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혹시 ‘돌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조직을 옮겨도 돌아이는 사라지지 않고, 상돌아이가 없으면 덜 돌아이 여럿이 있으며, 팀 내 돌아이가 나가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운다는, 처음 들으면 농담 같지만 직장 생활을 조금만 오래 해본 사람이라면 이상하리만큼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 말이다.
심지어 더 불편한 건, 팀에 돌아이가 없다고 안심하는 순간이다. 그 자리에 내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웃으며 넘기기에는 묘하게 찝찝하고, 부정하기에는 너무 많이 겪어본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은 반복될까?
조직이라는 곳은 인간관계를 치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성과를 만들어내는 구조 위에 존재한다. 이 구조 안에서는 측정 가능한 결과가 관계보다 앞서고, 숫자로 증명되는 성과가 모든 것을 설명하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투가 거칠어도, 책임을 교묘하게 회피해도, 심지어 타인을 소모시키는 방식으로 일을 하더라도 결과만 유지된다면 그것은 문제로 남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구조는 특정한 사람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 자체를 조금씩 바꿔놓는다. 권력은 공감을 둔감하게 만들고, 성과에 대한 압박은 스스로를 합리화하게 만들며, 반복되는 경쟁은 감정을 무디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저 사람 원래 저런 사람이었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 사람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 구조 속에서 그렇게 변해갔을 뿐이다. 결국 문제는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환경에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다양한 얼굴의 ‘빌런’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다. 아주 흔하고, 그래서 더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를테면 뒷담화 장인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평가를 퍼뜨리는 사람이다. 누군가 자리를 비우는 순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며 “쟤 원래 저래”, “근데 좀 별로 아니야?”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처음에는 그 말이 이상하게도 친밀감처럼 느껴진다. 비밀을 공유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깨닫게 된다. 그 사람의 관심사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고, 해결이 아니라 평가라는 사실을. 이런 유형이 많아질수록 조직의 신뢰는 조용히 무너진다. 회의는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진짜 이야기는 회의실 밖에서만 오간다.
어떤 이는 항상 중심에 서고 싶어 한다. 성과가 나오면 자신을 강조하고, 문제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존재감을 흐릿하게 만드는 사람, 타인의 공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고 책임은 멀리 두는 사람이다. 이른바 나르시시스트형이다. 이들이 더 위험한 이유는 처음에는 오히려 유능해 보인다는 점에 있다. 자신감과 과장은 종종 능력처럼 보이고, 빠른 말과 단호한 태도는 리더십으로 오해되기 쉽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서서히 빠져나간다. 사람들은 점점 말을 아끼게 되고,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줄인다. 조직은 겉으로는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관계는 조금씩 소모된다.
또 다른 얼굴은 지위를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굳이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대신 한 문장으로 상대를 작게 만드는 방법을 안다. “그걸 내가 일일이 말해줘야 해?”, “왜 이렇게 기본이 안 돼 있어?”, “내가 너 나이 때는 말이야.” 이런 말들은 조언이나 지적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위계를 확인하는 방식에 가깝다. 상대가 위축되는 순간, 자신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많은 조직은 겉으로는 조용하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안정이 아니라 경직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더 잘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하지 않기 위해 일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조직 안에 자연스럽게 기대어 있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도와주는 척하며 자연스럽게 일을 넘기지만, 그 패턴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구조가 된다. 잘하는 사람은 점점 더 많은 일을 떠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대로 남는다. 이때 느껴지는 감정은 분노보다 피로에 가깝다. “왜 나만?”이라는 질문은 크게 터지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쌓이며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이것이 무임승차형이 가장 위험한 이유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팀의 균형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한 발 물러서는 사람도 있다. 보고는 위로 올리고, 책임은 아래로 내려보내는 데 능숙한 유형이다. 수직 구조를 가장 잘 활용하는 이들은 겉으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데 집중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조직에서는 아무도 위험한 일을 맡으려 하지 않게 된다. 도전은 사라지고, 안전한 선택만 반복된다. 조직은 움직이고 있지만, 더 이상 성장하지는 않는다.
이 모든 유형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 스스로는 자신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조직 역시 그들을 쉽게 걸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돌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은 단순한 농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법칙이 무서운 이유는 빌런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우리가 그들과 닮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상처받던 사람이 어느 순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진흙탕에서 버티다 보면 옷에 진흙이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진흙이 결국 나 자신이 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누군가에게는 돌아이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누구나 어느 순간에는 누군가를 힘들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타인을 소모시키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겠다는 선택, 그 선택만큼은 의식적으로 붙잡고 있어야 한다.
조직은 완벽하지 않다. 인간 역시 그렇다. 그래서 이 법칙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인간 사회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인간으로 남으려는 노력만큼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월급을 받으면서도, 인간으로 남는 일. 그 어려운 일을 해내려는 사람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