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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Oct 19. 2021

<조용한 희망> 머나먼 '가정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300 하고도 8, 무슨 숫자일까? 워너브라더즈사가 제작한 넷플릭스 미니 시리즈 <조용한 희망>의 원제는 <MAID>이다. 스테퍼니 랜드의 실제 회고록이 원작인 드라마, 싱글맘인 저자는 '독립'하기 위해 6년간 가사도우미 일을 했다. 308은 저자가 닦은 변기의 갯수이다. 



10부작 드라마 <조용한 희망>은 3살 된 딸을 둔 겨우 25살 된 엄마 알렉스의 암울한 상황으로 부터 시작된다. 지난 밤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은 알렉스를 향해 물건을 집어 던졌다. 남편이 집어던진 물건은 그들이 사는 허름한 컨테이너의 벽을 뚫었다. 다음날 알렉스는 짐을 싸서 딸 매디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싱글맘'의 길에 들어선 알렉스, 하지만 시리즈의 제목인 '희망'은 쉬이 오지 않는다. 



<조용한 희망>의 여주인공 알렉스 역할은 마가렛 퀼리가 맡았다. 그런데 극중 알렉스의 엄마로 출연하는 여배우가 어쩐지 낯이 익다. <그린 카드> 등 90년대의 대표적인 로맨틱 멜로 영화의 여주인공이었던 앤디 맥도웰이다. 페미니스트인 영화 배우 <할리퀸>의 마고 로비가 제작자로 참여한 드라마에 실제 모녀인 두 사람이 극중 모녀 사이로 출연했다. 알렉스 역할에 캐스팅된 마가렛이 자신의 엄마를 제작진에 요청했다고 한다. 시리즈 내내 알렉스의 지난한 도전과 자유분방하다 못해 대책없는 엄마의 삶은 대비된다. <조용한 희망>은 싱글맘의 '독립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쉽게 끊어낼 수 없는 지난한 가족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싱글맘 알렉스 도우미가 되다. 


매디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픈 알렉스, 하지만 정작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원해서 찾아간 복지사에게 알렉스는 자신이 '가정 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쉬이 시인하지 못한다. 맞지는 않았다는 거다. 맞지 않으면 '폭력'이 아닐까? 드라마는 묻는다. 그렇다면 가정 폭력의 경계는 어디인가? 



복지사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정신적 폭력의 희생자라는 걸 깨닫게 된 알렉스는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를 찾는다. 하지만 그곳은 임시 거처일 뿐, '자립'을 위한 정부 보조를 얻기 위해서는 직업이 있어야 했다. 당장 일할 곳이 필요했던 알렉스는 복지사가 권해준 '청소용역 업체'를 찾고 그렇게 25살의 싱글맘은  드라마의 제목인 'MAID'를 시작하게 된다. 



장기 현상범의 어머니가 홀로 돌아가시고 그 집을 청소하게 된 알렉스, 그곳에서 아동 학대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를 가둬두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방에 동료의 실수로 잠시 갇히게 된 알렉스는 숨이 막히는 '공황'의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그 '증상'을 통해, '방어기제'로 잠궈둔 과거의 '트라우마'를 봉인해제 시킨다.



매디를 데리고 집을 나왔지만 정작 알렉스의 친정 엄마는 전혀 알렉스에게 보탬이 안된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가 6살 때 그녀를 데리고 집을 나와 대책없이 알래스카로 향한 엄마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히피'처럼 자유분방하다 못해, 무책임한 생활로 일관, 할머니가 물려주신 집까지 날릴 처지이다.  엄마와 달리 안정적으로 새 가정을 꾸리고 있는 아버지, 그런데 알렉스는 어쩐지 그런 아버지가 만날 때마다 불편하다. 



