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가?
혐오에 대한 고찰

혐오는 학습으로부터...

by 달빛소년

학습된 혐오는 다름과 손가락질을 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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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ㅁ 혐오(disgust) : 미워하고 싫어하고 꺼려하는 감정으로 상대와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는 거부감을 들게 하는 감정


혐오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지 궁금하다. 혐오는 누구나 하면서 살아가는데, 표출하지는 않아도 혐오라는 감정에 대해서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류는 진화하면서 생존 본능을 지키기 위해서 터득한 생존본능, 가까이 하면 신체적, 사회적으로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대상을 멀리하는 감정이 발달되어 있다. 그것이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말이다. 혐오는 주로 집단과 문화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데 수르스트뢰밍은 스웨덴의 통조림 식품이며 세계 최악의 악취 음식으로 알려진 요리이고 호불호가 있기에 어떤 사람은 좋아하기도 또는 혐오하기도 한다. 호불호라는 것은 혐오의 아주 약한 단계이다.


나는 혼자만의 생각을 할 때 혐오라는 감정의 내면은 어디서 오는지 곰곰히 생각하곤 한다.

혐오를 하지 않기 위해 내면에서 성찰을 하면서 평점심을 유지하고는 하고 그리고 생각한다.


혐오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사진 바로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찍힌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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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 사진


괴벨스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선전 장관으로 독일인을 선동하여 유대인 탄압 학살에 앞 장 선 인물이고 유대인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장관이 되기 전 자신의 실업과 안타까운 현실을 모두 유대인을 탓했고 독일의 모든 문제를 유대인을 탓했다. 그의 인생은 유대인 몰살이 목표였다. 미친 인간이 따로 없다.


이 사진은 사진 작가가 유대인이라는 소식을 전달 받은 괴벨스가 사진 기자를 노려봤고 그 모습이 카메라에 담긴 사진이기에 혐오하면 이 사진을 빼고 논할 수 없다. 표정을 보면 100% 상대를 혐오하는 눈빛과 표정을 알 수 있다.


혐오는 어디서 오는가? 에 대한 답변에 나는 학습에서 온다고 설명하고 싶다. 학습된 혐오는 자연스럽고 빠른 분노와 짜증 그리고 경멸이 가능하게 한다.


나는 복숭아 황도 통조림 알러지가 있는데 중학교 때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의 병문안을 자주 갔을 때 선물로 들어온 황도 통조림이 너무 맛있어서 자주 먹다가 토하고 알러지가 생기고 입원까지 해 꽤 오래 동안 황도 통조림을 먹지 못했다. 나의 사례와 같이 누구나 싫어하는 음식이 있을 텐데 나와 같이 먹고 토하거나 알러지가 생겨서 죽을 뻔 해서라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단 한 번만 경험하더라도 거의 반 영구적으로 평생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세상의 모든 혐오는 자기의 경험과 타인에 의한 학습에 의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유색 인종 차별, 성 소수자 혐오, 여성 - 남성 혐오, 장애인 등 혐오하는 대상과 가까이하면 나 또는 내가 속해있는 집단에 뭔가 피해가 올 것이라는 생각. 즉, 신체적 사회적으로 병들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원시 부족 시대에 이러한 감정은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기에 나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을지도 모를 전염병의 전파를 막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심리적으로 느끼는 혐오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내가 직접 겪은 혐오. 비위생적이나 공포를 느끼거나 먹고 배탈이 난 다거나 촉감이 이상 하다거나 혐오 대상으로부터 위해를 입은 경험이 있거나 등 내 몸이 겪은 것과 관계가 있을 때 더욱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건 누구나 경험해 볼 수 있는데 상한 음식을 눈으로 먼저 보고 냄새를 맡는 것보다 입을 벌리고 먹는 것처럼 행동을 취하면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몇 십 배로 커지니 궁금하시면 한번 해보시는 것도 좋겠다.


