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을 쓰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십 번을 되뇌었지만, 막상 글로 옮기려니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 문장을 적는 순간, 그 일이 더 이상 마음속의 불안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일이라는 이유로, 분노를 눌러두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아직 세상은 기본적으로 안전하다고 믿어도 되는 나이다. 학교는 공부를 배우는 곳이기 이전에, 어른들이 아이에게 “괜찮아, 여기는 안전해”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아이는 반복적으로 폭력을 당했다.
처음은 말로 옮기기에도 조심스러운 행동이었다. 다른 반 아이가 돌봄 교실에서 만날 때마다 양손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춤을 췄다고 했다. 아이는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분명히 느꼈을 감정은 있다. 이상함, 불쾌함,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
아이는 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두려움을 참고, 스스로 선을 긋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친한 친구도 아니었고, 덩치가 커서 더 무서웠다고 한다. 아이는 그 나이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이미 혼자서 버티고 있었다.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성기를 발로 차는 일이 있었고, 최근에는 팔을 주먹으로 치고 도망가는 신체 폭력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모든 일은 단발적 사건이 아니다. 반복되었고, 지속되었으며, 점점 수위가 높아졌다. 학교폭력이 교과서적인 순서로 진행된 셈이다.
그제야 이 이야기를 꺼낸 아이를 떠올리며, ‘우리가 얼마나 다그쳤길래 이렇게 늦게 말했을까’ 하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말하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봄 교사가 그 장면을 직접 목격했고, 가해 학생을 즉시 혼내고 지도했다고 한다. 그 점은 분명 감사하다. 그러나 ‘혼냈다’는 사실만으로 이 일이 끝나서는 안 된다. 아이에게 남은 것은 여전히 두려움이다. 다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불안, 언제 또 같은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긴장, 그리고 어른들이 정말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 가해 학생은 계속해서 아니라고, 그런 적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맞벌이 부부로 살아가며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누구를 만나고 어떤 관계를 맺으며 하루를 보내는지 모든 순간을 알 수는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지지해주기만 한 부모도 아니었다. 아이에게 성장에는 두려움과 고난이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 일을 겪고 나니, 혼내기 전에 더 자주 안아주지 못했고,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못했다는 후회가 남는다.
아이의 불안은 밤이 되면 더 또렷해진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로 “오늘은 괜찮았어”라고 말하지만, 그 말 뒤에 붙지 않은 감정들이 분명히 있다. 학교에 가는 길, 돌봄 교실로 향하는 시간, 혹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상상. 아이의 하루 곳곳에는 작은 공포가 숨어 있다.
아내와 상의했다. 하이클래스를 통해 학교에 즉시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상황을 정리할수록, 학교가 ‘원만한 해결’이라는 이름으로 이 일을 덮으려 할 가능성이 보였다. 어른들 사이의 원만함은 종종 아이의 침묵 위에서 성립된다. 그 예감이 들었고, 그래서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주말이라 아직 상담을 받지 못했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해보려 한다. 과하다는 말을 들어도 상관없다. 아이에게 “아무도 너를 대신해주지 않았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다. 아이는 잘못이 없다. 참고 넘길 이유도 없다. 이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책임을 부모가 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 혼자 감당하게 할 수는 없다.
이럴 때 맞벌이라는 사실이 유독 화가 난다. 아이가 혼자 돌봄 교실에 남아 있어야 했던 시간, 그 시간 동안 어떤 표정으로 버텼을지 자꾸 떠오른다. 전화 한 통, 메시지 하나로 상황을 접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그 자리에 함께 있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문득, 돈이 많은 부모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까지 스친다.
아이는 아직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하지 못한다. 대신 몸으로 기억한다. 불안, 긴장, 위축 같은 감정이 먼저 몸에 남는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서웠겠다”라고 말해주는 것, “네가 잘못한 게 아니다”라고 분명히 알려주는 것, 그리고 실제로 어른들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이 글은 분노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다짐에 가깝다. 아이의 하루를 다시 안전한 곳으로 돌려놓겠다는 다짐. 학교가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아이에게, 어른은 침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겠다는 다짐이다.
아이는 보호받아야 한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결국 그 단순한 문장을 지키기 위해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해가 갈수록 더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아침마다 따뜻하게 인사하고 저녁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 한다. 세상은 안전할 수 있고, 폭력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며, 어른들은 아이를 지켜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부모는 아이에게,
비를 막아주는 든든한 우산이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