봉인해제된 기억을 통해 알렉스는 알게된다. 무책임하다던 엄마가 사실은 술에 취해 알렉스마저 때리려던 아버지를 피해 알렉스를 데리고 집을 떠났다는 사실을. 그렇게 드라마는 가난의 대물림처럼, 폭력의 대물림을 말한다. 알렉스의 남편 숀도 다르지 않다. 어린 시절 집을 떠난 아버지, 어머니는 일찌기 약물 중독이었고, 그런 어머니를 보살피며 9살 때부터 술을 마시고, 어머니와 함께 약물을 했다. 가난은 거기에 옵션처럼 약물과 술이 함께 해왔던 것이다. 가난하고 폭력의 트라우마를 가졌던 숀과 알렉스가 다시 만나, 그들은 부모의 전사를 되풀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렉스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가난을, 폭력 속에서 굴종하며 사는 자신의 삶을 더는 사랑하는 딸 매디에게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매디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되풀이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25살, 한때는 글을 쓰는 꿈을 꾸고 그래서 대학교 문예 창작과에 지원했던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알렉스에게는 매디와 머물 거처도, 매디와 함께 먹고 살아갈 돈도 없다. 정부 지원은 끝도 없이 복잡하고, 쥐꼬리만했다. 심지어 숀의 폭력을 피해나왔지만 폭력적 증거가 미흡하다며 법원은 숀의 손을 들어주었다. 숀은 여전히 알렉스와 매디를 사랑한다며 집으로 돌아오라 알렉스 주변을 맴돈다. 



알렉스는 주저앉는 대신에, 다이슨 청소기를 들고 변기 청소에서부터 시작되는 메이드 일을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쉽지 않다. 으리으리한 저택의 주인은 단 하나의 트집으로 일당을 떼어먹기도 하고, 도저히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고 볼 수 없는 오물투성이의 공간을 감당하기 해야 한다. 



드라마는 세상에 던져진 가정폭력 피해자 싱글맘의 여정을 알렉스라는 인물의 고군분투를 통해 차근하게 밟아간다. 스스로 자신이 가정 폭력 피해자라는 것에 대한 '인지'조차 하지 않은 여성이, 자존감이 무너져 주저앉아 버리는 과정, 하지만 거기서 다시 일어나 아이와 함께 살아보려 허드렛일인 메이드를 젊은 여성이 하며 버티는 과정이 보여진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어쩌다 그녀를 찾아온 운은 정부가 제공한 임대 주택 벽을 점령한 곰팡이처럼 스멀스멀 그녀의 삶을 좀먹는다. 아이와 타고 가던 차가 고속도로에서 사고로 처참히 부서진다. 일을 해도 좀처럼 독립 자금은 마련되지 않는다. 모처럼 얻은 집에서 곰팡이 때문에 다시 길거리로 나앉게 된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라며 감언이설로 그녀를 흔든다. 사람들의 호의는 그녀 주변의 민폐로 날아간다. 



처음 쉼터에서 만나 널브러진 알렉스에게 씩씩하게 세상에서 자기 몫을 얻기 위해 싸울 것을 독려했던 싱글맘, 하지만 남편에게 목이 졸려 시커멓게 멍이 든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게 3번째라고 쉼터 지킴이는 말한다. 역시나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자신은 10번 만에 그 질곡의 끈을 끊어냈다고.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알렉스, 하지만 결국 알렉스도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여전히 변한 바 없는 숀의 태도를 보며 벽에 머리를 찧는다.



살기 위해 어떻게든 애를 써보지만, 가난과 폭력의 대물림이 얼마나 끈질기게 한 사람의 인생을 휘감고 있는가를 드라마는 보여준다. 하지만 번안된 제목인 '조용한 희망'처럼 알렉스의 도전은 '희망'의 여지를 남긴다. 매디와의 호구지책을 위해 가리지 않았던 그녀의 '메이드' 일이, 그녀가 진심으로 대했던 사람들이, 그리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글쓰기가 그녀에게 '희망'의 길을 열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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