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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Oct 15. 2023

그녀, '자연인'이 되다

- <랜드> 

스테디 셀러 인기 프로그램 중에 <자연인>이 있다.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산골짜기,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사연'과 '야생의 삶'이 꾸준한 인기를 얻는다. 그런데 찾아간 mc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세상'에 소속되어 사는 삶이 여의치않았음을 '토로'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자연인>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남성'들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홀로 야생의 삶을 살아내는 게 여의치 않은 탓이 크리라. 그 여의치 않은 야생의 삶에 자신을 던진 한 여성이 있다. 우리에게는 <원더우먼> 시리즈에서 안티오페로 낯이 익은 '로빈 라이트'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랜드>이다. 

       


▲ 랜드 ⓒ 넷플릭스


 

자연인이 된 여성
<자연인> 프로그램은 '자연인'이라지만 예능 프로그램답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 삶의 조건이 구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찾아간 mc에게 대접한다며 삼겹살 구워주고 닭 삶아주는 식이다. 그런데 <랜드>의 주인공 이디(로빈 라이트 분)는 차원이 다르다. 랜트카를 빌려 짐을 싣고 나무만이 무성한 언덕 위 집에 도착한 그녀, 이 집을 소개해준 이에게 차마저 가져가라 한다. 핸드폰은 이미 오다가 쓰레기 통에 버렸다. 말이 집이지, 오래전 한 노인이 살다 생을 마감하고, 폐가다시피 한 지 오랜 집이다. 유리창은 깨지고, 집안에는 멀쩡한 게 없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 속에 어울려 있지만, 그래서 더 외롭고 힘든 경우다. 어떤 때 그럴까? 영화 초반 이디의 사연에 대한 정보는 충분치 않다. 그녀의 친구로 짐작되는 여성이 이디에게 삶을 놓지 말라하고, 그런 친구의 '조언'조차 이디는 모욕적으로 받아들인다. '삶'이 모욕이 되는 순간,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을 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워지는 순간, 그렇게 이디는 세상에, 사람들과 함께 머물 수 없어 홀로 도망치듯 깊은 산 속 오두막을 찾아왔다. 그녀가 내던진 그 모든 것이 그녀의 '고통'을 대변한다. 사람이 싫다는 그녀의 저항이 그녀의 상실을 설명한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차도, 핸드폰도 없이, 깡통 통조림만 잔뜩 싣고 오두막으로 숨어들 듯이 찾아든 그녀, 영화의 제목처럼 '랜드'에 문외한인 그녀는 '삶'을 버리는 심정으로 '랜드'에 자신을 던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랜드'의 그녀는 '고통'스러워 할 여유가 많지 않다. 오래 전 와봤다지만 낯선 그 '지역'에서 그녀는 '생존'하기 위해 매일매일 '전투'를 벌인다. 그래도 추워지기 전에는 할 줄 아는 낚시도 했다. 텃밭도 만들어 보려 했지만, 야생 동물들이 그걸 '허용'하지 않았다. 참치 통조림을 그냥 따서 끼니를 때우던 그녀, 하지만 아직은 '사냥'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날, 멀직이 떨어진 화장실에 있는 틈을 타서 열린 집 안으로 곰이 들이닥쳤다. 화장실에서 벌벌 떨던 그녀가 곰이 떠난 뒤 돌아간 집에는 남아난 것이 없었다. 바닥 구석에 굴러다니는 비스킷 조각을 입으로 밀어넣지만 닥쳐오는 추위와, 그보다 더한 '허기'가 그녀를 잠식한다. 그녀가 원했던 건 '죽음'이었을까? 

       


▲ 랜드 ⓒ 넷플릭스


 

'상실'의 연대 
굶어 죽는 건지, 얼어죽는 건지, 생사의 기로에 놓인 그녀의 집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왔다. 한참 뒤 정신이 든 그녀의 집에는 불이 피워져 있고, 그녀는 따뜻한 이불 안에 뉘어져 있다. 그리고 간호사가 그녀에게 약을 건넨다. 

죽어가던 그녀를 구한 건 미겔(데미안 비쉬어 분), 사냥을 다니던 그가 그녀의 집에 연기가 더는 오르지 않는 걸 보고 그녀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녀에게 도움을 준 대가로 건네던 돈을 거절한 그는 대신, 이 야생의 삶에 무지한 그녀에게 살아갈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사냥을 하는 법, 올무를 만드는 법,  그리고 사냥한 동물을 먹을 수 있게 처리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그, 완강하게 세상을 거부한 채 오두막에 웅크리고만 있는 그녀에게 '두레박'같은 손길을 전한다. 

그녀에게 애견마저 넘겨준 그, 그런 그가 이상하리만치 오랫동안 소식이 끊기자, 드디어 그녀는 처음으로 길을 나선다. 그녀가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데 100달러를 걸었다고 웃는 미겔,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한때 술에 취해 운전을 했고, 그러다 아내와 딸을 잃은 그는, 이다에게 외려 고맙다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이다는 비로소 그런 그에게 말한다. 자신의 남편과 아이가 극장에 침입한 괴한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미겔은 용납할 수 없었던 자신을 이다를 도움으로써 구한다. 그리고 이다는 그의 도움을 통해 비로소 '자연인'으로의 삶에 천착한다. 그들의 '상실'이 그들 서로를 구한 것이다. 

       


▲ 랜드 ⓒ 넷플릭스


 

'산 사람은 살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이 살아낼 힘이 생기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잃은 이다는 세상을, 사람을 보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왔던 곳, 아이가 좋아하던 곳으로 떠난다. 자꾸 삶을 독려하며 재촉하는 세상을 등지고. 

그녀를 살려낸 미겔이 그녀에게 묻는다.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고?', 그런 미겔의 질문에 이다는 말한다. 그저 이 곳의 삶에 하루하루 익숙해져 가는 것일뿐이라고. 아이를 낳고 우울증에 걸린 산모가, 그녀를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사는 게 재미있어? 난 사는 게 힘든데, 그러자 슬퍼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다정하게 말했단다. 얘야, 사는 건 재밌어서 사는 게 아니란다. 그냥 그저 사는 거란다 라고. 그저 살아가는 시간이 때로는 그 어떤 위로보다 '치유'가 된다. 

이다는 말한다. 도망치거나 피해서 이 곳에 온 게 아니라고. 스스로 선택해서 온 거라고. 산속 오두막을 선택한 그녀는 그곳에서 결국 살아낸다. 처음 도끼질조차 낯설었던 그녀가 이젠 총으로 거뜬히 사냥을 하고, 그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토막낸다. 더는 미겔이 도와주지 않아도 이제 그녀는 오두막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간다. 정신과 의사의 상담도, 오랜 친구의 다정한 우정도 그녀를 구할 수 없었지만, '자연'에서의 시간이 그녀를 회복시켰다. 그녀가 자신을 던져 살아낸 '시간'이 그녀에게 삶을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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