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 모레 육십, 독립선언서>
아침 7시 10분쯤 집을 나선다. 원래는 7시쯤 나섰는데, 아침 라디오 방송 오프닝 멘트가 매번 좋아서 그걸 듣고 나서니 10분 정도가 지체되곤 한다. 10분 정도의 여유를 부리는 이유 중에는 빨라진 내 걸음걸이도 있다. 집에서 일하는 곳까지 이제는 서둘러 걸어가면 30분 정도에 주파한다.
물론 돌아올 때는 다르다. 재래 시장을 들러 이것저것을 사고 돌아오면 한 시간 반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가끔 너무 지치면 버스를 타기도 하지만 내 사는 곳으로 딱 맞춤한 노선이 없어서 기다리느라 십여 분, 다시 내려서 걸여 십여 분하면 그냥 아주 힘들지 않으면 걷는 게 낫다. 올해는 꽤 춥다더니 쌀쌀해진 날씨, 그래도 여전히 볕이 참 좋고, 하늘이 맑다. '아이구 힘들어, 오늘은 차타고 가야지', 하다가도 일을 끝내고 나와 하늘과 햇빛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홀려서 걷고 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찾아오니 라디오에서도 그렇고, 만나는 이들도 부쩍 '가을을 탄다'는 말을 하곤 한다. 아마 나 역시도 예전같으면 내 먼저 가을을 타느라 쓸쓸함에 몸둘 바를 몰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말을 들으면 '일조량이 줄어들어서 그래,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은 햇빛을 받아야 생기는데 가을이 돼서 햇빛이 줄어드니 우울해지지. 계절이 바뀌어서 그런 거야.'라며 산책을 하라 권한다. 우울의 늪에 빠져본 나로서는 그래서 더욱 열심히 걷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굳이 '세로토닌'을 운운할 것도 없이 걷다보면 마음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간다. 날이라도 맑으면 온 우주가 내 마음으로 들어온 듯 가슴이 확 트인다.
내가 걷는 길, 나만의 여행
처음엔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서 시작한 걷기였다. 그런데 매일매일 단조로운 길을 다니는게 지겨워 이 길로도 가보고, 저 길로도 가보기 시작했다. 이쪽 골목으로 가보니 여전히 오래된 도심의 나즈막한 주택들이 향수를 자극한다. 저쪽 골목은 예전 살던 도시의 뒷골목처럼 먹자 골목에, 모텔에, 사는 곳은 달라졌는데, 뒷골목의 정취는 어찌 그리 비슷한지. 또 다른 골목으로 가보니 아름드리 나무들이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탁 트인 아파트 단지를 만나게 된다. 재래 시장이라도 들어서면 볼 게 '천지삐까리'다. 일을 하고 난 뒤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다 먹음직스럽다. 갓 쪄낸 떡들이며 방금 튀긴 강정에, 가을에 들어서면서부터 생새우들이 펄떡이고, 게들이 들썩들썩 군침이 절로 돈다. 그리고 또 다른 골목은....... '여행이 뭐 별 건가, 새로운 길을 처음 가보는 이게 나만의 여행이지.' 어쩌면 인생도 이 골목들처럼 구비구비 저마다의 정취를 주는 여정이 아닐까.
삶이 헷갈리던 올해 초 '타로'를 들춰봤었다. 올해의 카드로 '바보'가 나왔다. 한 남자가 자그마한 개나리 봇짐을 들쳐메고 길을 떠난다. 천진난만하게 걸음을 옮기는 그의 앞에 벼랑이 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나고 보니 올 한 해 딱 저 '바보'처럼 지내온 듯싶다. 천진난만하게는 아니지만, 벼랑 끝인 듯했던 상황에서 저 바보처럼 겁없이 걸음을 내딛었다. 낼 모레 육십을 앞두고 모든 것들이 다 처음이었다. 부부라는 울타리를 넘어, 나라는 사람으로 첫 걸음을 내딛는 시간, 당연히 모든 것이 서툴고 낯설었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이라 자부했는데 막상 홀로 살아가려 해보니 얼마나 내가 의존적인 존재였는가를 절감하게 되었다.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한 걸음 내딛다가 주저앉고, 다시 일어나 한 걸음 이렇게 '롤코'를 타며 걸음을 옮겼다.
