무쇠, 탄소 함량이 높은 주철로 만들어 지는 가마솥은 그 자체가 1500℃ 고온에서 불과 불의 싸움에서 만들어진 조리 도구이다. 열전도율이 낮은 대신, 천천히 골고루, 속속들이 재료를 익혀주는 역할을 한다. 가마솥으로 식혜를 만드는 사찰 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은 식혜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불의 노래'이자, 자연의 것들이 '화음'으로 어우러지는 시간이라 정의내리신다. 또한 화력이 세고, 잔열이 오래가는 '장작불'에 얹힌 가마솥, 거기에 밥을 하며 동시에 계란찜 등 여러 찜 요리를 함께 하는 '증숙(蒸熟)이라는 독특한 조리법을 발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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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의 맛은 어떨까? 다큐는 경기도 가평을 찾았다. 즐비한 장 항아리, 해콩을 강불에서 2시간 중불에서 2시간, 총 8시간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그걸로 다시 장을 만들어 한 해를 항아리 안에서 햇볕을 받아 '발효'되는 과정을 또 다른 '불의 맛'으로 정의한다.



또한 '손맛'도 일종의 불의 맛이라고 덧붙인다. 바락바락, 조물조물 나물을 무치는 과정에서 손의 열로 참기름이 불포화지방산이 음식의 재료 속에 녹아내리는 과정은 또 다른 불의 맛이라는 것이다.



'불맛'은 이제 익숙한 요리 용어가 되었다. 음식점에서 요리에 불맛은 익숙한 수식어가 되었다. 전문가는 인류 요리의 진화란 '불'을 활용한 거대한 화확 실험의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각 문명 별로 '직화'에서 부터, 손맛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불을 활용한 다양한 화학적 변화가 서로 다른 문명의 요리를 결과했다는 것이다. '불맛'이라는 관점에서 양식, 중식, 일식, 한식의 요리를 살펴본 관점은 신선했다. 하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남긴다. 왜 인류가 서로 다른 불의 맛을 이용하게 되었는지, 그 '다름'의 기원에 대한 보다 세밀한 접근이 있었으면 하는 궁금증이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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