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짜고짜 아들 집에 쳐들어가 엄마들이 마주하게 된 건?

- <아더후드>

by 톺아보기

언니는 아이가 이번에 집을 떠나 독립을 하기로 했다는 말 끝에 눈자위를 훔친다. 일때문이라는데도 마음이 편치는 않은 듯하다. 언니만 그렇지 않다며 위로를 전하면서, 그 마음이 어떨지 헤아려 진다. 나 역시도, '아더후드'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더후드(otherhood)? 마더후드(motherhood)와 대비되는 단어이다. 마더후드가 '어머니로써의 시절'을 뜻한다면, 그 대비되는 개념인 아더후드는 '어머니가 아닌 시절'을 뜻하는 것일게다. 자식이 있는데 어머니가 아닌 시절이라니? 자식이 다 크면 부모의 곁을 떠난 '독립'이 일반적인 서구 가족 문화에서 파생된 단어일 터이다. 하지만 이젠 결혼을 하지 않아도 '독립'을 하는 것이 젊은 세대들의 한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추세에서, '아더후드'가 남의 문화적 용어만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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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한 큰 아이가 한 달에 두 번쯤 집에 온다. 여전히 '내 식구'라는 시야에서 그 아이를 바라보다 어느 날 퍼뜩 정신이 들었다. 대학 때 기숙사로 떠나 서른 줄이 된 아이, 내게는 여전히 '아이'지만, 회사에서도 어느덧 '선임'이 된 아이에게 '집'과 '엄마'는 어떤 의미일까? 내가 생각하는 '가족'이 그 아이가 생각하는 '가족'과 같은 것일까?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아이들의 '원심력'은 굳어지고, 엄마로써 나의 구심력은 궁색해지는 시절, 2019년작으로 넷플릭스에 공개된 <아더후드>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엄마들이라면 한번쯤 보며 성인이 된 아이들과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머니날'이 '어버이날'로 바뀐 지 오래 전일이지만, 영화는 여전한 '어머니 날'로 시작된다. 어버이날이든, 어머니날이든 성장해서 독립을 했다고 아이들이 그 날을 그냥 지나간다면 어떨까?



다짜고짜 아들 집으로 쳐들어간 엄마들


학부형으로 만나 이제 아이들이 독립해 떠난 시절이 되었어도 여전히 '우정'을 나누는 질리언(페트리샤 아퀘트 분), 캐롤(안젤라 바셋 분), 헬렌(펠리시티 허프반 분), '어머니날'도 '쌩까는', 아들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급 뉴욕행을 도발한다.



엄마들의 막무가내 뉴욕행, 하지만 막상 첫 날 아들 집 안에 '안착'한 엄마는 캐롤 뿐이다. 하지만 캐롤의 아들 맷은 며칠 있겠다는 엄마의 말이 무색하게 가실 때 문 잘 잠그고 가시라는 말로 응답한다. 그래도 캐롤은 들이닥쳐 문이라도 열어줬지만, 질리언의 아들 대니얼은 엄마의 문자를 씹는다. 헬렌은 아예 아들네 집 문 앞에서 빙빙 돌다 스스로 호텔 행을 택했다.



질리언은 '엄마라는 느낌이 전혀 없어. 그냥 아이없는 여성이랄까?'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이에 캐롤과 헬렌 역시 공감한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을 대하는 그녀들의 태도는 여전히 '학부형'이던 시절의 그녀들과 다르지 않다.



아들의 집에 들어서자 마자 청소해주는 분이 있다는데도 불구하고 집 청소부터 하고, 아침을 안먹는다는 아들에게 아침부터 요리를 해주려는 캐롤, 문이 닫긴 아들의 집 창문을 통해 들어가 역시나 잔뜩 요리를 해놓는 질리언, 심지어 집에서도 요리를 잘 안하면서도 아들에게 요리를 해준다고 나서는 헬렌은 말만 '아더후드'일뿐, 여전히 '마더후드'의 시절 속에 산다. 심지어 캐롤은 아들이 초대하지 않은 일 관련 파티에 잠입하기 까지 할 정도다. 우리는 어떨까? 크면 다 소용이 없어라면서도 여전히 '내 새끼'라는 울타리를 치고 있지는 않은지.



