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뜨거웠던 여름이었다.
소설 속에서 자주 보던 그런 시작처럼 나의 그날은 태양이 내리쬐는 만큼이나 뜨겁고 그 무게를 온몸으로 짊어진 듯한 날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가슴속에서 응어리처럼 꽉 막힌 이 더러운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잠시, 그 이야기를 하루 전으로 돌려보자.
나는 항상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남자는 머리빨이야. 미용실 자주 가고 관리 잘하면 반은 먹고 들어가니까 미용실에 투자 좀 해.” 그렇다, 나는 멋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20대 초반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머리스타일이 중요한 세상에서 나는 머리칼에 모든 것을 건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날, 그 뜨겁던 여름날, 나는 그 신념을 잠시 내려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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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려야만 했다.
머리를 자르고 친구들과 함께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 평소라면 당당하게 멋진 모습을 하고 들어가던 그 파스타집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주문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늘 자주 가던 곳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매콤한 로제 파스타를 시킬 줄 알았지만 오늘은 그저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휩쓸려 시켜버렸다. 마치 머리카락처럼, 내 마음도 그렇게 허물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깎인 머리 위로 따뜻한 파스타를 한 입 한 입 먹어가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까르보나라 한 접시를 다 비우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의 내 모습은 예전의 나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웃음과 눈물 섞인 얼굴로 나를 맞이하셨다. 나보다 머리칼? 이 많은 우리 집 강아지는 나를 보자마자 경계의 소리를 내었다.
‘내일 아침 먼 곳을 떠나야 하니 일찍 자야겠다.’ 가벼운 샤워 후 드라이기를 찾으며 피식 웃었다. 이미 내 머리는 짧고 더 이상 드라이기를 쓸 이유는 없었으니… 그러고는 잠깐 짜증을 내고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좋아하는 WINNER의 ‘BABY BABY’가 흐르는 방 안에서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지루한 천장도 당분간 못 보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시간이 지나갔다. 어느새 밤 11시가 다 되어가고 내일 아침 6시에 나가야 하니까 빨리 자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꽉 감았다.
그리고 나는 잠에 들었다.
그날은, 나의 군입대 하루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