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제조가들의 활약

by 푸른소

밀레니엄 시대가 다가오면서 직장사회의 주류시장에는 또 하나의 혁명이 시작되었다. 1차 소주, 2차 맥주 또는 노래방, 3차 양주로 이어지는 패턴이다. 특히 양주와 맥주의 만남은 음주타임의 종착역이었다. 양주와 맥주의 오묘한 조화!

매일 폭탄을 터트렸다. 터트린다고 해서 폭탄주, 돌리고 돌려 회오리주, 맥주와 양주의 절묘한 비율 금테주, 술잔을 세워놓고 도미노현상을 일으키는 화려한 퍼포먼스의 막치기주, 손 대지 않고 마시는 깔딱주, 맥주를 샤워기처럼 뿜어내는 샤워주, 거품을 일으키는 거품주,...

남자 8명이 술을 마시며 터트리는 폭탄은 3순배가 돌아도 제조법이 다 달랐다. 웬만한 주당들은 자신이 제조할 수 있는 폭탄을 8가지 이상은 가지고 다녔다.


이시기에 유행한 우스개 소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대한민국에 숨어있는 이 사람들 때문이다.

첫째. 못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사람의 대명사 아줌마. 사회전반에서 활약하고 있다.

둘째. 이러한 아줌마도 두 손 다 들게 하는 중2. 매년 수만 명이 생성되고 있다.

셋째. 흔적도 없고 소리도 없이 폭탄을 제조해 매일 터트리는 폭탄제조가. 매일 밤 활약하다 새벽이면 감쪽같이 흩어진다.

95년 처음 폭탄주를 마셨을 때는 충격이 너무 컸다. 처음 마셔보는 폭탄주는 맥주잔에 맥주를 7부, 양주잔에 양주를 8부 따르고 맥주잔에 양주잔을 떨어뜨려 냅킨으로 입구를 막고 잔을 들어 올리고 테이블에 내려친다. 꽝, 소리와 함게 거품이 올라와 냅킨을 적시고, 그 냅킨을 천정이나 벽에 던져서 붙으면 성공, 떨어지면 실패다. 다 마시고 잔을 흔들어 두 잔이 부딪쳐 딸랑딸랑 소리를 내 다 마셨음을 알려야 한다. 폭탄주는 술자리에서 퍼포먼스와 화끈함으로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맛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초창기에 만들던 폭탄주는 양으로 승부했던 것 같다. 금테주나 회오리주는 폭탄주와 비슷한 양의 맥주과 양주를 섞는 것이었다. 알콜도수 16도 되는 술을 원샷으로 마시기에 알콜 대미지가 높았다. 세기말과 밀레니엄으로 흐르면서 폭탄주의 양상은 바뀌어갔다.

양보다는 질과 퍼포먼스로 술자리의 재미를 더했다. 술잔을 도미노처럼 터뜨리는 박치기주는 함께 자리하는 사람들에게 축제와 같은 즐거움을 주었고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물론 노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효과는 좋았다. 샤워주나 거품주는 양주와 맥주의 양을 줄이고 거품을 이용해 극도로 부드러웠다. 소주잔 정도의 양으로 브랜딩하여 맛을 향상시켰다.


섞어 마시는 제조술을 평정한 것은 소맥이었다. 날로 팽창하던 폭탄주 기술자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양맥폭탄주는 물러났다. 제조 술은 맥주와 소주가 만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왔다. 신기한 것은 섞는 비중에 따라 술맛이 변한다는 것이다. 누가 제조하는가에 따라 술자리의 술 소비량이 좌우되었고, 병권(!)을 중요시하게 되는 현상이 생겨났다. 여기저기 소맥 전문가가 출몰했다. 지금도 유튜브 등을 통해 소맥전문가가 양성되고 있다. 소맥이 밀레니엄시대 주류의 진정한 승자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