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기로운 의사 생활 시즌 2>
엄마가 거실에서 미끄러지셨다. 그런데 87세란 연세는 엄마의 고관절을 희생시켰다. 처음 당연히 수술을 해야 한다던 의사의 말은 시간이 갈수록 모호해졌다. 막상 수술을 하려고 검사를 해보니 엄마의 몸 자체가 지뢰밭이었다. 뇌 혈관에는 꽈리가 또아리를 틀고, 폐에는 석회가 쌓여있었다. 호흡기는 중증이었고, 결국 결정권의 바톤이 보호자에게 넘겨졌다.
이른 아침 택시를 타고 엄마가 계시는 응급실로 달리면서 지난 밤 보았던 <슬기로운 의사 생활 2(이하 슬의)> 에피소드들이 떠올랐다. 드라마 속 이야기가 고스란히 내 상황으로 돌아왔다.
지난 주부터 이상한 조짐을 보이던 로사(김해숙 분)의 증상이 심상치 않다. 산책에서 종종 걸음을 보이며 '치매'의 전조 증상을 보이던 로사는 아끼던 조카의 결혼식을 잊고, 드디어 자신의 집 번호키를 잊어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로사 자신은 물론, 보는 시청자들 모두 당연히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는 착잡한 심정에 빠지게 했다. 정원을 제외한 모든 자식들을 '주님'의 자식으로 양보한 의연한 엄마, 그런데 '암'보다도 더 무섭다는 '치매'가 소꼽친구 종수와 함께 알콩달콩 노년의 삶을 즐기는 로사에게도 피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야속하기 까지 하다. 예전에 시어머님이 이제 살만하니 병마가 찾아왔다는 말씀처럼 인생이 참 녹록치 않구나라는 비감함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슬의>는 '반전'을 선사한다. 당연히 '치매'일 줄 알았던 엄마 로사는 수두증이었다. 뇌수술을 해야하는 상황인데도 로사는 뛸 듯이 기뻐한다. 아픈 거 까짓거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단다. 그저 제 정신으로 나머지 노년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나이가 드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게 가장 큰 과제인 것이다.
로사를 뛸 듯이 기뻐하게 만들었던 '수두증', 그 흔하지 않은 병명의 환자를 진짜 병원에서 마주쳤다. 한 눈에 보기에도 걸음걸이가 편치 않으신 어머님과 보호자인 아버님과 아들 일행이었다. 아마도 수두증일지도 모르니 검사를 해보고 수술을 할 수도 있다는 의사 소견을 듣고 나온 상황인 듯했다. 어머님은 당장 수술을 해야한다고 하셨고, 아들은 그 연세에 수술이라는 상황이 난감한 듯했다. 아직 검사도 하기 전인데 그렇게 한 가족은 아직 검사조차도 하지 않은 '수두증' 앞에서 세대 간 의견이 갈렸다.
그렇게 병원에서 마주한 상황을 드라마는 그대로 재연했다. 77세의 남자 환자는 심장에 구멍이 나서 호흡 곤란을 느끼고 있었다.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 딸들은 그 연세에 무슨 수술이냐는 반응이었다. 또 다른 여자 환자는 이미 유방암으로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거친 상황에 뇌로 암이 전이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채송화 교수는 수술을 권하고 당사자는 내심 수술을 하고 싶어하지만 정작 보호자인 아들이 그 연세에 또 무슨 수술이냐며 단호하게 반대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잠깐이지만 택시를 타고 가면서 그 연세의 엄마가 고관절 수술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병원에서 만난 이모들의 생각은 달랐다. 87세라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방법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셨다. 그리고 단 하루를 살더라도 아프지 않는 게 낫지 않느냐고 하셨다. 바로 <슬의>에 나온 77세 환자의 생각과 같은 의견이셨다.
늘 나도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결정의 상황에 마주하면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하지만 막상 엄마의 수술이라는 상황을 겪으며 우리가 뭉뚱그려 생각하는 '노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그리 생각만큼 간단치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어머니의 수술을 반대하던 아들이 가장 친한 친구를 불시에 보내듯 죽음 앞에 '순서'란 나이순이 아닌 걸 알면서도 삶의 결정권 앞에 '나이'를 앞세운다.
물론 <슬의>는 병마와 싸우는 노년의 문제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딜레마, 경제적인 문제를 의지의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환타지적 장르이다. 당장 병원 문턱에 들어서는 순간 그 누구라도 깨닫게 된다. <슬의>는 그곳에 없음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의>를 통해 우리는 희노애락의 예상문제집을 받아든다. 엄마의 수술 앞에서 어제 본 드라마를 복기하게 된 나처럼 말이다.
무사히 수술을 마친 77세의 환자는 머리가 허연 또 다른 환자에게 '젊은이 기운내'라며 말을 건넨다. 머리가 허얘도 77세 환자가 보기엔 아직 젊은이다. 90대의 친구 어머님은 낼 모레 환갑인 딸에게 내가 너 맘때는 펄펄 뛰어다녔다고 하신단다. 50대 초반 후배가 언니 나이가 되면 염색도 안하겠다는 내 나인데, 엄마 세대 앞에서는 '한참 때'인 것이다.
노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그런 것이다. 과연 몇 살부터 노인이라고 해야할까? 몇 살부터 삶의 가능성을 포기해야 할까?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동생의 말에 따르면 암 수술을 가장 많이 받는 연령이 7,80 대라고 한다. 아마도 8회 <슬의>를 보는 소회는 연령 별로 다를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노년이라는 시간을 바라보는 세대간 시각의 차이일 것이다. 60이 안된 나이에 바라보는 80대는 다 산 시간이지만, 동년배가 바라보는 80대는 그래도 아직도 아프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연배인 것이다.
노년의 시간에 대해 그 누가 섣부르게 예단할 수 있겠는가. 젊거나 늙거나 삶의 무게가 다르지 않다고 <슬의>는 말하고 있다. 비관적이었던 엄마의 고관절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배가 고프다며 병실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치셨다기에 민망했지만 늘 이제는 죽고싶다던 입버릇같은 말씀과 달리 여전하신 삶의 열의를 느꼈다. 삶의 종착역은 그리 쉽게 도달하는 게 아니다. 수두증에서 회복한 로사는 나이들었다고 머뭇거리던 젊은 날의 열정에 도전한다. 갈 길이 먼 여정에 좀 더 겸허하고 성실해져야 함을 실감나게 했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