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가난해지는 시대에 대하여
요즘 가난은 더 이상 경제 상태가 아니다.
성격이 된다. 태도가 된다. 심지어 가난이 인격의 결함처럼 취급된다.
가난을 개인의 성격 문제로 만드는 사회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지운다.
우리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가난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환율은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움직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달러는 올라 있고, 그에 따라 원자재 값이 오르고, 기름값이 오르고, 물가가 오른다.
누군가는 말한다.
“당신은 성실하게 살지 않아서 가난한 것이라고..”
놀랍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개인의 태도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부지런해도, 성실해도, 계획적이어도 환율 앞에서는 모두 같이 가난해진다.
인플레이션은 더 교묘하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식비가 오르고, 월세가 오르고, 교통비가 오르고, 보험료가 오르고, 학원비가 오른다.
돈을 더 쓰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살아 있기만 해도 지출이 늘어난다.
이건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비용이 구조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말한다.
“관리 잘하면 되지 않나?”
“절약하면 되는 거 아니야?”
“재테크를 했어야지.”
"더 벌었어야지."
이 말들은 현실을 외면한 조언이다.
왜냐하면 인플레이션은
‘낭비하는 사람’만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
그저 하루하루 버텨온 사람도
같은 속도로 가난해진다.
이제 가난은
게으른 사람의 결과가 아니라
현실에 오래 머문 사람의 결과가 된다.
월급의 실질 가치는 줄어들고,
저축의 가치는 깎이고,
노동의 보상은 뒤처진다.
가만히 서 있어도 바닥이 내려가는 구조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뛰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이때 사회는 다시 개인을 호출한다.
“왜 대비하지 않았나.”
“왜 투자하지 않았나.”
“왜 더 공격적으로 살지 않았나.”
하지만 이 질문은
모두 결과를 원인으로 바꿔버린다.
환율과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한 구조적 변수는 지워지고,
모든 책임은 개인의 선택과 성격으로 축소된다.
그래서 가난은 점점 수치가 된다.
설명해야 할 상태가 되고, 숨겨야 할 정체성이 된다.
사람들은 가난해진 이유를
환율이나 물가에서 찾지 못한다.
대신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
“내가 부족한가?”
“내가 둔한가?”
“내가 시대를 못 읽었나?”
이 질문들이 반복될수록
사회는 편해진다.
구조는 문제없고,
제도는 중립적이며,
문제는 늘 개인이 된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야 한다.
지금의 가난은 성격의 결과가 아니다.
환율과 인플레이션, 그리고 그 충격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의 결과다.
가만히 있어도 가난해지는 시대에
계속해서 “왜 노력하지 않았냐”라고 묻는 사회는
잔인하다. 그리고 비겁하다.
이제는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왜 너는 여기까지밖에 못 왔나”가 아니라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가난해지는가”를 묻는 사회여야 한다.
가난은 성격이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가난해지는 구조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진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