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코렐렛서의 구절이다. 구약 성경 속 내용이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익숙한 문장이다. 아마도 그건 종교적인 내용을 떠나 그 '문구'가 전해주는 삶의 보편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그간 차곡차곡 우리 삶의 편린들을 쌓아왔던 <슬기로운 의사 생활 시즌2(이하 슬의 2)> 11회는 마지막 회를 한 회차 앞둔 시점에 수확을 하듯 저 문구를 전한다.
두 아이의 학부모인 남성은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수술을 미루겠다고 버틴다. 그에게 지금은 아버지로서의 몫을 다할 때라는 생각이 앞선 것이다. 물론 그 아버지의 스토리는 해피엔딩이다. 그는 실명도 하지 않은 채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머리의 시한 폭탄을 제거하는 게 그의 때였던 것이다.
또 다른 때도 있다. 산부인과 레지던트까지 되었지만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적응을 힘들어 하던 인턴의 경우이다. 의사라는 직업에 회의적이었던 인턴, 하지만 어렵게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말문이 터진다. 그저 말문이 터진 게 아니라, 자신이 지켜본 '생명 탄생의 신비'에 감동을 숨기지 않는다. 성실하지만 답답했던 그녀을 어떻게든 '적응'시켜보려 추민하 선생이 애써보지만 아직 그녀의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전히 감동적인 출연진들의 에피소드, 하지만 11회를 지켜본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컥할 정도로 한 건 시즌 내내 지켜본 이들의 마음을 조리게 만들었던 석형이(김대명 분)와 추민하(안은진 분), 그리고 송화(전미도 분)와 익준(조정석 분)의 때가 무르익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퍽치기로 인해 뇌출혈을 일으킨 채 응급실에 실려온 익준, 늘 자신의 곁에서 '키다리 아저씨'같던 익준이 위급한 상황에 빠지자 송화는 비로소 자신의 삶에서 익준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며칠 밤을 세워서 익준을 간호하던 송화, 차츰 회복되어가는 익준, 아직 요양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익준은 어려운 수술을 앞둔 송화를 걱정해준다. 그리고 그런 익준의 모습에 송화는 비로소 용기를 낸다.
그들의 과거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은 안다. 그들의 인연을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했음을. 대학 시절 이미 서로에게 마음이 있던 두 사람이지만, 그들의 인연은 엇갈렸다. 익준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송화가 지방과 서울의 율제를 오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런가 하면 이제 석형과 민하는 본격적으로 데이트를 시작한다. 스텝들과 편하게 식사조차 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석형이 민하에게 데이트를 신청했고 함께 식사를 했고 영화를 본다. 영화관에서 정원의 어머니와 이사장님을 만나지만 석형은 피하지 않는다. 민하를 데려다 주는 길에 석형은 민하의 질문에 기꺼이 답한다. '좋아, 네가 좋아', 라고. 두 사람의 따뜻한 포옹은 비오는 차안 송화와 익준의 키스만큼이나 뭉클하다.
뇌동맥류 수술을 앞둔 아버지, 그는 가장으로서 자신의 몫을 다할 수 없게 만들지도 모를 수술이 두렵다. 그런 그의 마음을 돌이킨 건 바로 용석민(문태유 분)의 설득이다. 아버지 뇌사진까지 뽑아와서 수술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 용석민은, 설명을 다 마치고 덧붙인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술에 대해 결정을 못하신다면 자신이 다시 와서 또 말씀드리겠다고. 설명을 했으니 끝이 아니라, 거듭 또 설득하겠다며 가장의 마음을 돌리려 애를 쓴 것이다.
마찬가지다. 시즌 2의 종결을 앞두고서야 이루어진 두 커플의 아름다운 동행, 하지만 시청자들이 시즌 2 내내 지켜 본 건 거기에 이르기까지 애를 써온 익준과 민하의 노력이다.
시즌 1 마지막 회, 익준은 지방으로 내려간 송화를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내비친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피폐했던 송화는 그런 익준의 마음이 부담스러웠다. 고백을 꿀떡 삼킨 익준, 하지만 익준은 한결 같았다. 시즌 2 내내 송화의 곁에서 그녀의 베프가 되었다. 일과에 지쳐 지방에 내려가려는 새벽, 송화의 차 본넷 위에 남겨진 두 잔의 커피로 상징되듯, 늘 송화의 상황에 맞춰 익준은 그녀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었다. 신경외과 의사이면서 어머니의 알츠하이머에 무심했던 송화가 힘들어 할 때, 그녀의 문 앞에서 해결사가 되고, 그녀를 웃게 만들고 싶은 일념만으로 고기 불판을 선물하기도 한다.
어느덧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만으로도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교감을 느끼게 되기까지 익준의 부단한 노력이 경주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편에서 익준의 지성이면 감천이 있었다면, 또 다른 편에서는 석형을 향한 민하의 '일편단심'이 시청자들을 웃음짓게 만들었다.
민하의 '일편단심'에 석형이 묻는다. 너는 내가 혹시 나쁜 사람이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앞뒤, 좌우도 가리지 않고 자신을 좋아하냐고. 과연, 그런 질문에 우리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혹시 내 선택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하지만 민하는 답한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니까 괜찮다고.
늘 <슬의>를 보고 나면 어쩐지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겠다는 마음이 드는 건 바로 이런 '씨뿌리는 마음들' 덕분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루어지고, 아픈 사람이 회복되고 그런 해피엔딩 덕분이 아니라, 그걸 향해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하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말이다.
다시 앞서의 책에서 수녀님은 말한다. 인생의 변화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상황이 끊임없이 축적되어 도달했을 때 얻어지는 것이라고. 진정한 변화는 느리고 고통스러워며 대가와 고통스러운 헌신이 요구된다고. 11회의 '해피엔딩'이 있기 위해, 민하 홀로 곰인형을 상대로 머리를 쥐어 뜯던 시간이, 그리고 익준의 속깊은 상념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