여전히 그녀들에게 장성하고 독립한 세 아들은 '품 안에 자식'이다. 하지만 그런 엄마들의 태도에 아들들은 당혹스러워하고, 불편해 할 정도다. 이런 부모- 자식의 서로 다른 입장과 태도가 영화 속 해프닝을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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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무심한 아들과 그런 아들에게 여전히 집착하는 엄마들의 이야기인 듯하던 <아더후드>는 '내 새끼'가 최고라던 엄마들의 사연 속으로 한 발자국 들어가자 저마다 복잡한 속내가 펼쳐진다.



뉴욕에서 잡지 관련 일을 한다던 캐롤의 아들 맷, 아들의 집을 청소하다 아들이 참여한 잡지를 발견한다. 거의 누드에 가까운 남녀들이 등장하는 잡지, 결국 캐롤은 명문 고등학교를 나온 아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게 못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내심에 아들은 농구 코치이던 엄격한 아버지에 부응하지 못했던 그래서 '실패'한 지난 날을 들춘다. 그리고 어머니 역시 자신에게 내내 '실망'했던 것 아니냐며 아픔을 드러내보인다.



엄마의 문자조차도 '씹은' 질리언의 아들 대니얼에게는 또 다른 아픔이 있다. 오래도록 사귄 연인, 하지만 엄마는 그녀의 직업이 아들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반대를 했었다. 그런 엄마의 반대와 자신의 처지로 인해 고백을 미루던 대니얼은 결국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엄마마저 피하고 있는 중이다.



아들의 집에 들어서는 것조차 머뭇거리던 헬렌, 막상 아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묵은 갈등이 표면화되고 만다. 헬렌의 아들 폴은 동성의 연인과 함께 사는 중, 엄마는 아들의 그런 성 정체성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들이 자신에게 솔직히 고백하지 않은 게 원망스럽다. 아니, 아들이 자신보다 이혼한 친아버지와 더 가깝게 지내는 게 더 불만이다. 게다가 아들은 엄마모르게 자신의 정자를 레즈비언 커플에게 제공하여 '손녀'까지 생겼단다. 날벼락이다.



전형적인 미국식 코미디답게 각각 아들들과 맞부닥쳐서 한바탕 난리를 치룬 엄마들은 그 '해프닝'들을 통해 아들들이 왜 자신들과 '소원'한 관계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결국 자신을 마주하게 된 엄마들


그런데 '품안의 자식'처럼 여겼던 아이들이 저마다 가진 문제와 마주친 엄마들, 그 '해프닝'의 과정에서 마주하게 된 건 '아들'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엄마 자신들의 '관성적 삶'이다.



헬렌은 오래전 남편의 외도로 인해 이혼 후 재혼을 했다. 하지만 말끝마다 이혼한 남편이 소환된다. 이혼을 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헬렌의 시계는 10년 전 결혼의 실패에 머물러 있다. 10년을 묻어둔 이야기, 그 날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며 세 여성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살면서도 과거에 천착해 있는지, 그리고 그 날의 사건에도 왜 결혼을 유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몰랐던 그 날의 진실을 알게 된 이도 있다.



<아더후드>는 떠난 자식 발목 잡기라는 해프닝을 통해, 자식들이 성장한 이후의 삶을 어떻게 재정립해 나갈 것인가의 과제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남편과 사별한 캐롤은 홀로 유지하기에 버거운 큰 집을 남편의 추억이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유지하느라 고전 중이었다. 하지만 뉴욕 행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처지를 객관화시킬 수있게 된다. 낡은 매트리스를 창밖으로 내던지듯 과거의 추억을 내던진 그녀는 떠난다. 어떻게든 젊어보이려 안간힘을 쓰던 헬렌은 지금 여기 나와 함께 있는 이와의 행복에, 새로이 맞이한 '할머니'라는 역할을 기꺼이 맞이한다. 질리언은 뒤늦었지만 아들에게 사과한다. 스스로 변화한 그녀들로 인해 멀어져만 갔던 아이들과의 관계도 재정립된다.



심리학에서 부모 대의 심리적 트라우마는 고스란히 자식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부모가 자기 삶에 스스로 서지 못하는 한에서 그 부담은 자식들에게 까지 미친다는 것이다. 함께 살고, 함께 살지 않고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핵가족의 해체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아더후드> 속 어머니들의 고민은 이제 그저 남의 나라 코미디 속 이야기가 아닌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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