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퇴촌으로 귀촌을 했다. 서울로 출퇴근하며 지나친 음주를 자제하며 지내고 있었다. 2008년 퇴촌 토마토축제가 개막하던 금요일, 마을 주민으로서 축제를 즐기며 대낮부터 술에 젖어있었다. 여기서 한 잔, 저기서 한 잔, 오라는 사람은 없어도 술자리는 많았다. 그러다 마을 이장님을 만났다. 오랜만이라 안부를 묻고 다시 잔잔히 술잔이 돌고 이야깃거리가 바닥이 나서 술김에 호기롭게 말했다.
- 형님 요즘 안 바빠요?
- 바쁘지, 많이.
- 그런데 왜 도와달라고 말을 안 하세요?
- 그런 말을 어떻게 하니. 너도 바쁠 텐데...
- 저 주말에는 도와 드릴 수 있어요.
- 그래. 그러면 내일 새벽에 원두막으로 와서 도와줘.
우리는 고주망태가 되어 헤어지고, 다음날 술김에 한 약속을 지키러 새벽같이 원두막으로 갔다. 아무도 없었다. 전화로 형님과 형수님을 깨워 처음으로 토마토를 수확했다. 속은 울렁거리고, 머리가 띵해오는데, 형님이 빨간 토마토를 하나 준다, 먹으라고.
이거 먹으면 설사할 거 같다고 하는데도 자꾸 먹으라고 권한다. 하나를 입에 물어보니 이전에 먹던 토마토 맛이 아니다. 달콤 새콤, 맛있다. 하나를 먹고 나니 하나를 더 주신다, 먹으라고. 마지못해 하나를 더 먹었는데, 어 이거 해장이 되고 있다. 속이 진정되고 숙취가 해소되었다. 처음 겪어보는 토마토 해장... 흠, 너무 경이로웠다.
그동안 해장을 하기 위해 했던 수많은 노력들... 아침이 너무 힘들어서 먹기 시작한 콩나물해장국과 북엇국. 더 이상 콩나물과 북어로는 숙취가 가시지 않아 냉면이 잠시 대용이 되어주었다가, 얼큰한 선지 해장국 덕을 좀 보다가, 복국을 먹어본 후 해장은 복국이었다. 복국은 일반적이지 못해서 굴죽 새우죽 김치죽으로 해장을 하다가, 넘어간 것이 크림 파스타였다. 해장의 새로운 발견이었는데, 토마토는 또 다른 차원이다. 너무 개운했다.
매주 새벽 토마토를 따고 8시경 원두막에 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또랑에 놓은 미꾸라지 어망을 걷는 일이다. 지난 일주일간 어망에 잡힌 미꾸라지를 잘 모아 추어 매운탕을 끓여 점심을 겸해서 한잔, 또 한잔한다. 이 농부들은 진로 원조 25도가 아니면 상대로 안 한다. 이렇게 먹고 마시다 보면 오후 3시를 전후해 선수들이 사라지고 4시면 판을 접는다. 오후 농사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 홀로 남은 나는 읍내로 못다 한 술을 마저 마시러 간다. 휴일이 아니라 주일이 되는 것이다. 나의 음주생활은 차츰 주중에서 주말로 옮겨가게 되었다.
어느 날 동네 후배가 밤낚시를 가자고 했다. 낚시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하니, 형은 그냥 매운탕 거리만 챙겨서 와, 그런다. 퇴촌은 팔당댐을 끼고 있어 낚시금지 구역이다. 한데 어떻게 낚시를 한다는 건지 의아했다. 그는 나를 비롯한 동네 친구를 데리고 산으로 갔다. 계곡에서 낚시를 하는 것이다. 그날 우리는 산 메기를 잡았다. 산에서 낚시가 가능하다니. 도시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데 촌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이럴 때 나는 촌에 산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하늘을 보니 밤하늘에 별들이 너무 선명하다. 별 낚시를 온 것 같다. 어항을 놓고, 낚시로 잡은 잡고기를 가지고 내려와 매운탕을 끓여 새벽까지 먹었다. 살찌는 소리가 들리지만 촌 생활은 너무도 즐겁다.
이런 주류문화를 누리느라 내가 배운 전통주 빚는 기술은 내면에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2010년, 동네 동생의 이사를 도와주러 갔다가 찹쌀 한말을 물에 불려놓은 걸 보았다. 이사하는데 거추장스럽다고 버리려고 하길래 내가 가져가겠다고 했다. 가져온 쌀을 다시 한번 헹구고 물기를 뺀 후 방앗간에 가져가 고두밥을 지었다. 누룩을 비벼 넣어 술을 빚었다. 찹쌀로 술을 빚으면 당도가 높은 새콤달콤한 술이 만들어진다. 너무도 맛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맛있는 술맛을 지속시키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냉장시설도 변변치 않았다. 방법은 맛있을 때 얼른 먹는 것이다. 그 시기가 지나면 술은 식초가 되어버린다. 무조건 맛있을 때 먹는 수밖에 없다. 찹쌀을 준 동생과 이장님을 비롯해 여러 명과 나누어 먹는데, 다들 술 욕심이 대단하다. 하긴 내가 먹어도 맛있으니까. 발효가 다 끝난 술이기에 숙취가 전혀 없다.
한번 술을 빚어보니 다시 좋은 술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깨어났다. 본격적으로 술을 빚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