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는 실패한 것 같아.'
자신을 마중하러 나온 아버지에게 <인간 실격>의 여주인공 부정(전도연 분)이 말한다. 그러자, 아버지가 걱정한다. '회사에서 뭔 일 있냐?'
어쩌나, 그녀는 아버지가 말하는 그 '회사'라는 출판사에서도 짤렸다. 현재 한 젊은 여배우의 집 '가사 도우미' 중이다. 부정은 답한다. '그런 일이 아냐, 그냥 내가 못나서.', '너는 내 자랑인데.'라고 아버지는 말하지만, 부정은 한결같다. '나 그냥 너무 나빠진 것 같애.', 아버지는 그런 부정이 '유산 때문인가', 또 걱정을 얹는다. 부정은 고개를 젓는다. '아닌데 뭔가 어딘가부터 꼬여버린 인생 때문에.'
그렇다. <인간 실격>의 여주인공 부정의 인생은 그녀의 말처럼 꼬여 버렸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대필 작가가 되었고, 그나마 그 일조차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그로 인해 출판사에서도 짤렸고, 아이도 잃었다. 가사 도우미 신세다. 연하의 남편과는 '교감'이 없고, 시도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시어머니와는 '앙숙'이다.
모처럼 드라마로 돌아온 허진호 감독의 작품답게 감각적인 영상 속에 하지만 부정은 도무지 이 도시의 어느 곳에서도 자신을 내보이지 못한다. 겨우 그녀가 잡은 건 그녀와 그리 다르지 않은 강재의 팔이다.
그런 소설의 모티브를 그대로 따온 듯 드라마 속 여주인공 부정은 세상과 불협화음을 낸다. 시어머니와 한바탕하게된 계기가 된 건 경찰서에서 온 '출두요구서'였다. 이유는 악플, 여전히 아내가 '널럴한 출판사'에 다니는 줄 아는 남편은 그런 아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부정의 아버지처럼 남편도 아내가 가사 도우미를 하는 줄 모른다. 그렇듯 부정은 드라마 초반 등장하는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은 채 자신의 세계 속에 웅크려 '실패'를 선언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아버지를 옆에 두고 눈물을 흘리는 부정을 보는데 또 한 명의 '부정'이 떠오른다. 그녀처럼 모든 것을 잃고 가사 도우미를 하던 한 여성이. 바로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주인공 찬실이(강말금 분)다.
아이를 잃지는 않았지만, 애초에 남편도 없으니, 뭐 더 낫달 것도 없다. 집도 없고,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고 도우미 신세라는 점에서 부정과 겨룰 만하다. 그래도 부정은 팔이라도 잡아 끌 강재(류준열 분)이라도 등장하지만, 찬실이 앞에는 한겨울 흰 런닝 팬티 바람의 자칭 '장국영'이라는 귀신이 어른거린다.
찬실이와 부정, 누가 더 불행할까? 키재기라도 하자는 게 아니다. 상황으로 보자면 두 여성의 처지가 그리다르지 않은데, 두 여성의 태도가 천지차이라 비교가 된다.
돈도 안되지 않냐는 부정에게, 그래도 폐지라도 주울 수 있는 게 어디냐는 아버지 앞에서 부정은 '실패'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낸다. 글을 쓰고 싶었는데. 대필 작가가 되고, 대필 작가조차도 맘대로 안되고, 젊은 여배우네 도우미를 하는 게 '실패'일까?
부정의 '실패', 그 원인은 다 밖으로 향해 있다. 글을 못쓰면 대필 작가를 하고, 대필 작가를 실패하면, 도우미를 해야 하는 걸까? 물론, 작중 그녀의 '도우미' 일이 호구지책인지, 아니면 여배우를 향한 모종의 '복수극'인지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드라마는 부정은 '도우미'나 할 여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 애쓴다. '도우미'나 할 사람은 따로 있는가?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찬실이는 스스로 자처해서 후배 여배우네 도우미가 된다. 프로듀서였던 사람이 자신의 작품에 출연했던 여배우네 집의 도우미라니. 하지만 찬실이는 참 열심히 일을 한다. 밥도 해놓고, 집도 빤닥빤닥하게 깨끗이 치우고. 그녀가 성실하게 돈도 안되는 영화를 해왔듯이, 그렇게 도우미 일도 한다.
영화 속 찬실이 앞에 등장한 자칭 '장국영', 그렇게 '귀신'이 등장할 만큼 찬실이는 피폐하다. 그런데 그 피폐함 속에서도 찬실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낸다. 도우미 일도 하고, 주인집 할머니 글도 가르쳐드리고, 함께 밥도 먹는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찬실이보고, 영화 속 ost에서 이희문은 타령조로 '복도 많지, 복도 많지'를 되풀이 한다. 무슨 복? 독립 영화로 소규로모 개봉했던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젊은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스터디셀러가 되었었다. 왜 이 시대 젊은이들은 모든 걸 잃은 찬실이에게 열광했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부정이 처럼 '실패'라고 해도 될 상황 속에서도 '하늘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문구처럼 찬실이는 참 의연하게 자기 삶을 살아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찬실이는 어설픈 연애조차도 실패해도 누구를 탓하지 않는다. 자신이 산꼭대기 단칸 방으로 쫓겨나도, 후배네 집 술병이나 치우고 있어도 단 한번도 그녀의 입에서 자기 삶의 '실패'를 누구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런데 부정을 보다보면 어쩐지, 그녀가 불쌍해 지는 대신, 그럼에도 그녀가 아직 가지고 있는 것을 헤아리게 된다. 심지어 그녀가 스스로 냉소해 마지 않는 도우미 월급이 많지 않을까 이런 생각까지 해보게 된다. 왜 그럴까? 그녀가 찬실이랑 다르게 남편도 있고, 집도 있어서?
빨간 목도리를 꽁꽁 동여맨 부정은 자기는 너희와 다르다는 듯, 남편에게도, 시어머니에게도 팔짱을 건다. 그런 그녀가 폐지를 줍는 아버지에게 지나가듯 '도우미'나 할까 하고 말을 건넨다. 도우미나 할 사람은 따로 있을까? 글줄이나 써야 성공인 걸까? 그런 부정과 '허세'어린 삶을 살아가는 강재는 묘하게 닮았다.
그녀는 여전히 폐지라도 주울 수 있는 게 어디냐는 아버지 말에 담긴 삶의 엄정함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자기 연민의 늪에 빠진 여주인공을 드라마 <인간 실격>은 구원할 수 있을까. 날마다 혹독하게 삶과 싸워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부정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