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둔다는 것은 무엇인가

— 관객모독,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by 송근존

우리는 흔히 한 걸음 물러선 자리로 향한다.

판단을 서두르지 않고,

어느 자리에도 쉽게 서지 않으려는 태도.

그 자리는 신중하고

성숙해 보인다.


확신의 위험을 지나온 사람에게

이 거리는 필요한 숨 고르기이기도 하다.

조금 더 보고, 듣고,

기다리겠다는 태도.


거리를 둔다는 것이

정말 거리가 있는 것일까.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

보는 관객은 익숙한 자리에 머물지 못한다.

연극은 이야기 대신 형식을 드러내고,

설명 대신 침묵을 배치한다.

판단은 유보된 듯 보이지만,

유보 자체가 관객을 특정한 자리에 세운다.

보지 않으려 했던 자신의 태도를

스스로 바라보게 만든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는 기록과 보도가 반복된다.

누군가는 단지 사실을 전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해석을 덧붙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의 배열과 강조는

한 사람의 삶을 조용히 좁혀 간다.

거리를 둔다고 해서

영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말을 줄이고, 판단을 미루는 동안에도

어떤 방향은 이미 만들어진다.

그 방향이 누구에게 기울어 있는지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확신은 때로 목소리를

높이며 나타난다.

하지만 때로는

침묵 속에

조용히 머문다.

선택을 미룬다고

빈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물러 서 있는 그 자리에

무엇이 유지되고,

조금씩 밀려나는가.


판단을 늦추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누군가의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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