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myself permission
내면의 금지구역은 '나는 절대로 이것은 할 수 없어’라고 스스로 규정한 영역이기 때문에 해제될 때 두려움, 불안, 수치심 같은 부정적 감정이 생기고 파국적 결과가 예상돼서 벗어날 시도조차 못 하는 영역이다. 이는 의식으로 인식할 수도 있고 무의식에 존재할 수도 있다. 금지구역을 해제하면 삶이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될 거로 생각하지만 몸과 마음은 그곳에 가까이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나에게는 2가지 금지구역이 있었다. 첫 번째는 춤추기, 힘 빼기이고 두 번째는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몸치였다. 고1 무용 시간에 동작을 따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강당 가득 쩌렁쩌렁한 음성이 들려온다. “000 몸치냐? 너만 틀렸잖아! 이 쉬운 게 안돼?". 나였다. 그 순간 몸에서 열감이 느껴졌고, 미소는 사라졌고, 많은 눈빛이 느껴지며, 나=몸치 생각이 반복 실행되고 주홍 글씨처럼 각인되었다. 이후 춤추기는 금지구역이 되었고, 긴장하지 않고 동작해야 하는 모든 활동이 어렵고, 이완하려 할수록 몸에 힘이 들어갔다. 테니스, 수영, 골프를 배울 때도 힘을 못 빼고 중도 포기했고, 아이를 낳을 때는 이완을 못 하며 22시간 진통 끝에 출산했다. 몸치, 운동 신경 없는 사람으로 살던 어느 날, 트라우마 교육에서 “절대로 이것은 할 수 없어”는 금지구역이고,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의식적, 무의식적 트라우마 경험이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영향으로 내가 춤과 이완을 허용하지 못할 수 있음을 깨닫고, “춤이라는 금지구역을 허용해 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라인댄스에 등록했다. 수업 초반 “나는 필요하면 춤출 수 있어”라는 주문을 외워야 했지만, 점차 라인댄스와 친해지고 긴장하지 않고 몸의 자유와 삶의 에너지를 느끼게 되었다. "절대 안 돼"를 "필요하면/가끔 할 수 있어”로 바꾸는 경험으로, 가볍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지금 여기에서의 생생한 감각과 에너지를 만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번째 경험은 엄마를 향한 맹목적 사랑에서 벗어나기이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사랑이 있으니까, 부모 중 한 명이 없거나, 힘들 때 나라도 해야지 하면서 맹목적으로 돕게 된다. 이런 아이들의 사랑은 본인이 알고 대신해야지가 아니고 맹목적이라고 해서 맹목적 사랑이라고 한다. 나는 1남 3녀의 장녀, 그것도 몹시 가난한 가정의 장녀이다. 원래부터 가난했던 건 아니고, 사업이 망한 큰아버지가 시골에 살던 아버지에게 도시로 오면 집도 가게도 준비해 주겠다고 거짓말해서, 가산을 정리하고 왔지만, 집은 6세대, 총 21명이 살며 2칸짜리 재래식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는 곳이고, 사글셋방 2칸에서 여섯 명이 살았다. 약속한 가게는 없고 부모님은 시장의 1평짜리 좌판에서 장사를 하며 새벽부터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하셨다. 장녀인 나는 엄마를 대신해 초등 저학년 때부터 집안일과 동생 돌보기를 시키지 않아도 했다. 힘들다고, 필요한 게 있다고 말하지 않았고, 안전하지 않고 곤경에 처해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지 않았다. 장녀로서 나라도 하지 않으면 엄마가 힘들어진다는 마음으로 놀이와 공부 대신 일을 했다. 감정과 욕구를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기는 금지구역이 되었고 내가 큰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받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책임감, 배려심,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른인데도 집, 직장에서 정당한 요구와 감정 표현을 못 하는 내가 답답하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었지만 모습은 변함없었다. 이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엄마가 전화하셔서 “김장을 적게 하니 오빠에게 작년과 같은 양의 김치를 주고, 딸들에게 1통씩만 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사실 김장 1통이면 충분하지만, 오빠가 우선이고, 딸은 뒷순위라는 생각에 화가 났고 참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를 힘들게 하면 안 돼”를 “필요하면/가끔 엄마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필요한 것을 요구할 수 있어”로 말하기로 결정했다. 섭섭하고 서럽고, 어린 시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의 두려움에 관심 두지 않던 엄마에 대한 원망을 말하며, 큰비가 오면 수문을 열어 범람을 막는 것처럼, 나는 감정과 경험의 수문을 활짝 열었다. 엄마는 당황하셔서 전화를 뚝 끊더니, 이틀 후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듣지도 않았어. 네가 알아서 일해주니 그저 고마웠어. 늦었지만 엄마가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이 순간 나는 아무런 걸림 없이 깊이 호흡하며 후련함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감정과 욕구를 봉인했던 금지구역은 이렇게 해제되었다. 나에게 의미 있는 2가지 경험은 수십 년 동안 몸과 마음이 갇혀있던 나를 자유롭게 허용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