둘째, 내가 겪지 않은 도덕적인 혐오이다. 기독교나 교육자의 사상에 따라 혐오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치원이나 어릴 때부터 부자는 탐욕을 부리다 벌을 받고 가난한 사람은 선하다는 선입견, 나는 노력해서 회사를 다니는데 취업이 잘 안되거나 사회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취업을 하지 못하는 소위 백수들을 향한 혐오, 능력주의에 기반하여 좋은 대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무시 당해도 된다는 사고방식, 소위 사회적 약자들을 지목해 너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 하며 그 사람의 인생을 본인과 비교해 잘못 살았고 저런 대접이 어울린다고 하는 등 수없이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아래의 만화는 완벽한 예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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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위의 사례처럼 사회에서는 혐오가 만연해 있고 부모의 도덕적 가치관에 따라 아이들이 교육 되어 도덕적 혐오를 갖고 크게 된다. 사람은 너무 쉽게 편을 가르고 타인을 배척하기 때문에 내 집단의 말은 수용하고 내가 속해 있는 가족과 친구, 학교, 회사, 국가, 민족, 인종 등을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아파트 계급 사회로 나타난다. 어느 신문에서 봤는데 길 건너 아파트와 집값 2억 5천 만원이 차이 나서 부모가 아이들에게 저쪽 아파트 사는 아이들과 놀지 말고 우리 아파트 사는 아이들 하고 만 놀라고 하고, 반대쪽 아파트는 버스 정류장을 가는 지름길을 막고 이쪽으로 지나다니지 말라고 울타리를 쳤다는 사연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고 나 혼자는 약하니 집단의 권익을 추구하면 더 안전하고 내가 속한 집단은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타 집단은 혐오나 배척하는 경향이 심하다는 소리이다.


사회적 약자가 혐오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공정하고 공평하다고 생각하며 법은 완벽한 사회적 합의라는 생각을 하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내가 법에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이익이나 컨트롤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여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내가 공정하고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가치관을 해치는 일이라서 그냥 순리대로 살길 희망한다. 여기서 순리는 그냥 공부 열심히 하고 회사 다니고 노력해서 열심히 살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구체성이 떨어지고 직장을 들어가 돈을 벌면 어떻게 든 살아가겠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수의 사회 구성원은 이런 논리를 강요하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 약자인 이유는 전적으로 그 사람이 열심히 뭔가 성취하지 않았거나 잘못 살아온 증거라고 믿어 버린다. 즉, 사회적 약자는 잘못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회사만 봐도 유명한 속담이 있지 않은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학교, 회사와 개인이 맞지 않으면 변하는 건 학교,회사가 아니라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퇴출되는 것이 당연시된다. 이러니 거대한 집단은 개인을 기계 부품처럼 생각하고 좋은 부품이면 우선 가져다 쓰고 나쁜 부품이면 내다 버린다.


한국 사회는 인권이나 개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경직된 사회이다. 직장 내에서 꼰대 상사의 차별이나 남여의 사회적 불평등이나 차별을 그다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끔 지방에서 상경한 사회 초년생 여성을 대상으로 나이 많은 유부남 부장이 접근하여 몹쓸 짓을 하는 사례를 들은 적 있다. 사회적 약자인 인턴을 정규직을 시켜준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이런 것을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사회적 지위나 직업에 따라 다르게 대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지고 혐오를 당하면서도 약자는 혐오인지 모르고 넘어가는 가능성이 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일자리가 없는 사회가 문제인데 말이다..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에는 지금 사회는 너무 각박하다. 능력 주의를 경계하라는 표현을 나는 글에서 자주 쓰는데 이런 능력주의와 성실만능 주의가 사회적으로 고착 되었고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을 때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온라인 상으로 적극적인 혐오자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혐오자 들은 특정 집단을 XX충 이라 부르며 함부로 대하거나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도 된다고 죄책감 없이 탄압하고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할 잘못된 용기를 준다.


아무 이유 없이 특정 인물, 인종, 사상, 종교, 성, 생물, 사물 등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이나 반감을 갖는 사람들은 보통 확증 편향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혐오하는 감정은 처음부터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도덕적 혐오는 교육으로 개선 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우리 공동체의 교육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다수의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피해를 받았다며 피해 의식을 호소하고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혐오를 근절하기 위한 이런 마음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근복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예방 교육이나 괴롭힘이 얼마나 나쁜지, 괴롭힘 당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 교육을 통해서 차별의 씨앗이 싹 트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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