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감이 교차한다. 오늘부터 딱 일주일 훈련 받고 다음주 3일만 있으면 자대배치를 받은 곳으로 이등병으로 가게 된다.
오늘은 중대장님께서 보시는 정신전력 교육 발표회 날이다. 아무래도 표창을 노리는 우리 (훈련병)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날이다. 1생활관에서는 내가 발표를 맡게 되었고 30분 짧은 시간 동안 10번 훈련병의 예쁜 글씨와 함께 12번 훈련병과 발표 준비를 했다. 늘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두 사람에게 여기서라도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한다.
1생활관 정신전력 교육 발표문,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적는다)
우리가 이렇게 군복을 입고 있는 이유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대한민국은 긴 역사 속에서 선조들의 희생으로 굳건히 지겨낸 오랜 전통을 지닌 나라입니다. 또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큽니다.
군대와 사회는 엄연히 다릅니다. 군인의 역할은 국민과 재산을 보호하며 나라 외부의 세력을 저지하고 차단하는 역할입니다. 그렇기에 사회보다 엄격한 상명하복의 규칙이 있습니다. 법규를 준수한 상관의 명령은 (악센트를 주었다.)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 그렇기에 거절과 의문없이 신속하게 임해야 한다는 것이 큰 차이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좋은 환경에서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기본에 충실한 어떤 상황에서도 이기는 군인, 군대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휴전 상태입니다. 휴전이란 종전과 달리 여전히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동아시아 문화의 매개자 역할을 하면서도 주변국에 빈번한 침략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주적은 북한입니다. 1950년 이후로 북한과의 끊임없는 충돌,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아픔까지 우리는 적으로부터 지켜야할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저희 1생활관은 이기기 위해서는 소중한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나라를 아끼는 마음보다 더 아끼는 소중한 것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언가를 지켜야한다는 마음을 군인의 정신에 투영시킨다면 우리는 더욱 강인한 군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생활관은 우리가 군복을 입고 있는 이유에 대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국방의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대한민국을 보다 더 사랑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훌륭한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측면에서 봤을 때도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권리들이 손쉽게 얻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더욱 소중히 여기며 나라는 사람을 보다 더 이전보다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적과 싸워 이겨야 하는 이유는 가족, 사랑하는 연인, 친구들, 돈으로 살 수 없는 유구한 역사를 지키기 위함이며 우리의 뒤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한 정부, 나와 함게 전선에 뛰어들 수 있는 전우, 마지막으로 우리를 믿고 응원하며 모든 걸 이루게 해줄 수 있는 국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1생활관은 1년 6개월이란 군복무기간을 마치면 작게는 개인의 발전 크게는 국가의 발전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상으로 1생활관 정신전력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8번, 10번, 12번 외 12명.
물론 놀랍게도 발표가 끝나고 주변을 살피니 중대장님께서 사라지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점수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을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지만 뒤에 갈수록 다른 생활관들의 발표는 형편 없었다.
예) 화가 나면 화를 내십쇼...?/ 심장을 받쳐라 등
들으면서 내가 아니더라도 1소대 (1, 2, 3 생활관)에서 수상자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3명 다 아니었다. 만약 중대장님께서 들으셨더라면이라 생각도 들지만 그저 정해진 대로 돌아간다고 생각이 들 뿐이다.
화요일, 포복 연습을 하는 동기들을 구경했다. 무릎 때문에 열외했고 타소대 동기들이 쉬러 올 때마다 어제 발표 얘기를 하면 나를 많이 칭찬해주었다. 물론 나라고 밝히지는 않고 조용히 웃었다. 날이 더워 훈련은 더 이상 없었고 아무 일 없이 조용히 흘러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제부터 각개 전투 연습을 해야 한다. 우리는 날씨와 부상 방지 차원에 4개 파트만을 평가 받기로 했다. 무릎 부상인 나는 열외하려 했지만 재밌어 보여 참여하기로 했다. 시나리오를 쓰라는 말에 시나리오를 부지런하게 같은 침상을 쓰는 동기들과 함께 썼다. 우리가 정한 대로 시험을 본다해서 돌무덤 4개, 창문틀 4개, 철조망 4개에 대한 시나리오를 모두 썼다. 적당히 입을 맞추고 합을 맞추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부분대장조!"
"네, 부분대장조!"
"엄호사격 실시!"
"엄호사격 실시!"
부분대장을 맡은 1번 훈련병의 말을 시작으로 목요일 평가가 시작됐다. 분대장인 나는 엄호사격을 시작하자마자 전진을 외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잘해낼 거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점은 언제나 예외와 변수란 존재한다는 것이다. 잘하다가도 분대원들을 이끌고 온 철조망 앞에서 모든 게 무너졌다.
"너 아무것도 안 배웠어? 안 할 거야?"
시나리오대로 4개를 쓴다던 철조망은 단 2개, 모든 분대원들이 당황해하며 철조망을 바라보고 있었고 조교 한 분께서는 분대장인 나를 보면 소리치셨다. 하지만 이건 내가 혼나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변수를 피하기 위해 어제 묻기까지 했다. 시설이 안 좋아 연습 때 2개를 썼는데 내일은 확실히 4개를 쓰냐. 답은 그렇다였다. 나는 분명히 배웠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짰고 연습했다. 나와 분대원들이 멈춘 이유는 안 배워서도, 안 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군대잖아.'
이 한 마디가 떠올랐다. 그리고 조교를 바라보던 걸 멈추고 2개로 천천히 전진해 마무리를 지었다. 참, 마지막 훈련이라고 이렇게 며칠 실망을 주나 싶다. 행군을 마무리하고 인식표 (군번줄)을 받은 후 막사로 복귀했다. 아쉬움 가득하게 글을 마친다.
일어나서는 제식경연대회를 실내에서 진행했다. 나는 걸음 박자를 잘 못 맞추는 사람 중 하나였지만 12번 훈련병 덕에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본 경연에서는 실수와 함께 무너지며 수상에 실패했다. 미안할 뿐인 상황에서 10번 훈련병은 내 탓이 아니라며 다가왔다. 조언도 건네주었다.
"실수해도 아...하고 낙담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돼. 그럼 참 좋은데."
문득, 사회에서의 내가 떠올랐다. 첫 작품의 망했다시피한 성적, 그리고의 도피. 그는 1달 동안 나를 보면서 자주 느꼈던 모양이다. 나는 실패와 실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걸. 그래서 발전이 많이 느리고 늦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