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체적 인간으로의 성장통 '
이제는 고전이 된 <101마리 달마시안>, 도디 스미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에니메이션에서 빌런 크루엘라 드빌은 가죽코트를 만들기 위해 '달마시안'에 집착한다. '옷'을 만들기 위해 '개'에 집착하는 '사이코패스', 이 세 가지 키워드는 5월 26일 개봉한 <크루엘라>를 통해 '진화'한다.
빌런이건, 그 반대의 영웅이건, 캐릭터의 성공적인 탄생을 좌우하는 건 '세계관'이다. <크루엘라>는 '처음부터 난 알았어, 내가 특별하단 걸',이란 '이 구역 미친 년은 나야'라는 식의 캐릭터로 연다. 그런 면에서 '할리 퀸'과 비슷하다. 하지만 <크루엘라>는 거기에 조금 더 촘촘한 개인적 서사를 바탕으로 하여 '빌런' 크루엘라를 성공적으로 알린다.
영웅이건 빌런이건 탄생의 신화에서 관건이 되는 건 바로 '알'에서 깨어남'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 '알'이란 그가 딛고 있던 세계, 그리고 그 세계의 권위인 '아버지'이다. 크라노스, 제우스의 부자에서부터 시작하여 테세우스, 오이디푸스에 이르는 서양 고전의 서사는 '살부'를 통한 알에서 깨어남,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크루엘라>는 이러한 서양 고전의 '살부' 서사를 아웃사이더 에스텔라가 빌런 크루엘라로 '성장'하는 '모티브'로 활용한다. 반은 흑발이고, 반은 백발인 원작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온 에스텔라의 헤어, 그 머리는 그녀를 배태한 두 모성의 세계를 상징하는 듯하다.
매번 학교에서 문제아가 돼서 학교로 불려가게 된 에스텔라의 어머니, 드디어 에스텔라를 '퇴학'시키려고 벼르는 교장의 말문을 막고, '자퇴'를 선언한다. 학교에서는 구제불능 문제아이지만, 에스텔라의 엄마는 그걸 에스텔라를 품어줄 수 없는 좁은 우물 때문이라 하며 에스텔라를 데리고 더 넓은 세상으로 가자고 한다.
에스텔라를 키우기 위해 남작 부인을 찾아간 에스텔라의 어머니, 하지만 그건 한 어머니 캐서린(에밀리 비샴 분)의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에스텔라는 어머니를 잃었고,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원죄'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좀도둑무리에서 성장한 에스텔라는 캐서린 어머니의 바램, 그리고 타고난 '특별함'으로 런던 최고의 리버티 백화점에 입성하게 되고, 결국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 '남작 부인'과 조우, 그녀의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다. 마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1970년대 버전과도 같다.
두 엠마, 엠마 톰슨과 엠마 스톤이 분한 남작 부인과 에스텔라의 만남, 그들은 서로 한 눈에 서로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 '특별함'은 영화 후반 에스텔라 탄생의 서사를 통해 밝혀진다.
낳은 정, 기른 정이듯이 에스텔라는 두 어머니의 세계를 가진다. 그녀가 일찌기 학교에서 '자퇴'인지, '퇴학'인지를 당했던 것처럼 본투비 '사이코패스'적 특별함을 선사한 건 바로 낳은 유전자이다. 하지만 그 사이코패스적 특별함을 어떻게든 세상의 품안에서 포용하려고 했던 캐서린이라는 어머니로 인해 에스텔라는 반백, 반흑의 머리처럼 이중성을 가진 인물로 성장한다.
영화 속 오랫동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원죄 의식에 시달리던 에스텔라가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알게 되고 '복수의 화신' 크루엘라로 자신을 던진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에스텔라는 그 누구보다도 '낳아준 어머니'와 가장 닮았다.
영화는 '난 모피때문에 살아, 내 신앙이라고'라며 모피 코트를 만들고 싶어 달마시안에 집착하는 마녀 크루엘라를 패션의 아이콘으로 재탄생시킨다. 그리고 '달마시안 코트'에 집착하는 코드를 남작 부인의 달마시안 애완견을 통해 '페이크 전술'의 절묘한 코드로 활용한다.
최근 문화적 트렌드인 '레트로' 열풍을 충실하게 반영한 영화는 1970년대 런던의 도발적 '펑크' 코드를 기존 패션계의 권력인 남작 부인에 대항하는 크루엘라의 도발적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한다. 2000 여 곡 중 선곡했다는 50여곡의 도어스, 퀸, 비지스, 블론디 등 1970년대를 풍미했던 음악들은 그 자체로 에스텔라가 크루엘라고 '변신'하는 서사의 색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레트로의 코드를 통한 '복수'의 컬러, 그 속에서 드러난 남작 부인과는 다른 크루엘라의 정체성을 통해 에스텔라라는 '반항적 소녀'는 새로운 문화적 아이콘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그런 문화적 성장 코드 속에 깃든 건 '모성'의 세계에서 탈피하여 '주체'로 성장하는 한 여성이다. 사이코패스적 유전자의 결정성도, 그리고 자신을 희생적으로 품어안았던 길러준 어머니에 대한 원죄의식,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에스텔라는 '크루엘라'라는 신선한 빌런 캐릭터로 탄생된다.
영화는 흥미롭게도 '살부' 신화를 뒤튼다. 종종 사회면에 실리는 '임신 거부증'을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심지어 딸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는 친모의 캐릭터로 '특징'지운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만을 위해 기꺼이 '딸'을 두 번이나 '살해'하고자 한다. 딸을 죽이려는 엄마, 그 엄마의 '악마성'에 대한 '안티테제'로 딸은 모성의 세계를 '파괴'할 명분을 얻는다.
<크루엘라>가 흥미로운 건 바로 이렇게 권위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모성의 세계에 대한 '이반'을 새로운 주체적 빌런 탄생의 서사로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특히 주체로서의 여성의 존재가 전세계적인 대세가 되고 있는 오늘날, 그간 남성의 세계에 대항하는 여성이라는 서사에 집중해왔던 기존의 스토리텔링과 달리, 여성이 자신을 낳아준 '모성'의 세계를 극복하고 주체적 존재로 성장한다는 서사는 신선하다.
원가족, 특히 자신의 어머니의 세계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독립하는 건 심리학적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스스로 자신을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통과의례'이다. 많은 여성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심지어 아이를 낳아 스스로 엄마가 될 때까지도 '원가족',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를 정립하지 못하여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여성이 주체로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남성'의 세계에서 자신을 분리하여 주장함은 물론, 주체적 어른으로서 '모성'의 세계에서 걸어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크루엘라>는 유전자적인 정체성을 안겨준 친모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시킨 양모를 지양하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측면에서 주체로서 여성의 존재에 대한 심리학적인 해석에 충실한 영화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주체적 존재로 거듭난 빌런 크루엘라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