하루에 두어 시간을 오고가며, 그리고 빵들이랑 씨름하며, 그리고 다시 돌아와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며 끊임없이 돌아보게 되는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바보'카드처럼 씩씩하게 걸음을 내딛었다고 하지만, 왜 뒤돌아보게 되지 않겠는가. 최선이었을까? 이런 질문은 수시로 고개를 쳐들었다. 끊임없이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이었다.
에릭슨을 비롯한 많은 심리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삶의 궁극적 목적이 '나'에게 이르는 길이라 했을 때, 솔직히 그저 하기 좋아 하는 말이려니 했다. 그저 살다 죽는 거지, 뭘 이루나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나 아내의 의무로부터 본의 아니게 자유로워진 시간, 그래서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시간을 겪어가다보니 그 '나'에게 이르는 길이 삶의 궁극적 목표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굳이 '사주명식(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토대로 이에 맞는 글자들을 풀이하여 만든 표)'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나란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내가 그랬었구나. 내가 원하는 게 이런 거였구나.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살아온 것이었구나. 그게 업이었는지, 운명이었는지 지나온 시간이 재해석되었다. 아이구, 내 팔자야, 했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나인 것을. 늘 '관계'에 방점이 찍혀 그 '관계' 속에서 전전긍긍하던 나라는 사람도 보였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헤아리려 애쓰면서 왜 정작 자신을 돌보며 사랑하지 않느냐는 문구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겠는가, 그런 나를 받아들여야지.
그런데 나를, 내 마음을 받아들이니, 한결 편했다. 심리학에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한 걸음을 나서는 것이라더니 그 말이 실감이 났다.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건, 다른 한편에서는 내 마음과 '객관적 사실'을 분리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면서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내 마음이 그러하고 싶다는 것과, 실제의 상황을 뒤섞여 소망과 실재 사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때문이 아닐까.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소망과 희망과 열망을 가지고 애쓰는 나 자신을 긍휼히 여겨주는 일, 그게 이제 내 몫이었다.
지나온 시간 동안 늘 나를 아끼고 사랑해줄 누군가를 원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내가 아끼고 사랑해주는 역할도 이젠 얼추 마무리되었다. 이제 내가 아끼고 사랑해줄 사람이 나밖에 남지 않았으니 내가 나를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갈 밖에. 그런데 어떻게 아끼고 사랑하지?
함께 책을 쓴 선생님의 글에 '좋다, 참 좋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 말이 그대로 참 좋았다. 그래서 배우려 한다. 뜬금없이 나도 말한다. '좋다. 참 좋다'라고. 맑고 푸른 하늘을 봐도,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올 때,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 무심히 넘어가던 순간들에 '좋다'라는 방점을 찍어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온통 좋은 거 일색이다.
'고생하셨어요', 나보다 한참 어린 기사님은 가끔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나는 웃으며 답한다. '고생은요, 돈 버는데요.' 빵과 씨름하던 시간도, 나에게 돈을 벌어주는 좋은 시간이 됐고, 기사님과 좋은 이야기를 나누느라 쏜살같이 흐른 시간이 되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시간은 하늘을 보며 걷는 산책이 되었다.
그런데 '좋다'는 유효기간이 있다. 마치 태엽시계처럼 늘 좋음의 에너지를 충전해 주어야 한다. 아침 7시 라디오 방송의 오프닝 멘트도, 인스타의 좋은 글귀도,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짓는 책 속의 한 문장도, 마치 매일매일의 산책이 세로토닌을 만들어 나를 우울하지 않게 하듯이, 매일매일 내 마음의 세로토닌을 만들어 나를 부추겨 가보는 것이다. 오늘도 그렇게 내 마음을 짊어지고 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