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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Oct 15. 2023

사랑을 통해 정체성을 찾다

- <경계선 > 

지난 5월 25일 미국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촉발된 항의 시위가 미 전역을 들끓고 있다.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 그로 인한 흑인 남성의 사망 사건, 그리고 이어진 항의 시위, 2020년이라는 연도를 표기하지 않고 본다면 기시감이 느껴지는 사건이다.

 

 

매년 1천 명 정도가 경찰의 총에 사망하는 사건이 미국에서는 발생한다. 그 중 백인이 45%, 흑인이 23%, 히스패틱이 16%를 차지한다. 전체 미국 인구 중 백인이 60%, 흑인이 13%, 히스패닉이 18%라는 인구 비율을 놓고 봤을 때 흑인의 사망 비율을 현격하게 높은 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전체 인구 비율로 봤을 때 문맹율, 비만율, 실업율, 범죄율에서 흑인들이 타 인종에 비해 월등하게 높거나 비교적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흑인이 대통령이 되고 제도적으로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없어진 것같지만 2020년 다시 한번 흑인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미 전역의 시위에서 여전히 강고하게 자리잡은 '인종 차별'의 벽을 느끼게 된다. 노예선에 실려와 미합중국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는 '흑인', 하지만 여전히 그 존재론에 대한 고민과 투쟁은 끝이 없다. 

바로 이렇게 다시 한번 전세계에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가 촉발된 즈음 함께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바로 지난 71회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대상을 수상한 2018년작 <경계선(Border)>이다. 

 

 

인간 세상의 이방인 티나 
티나(에바 멜란데르 분)는 출입국 세관 직원이다. 두툼한 덩치, 아름답다 혹은 아름답지 않다라는 인간사의 잣대로 가늠하기 조차 어려운 투박한 외모, 하지만 그런 외양과 달리 탐지견 저리 가라할 만큼 섬세한, 그러나 인간적이지 않은 후각은 그녀에게 출입국 세관 직원으로서의 독보적인 능력을 부여한다. 

그녀와 달리 '인간적'으로 생긴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들어간 후 외로웠던 그녀는 '남자 친구'와 함께 살기는 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함께' 살뿐 그 이상의 성적, 정서적 유대가 없다. 마치 보호자처럼 세관 직원으로 돈을 버는 그녀에게 남자 친구는 기생하고 있는 중이다. 마치 마음도 그녀의 외양처럼 그렇게 두터워진 것처럼 티나는 제 멋대로인 남자 친구를 놔둔다. 

그러던 어느 날 세관 일을 하던 중 한 남자 보레(에로 밀로노프 분)를 만나게 된다. 그녀처럼 두툼한 덩치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남자, 그는 매우 수상쩍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끌린 티나는 그를 자신의 별채에 기거하도록 허락한다. 

티나는 매사에 심드렁했다. 일은 성실하게 했지만 그녀의 타고난 후각은 동료들에게 이상하게 여겨졌고, 그외에 식욕도, 성욕도 도무지 그녀를 '매료'시키는 것이 없었다. 그녀의 유일한 낙이라면 늦은 밤 홀로 숲 속을 산책하고 숲속 호수에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것 정도.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보레는 그녀가 느끼는 '무의미' 속에 정체성의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폭로한다. 사람들이 먹는 스파게티에서 별 맛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보레와 티나와 같은 '종족'에게는 숲속 나무에 기어다니는 벌레가 '주식'이었던 까닭이라는 것이다. 보레는 자신과 티나가 '인간'들이 자신들의 세상에 끼워맞춘 '트롤'임을 알려준다. 인간이 아니라 인간과 다른 '종족' 트롤.

<경계선>을 통해 등장한 종족 트롤은 우리에게 어릴 적 읽었던 북유럽의 동화 속에 등장하곤 하던 '괴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혹은 조금 더 커서는 <반지의 제왕>에서 만나봤을까. 그저 '이방의 존재'처럼 여겨지던 '트롤'을 <렛미인>을 통해 또 다른 '이방'의 존재를 통해 우리 안의 '타자'에 대해 일깨워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의 단편 소설을 통해 소환한다. 

<렛미인>에서 뱀파이어 소녀를 우리가 사는 세계 속에 '공존'할 밖에 없는 이방의 존재로 거듭나게 했던 작가는 이제 '트롤'이라는 '신화'속 종족을 불러들인다. 끊임없이 소외감에 시달렸던 티나, 그녀는 보레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알게 된 후 아버지를 다그친다.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 인간들이 자신과 같은 트롤 종족을 집단적으로 구금하고 '학살'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던 아버지의 눈에 띄어 꼬리가 잘린 채 '인간'인 척 길들여 오늘에 이르게 된 자신의 현실도. 

 

  

사랑을 통한 경계에 대한 질문 
<렛미인>이 뱀파이어 소녀를 사랑하게 되어 어떻게든 그녀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쓰는 소년의 '사랑' 이야기로 인간 세상의 편협한 범주를 서늘하게 드러냈듯이, <경계선> 역시 인간 세상에 끼워맞춰진 트롤의 소외된 정체성을 티나와 보레의 사랑을 통해 그려낸다.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우리가 통념적으로 알고있는 남자와 여자로 규정되어진 인간 세상의 잣대에 대해 묻는다. 여성인 줄 알고 살아왔던 티나, 하지만, 트롤의 성은 인간 세상의 그것과 다르다. 그들의 성기와 성애가 달랐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배가 인간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들은 인간과 달랐지만 트롤만의 성적 소통을 통해 '사랑'을 완성한다. 창백한 뱀파이어 소녀와 인간 소년의 사랑이 애닮았듯이 티나와 보레가 사랑을 통해 '교합'하는 순간은 <경계선>이 역시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임을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보레와 함께 하는 그 숲속에서 티나는 비로소 생의 환희를 처음으로 맛본다. 

하지만 절정은 황홀했지만 티나와 보레의 길은 달랐다. 그녀의 타고난 후각을 통해 인간 세상의 아동 학대와 납치 사건 조사에 참여하게 된 티나, 그 과정에서 이제 사랑하게 된 보레가 그 사건에 결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진실을 다그치는 티나에게  자신들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인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이 '생존'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기꺼이 또 다른 인간인 '아이'들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는 '과격한 입장'을 주장하는 보레,

자신들을 '식민지민'처럼 길들인 인간에게 그 인간의 아이를 납치 유괴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복수'를 하며 자신들의 살 길을 도모하겠다는 보레, 하지만 그럼에도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소중함을 간과할 수 없다는 티나, 두 사람의 입장은 현재 전 세계 자신들을 복속하는 세력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결국 그 현실에 대한 입장이 두 사람을 갈라서도록 만든다. 

하지만 '러브스토리'답게 영화는 보레와 티나의 사랑에 대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어디선가 그들이 편안하게 '인간인 척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그곳에서 더 이상 꼬리가 잘리지 않을 그들의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전설 속, 신화 속 트롤의 소환을 통해, 우리 안에서 꼬리가 잘린 채 '인간'의 표준에 재단되어지고 있는 많은 이방인들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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