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방

술에 취해 비틀거려야 어른이다

by Seriel J

전, 현직 선생님인 나에게는 꼬마 친구들이 많다.
오후 4시 끝자락, 노을이 책상을 감쌀 때면 꼬마들은 연필을, 나는 색연필을 내려놓고 싶어진다.
창밖 노을 그리고 잠깐의 휴식에 잔잔한 대화가 얹어진다.
"얘들아, 너희는 어른이 뭐라고 생각하니?"
꼬마들은 짱구 볼살을 실룩거리며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 아래로 굴렸다 하며 골똘히 생각한다. 두어 마디 대답하겠거니 예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아기 참새들이 먹이를 받아먹듯 입을 쫙쫙 벌리며 말문이 터진다. 날 더러 받아 적으란다.
순간적으로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했다. 힘이 있나. 받아 적으라면 적어야지요.

꼬마들이 정의 내린 '어른'이란,
1. 대단하다. 뭐든 할 수 있으니까.
2. 꿈을 이룬다.
3. 결혼한다. 그리고 아기를 갖는다.
4. 여행을 한다. 자신을 위한.
5. 예쁘고 멋진 옷을 입는다.
6. 어린이들에게 멋짐이란 게 폭발한다.
7. 요리를 한다. 자신을 위한.
8. 돈을 펑펑 쓴다.
9.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10. 친구가 짱 많아진다.
11.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운다. 누구의 허락 없이.
12. 바쁘다.
13. 속 터진다. 공부 봐줄 때, 말이 안 통할 때, 말을 안 들을 때.
14. 뒤뚱뒤뚱 걷는다. 술을 먹고.

술 먹고 걷는 모습을 기어코 보여주겠단다. 깔깔거리며 흉내 내더니 본인들도 커서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 정도로 마시면 다음 날 숙취가 장난이 아니어서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결코 재밌기만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꾹 참았다. 잘 참은 것 같다.
꼬마들이 정의 내린 '어른'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잘 참은 것 같다.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고 믿듯, 어른의 인생이 한 편의 희극이라고 믿고 부러워해 주는 이도 있어야 살만하지 않은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한 편의 희극 이면에 존재하는 비극을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우리는,
비극 안에서 희극을 찾으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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