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96년 봄에 나의 음주 역사에 이정표를 남겼다.
직장동료와 둘이서 신촌 고바우 집에서 소주 한잔을 했다. 그 당시 소주는 25도였다. 주먹 고기 2인분(당시 1인분에 5,000원이었다)으로 시작한 술자리는 어느새 8병이 넘어가고,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는지 술잔을 계속 비워냈다. 길어진 술자리 덕에 후배도 우연히 만나 한두 잔 따라주고 둘이서 내일 없는 듯 계속 마셔 대었다. 10시 넘어 2차를 가려고 계산을 하니 42,000원이 나왔다. 안주값은 10,000원인데... 16병을 마신 것이다. 중간에 후배에게 주고 흘리고 버리고 그런 것 계산해도 족히 14병은 마신 것이다. 각 7병. 그러고 2차를 가자고 하다니. 우린 2차를 가던 중에 취기가 올라 각자 집으로 행했다. 다음날 나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휴가처리를 해야 했다. 어휴 징한 넘, 같이 술자리를 한 동료를 원망했다. 그놈도 출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서가 다르다는 것. 그 후 소주 최고 주량이 7병이 되었고 주량은 90년대와 2000년대까지 나의 사회생활에 커다란 무기가 되어주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잘 먹지는 않았다. 87년 대학교에서 처음 소주를 마시면서 1년간 나의 주량은 소주 반 병이었다. 소주 반 병 이상을 마시면 정신은 말짱해도 속에서 받지를 않았다. 8잔 정도 마시면 울렁거리다가 10잔을 넘어가면 말짱한 정신에도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을 확인해야 했다. 먹은 것을 확인하는 고통은 김치찌개 같이 매운 안주를 먹었을 때는 더욱 끔찍했다. 그렇게 토하고 나면 더 이상 술은 먹지도 못했다. 하지만 기억력은 가히 사진기였다. 그날 술 먹고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계산이 얼마인지, 술 취한 놈들 챙겨주고 뒤치다꺼리를 다했다.
그 당시 우리는 강의실보다 시위 현장에, 도서관보다 술집에 더 머물렀다. 그렇게 마시던 술이 한잔, 두 잔, 한 병, 두 병,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어느덧 소주의 거부감이 없어지고 먹은 음식을 확인하는 일도 줄어들어 있었다. 88년 가을 어느 날 맥주잔에 가득한 소주가 거부감 없이 목 넘김을 하고 주위에서 무슨 술을 물먹는 것처럼 마시냐고 핀잔을 주었다. 앗, 내가 어느새 이런 주당이 되었지? 생각을 해보니 오늘로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신 지 47일째 되었다. 반 병으로도 고주망태가 되던 내가 47일을 마시다니.... 그 이후로 술이 더 맛있어졌고 술에 거부감이 없었다.
사회에 진출한 후 나는 물 만난 고기였다. 직장선배들은 매일 술 고문이랍시고 밤늦게까지 삼겹살과 소주를 사주었다. 나야 땡큐지, 뭐. 막내였지만 학창 시절처럼 먼저 취한 선배를 챙겼고 마무리 전담자가 되었다.
98년 프리미엄 저알콜 소주가 나오기 시작했다. 프리미엄 소주 김삿갓, 참나무통 맑은 소주 등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25도에서 23도(1998년), 22도(2001년), 21도(2005년), 20.5도, 20도(2006년), 19.5도, 19도(2007년), 18도(2014년) 지금과 같은 13.9도로 내려갔다.
마포, 시청 앞, 소공동 등의 골목에서 소주를 먹다 보면 여러 가지 풍경을 보게 된다. 처음처럼 소주에서 이벤트를 하고 가면, 참이슬이 뒤따라 이벤트를 하며 각축전을 벌였다. 주변의 단란주점 역시 술집 골목을 쓸고 지나갔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숙취해소제, 라이터, 사탕 등이 수북하게 쌓였다.
저알콜 소주가 주는 폐단은 술값이 많이 나간다는 것이다. 안주 값보다 술값이 더 많이 나가기 시작했고, 업주들도 마진을 생각해서 안주보다 술 시키는 손님을 좋아했다. 술을 덤으로 주던 시기는 지나간 것이다. 둘이서 마시든 셋이서 마시든 일단 안주 하나에 소주 9병을 주문했다. 그러고도 취하지 않으니 참 문제였다.
대한민국 영화의 부흥기가 시작된 2000년 초반, 마침 나도 영화 광고를 업으로 삼고 있었다. 되었다.
어느 날 행사 초청장이 도착했다. 영화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새롭게 창간된 매체였다. 하지만 아직 거래도 없는 낮선 매체에서 왜 나를 초청했을까, 의아했다. 행사 내용이 해외여행이라 부담이 많이 되어 사양했더니, 나를 자기 대신 꼭 데려가라고 추천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름을 들어도 모르는 사람이다. 유명한 영화 제작 배급사의 마케팅 팀장이라고 한다. 아리송한 일이다.
덕분에 행사에 다녀온 후 추천자와 함께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물었다. 무슨 연유에서 나를 추천하셨느냐고. 돌아온 대답은 내가 4040클럽의 회원이기 때문이란다. 4040클럽? 들어본 적도 없고, 가입한 적도 없는 클럽이다. 나는 그런 클럽에 가입한 적이 없다고 하자 당신은 자격이 충분하다고 한다. 4040의 의미가 무엇이냐 물었더니, 소주40잔, 맥주40잔 하룻밤에 마시는 술의 양이란다. 나는 못 마신다고 하니 아니란다. 지금 마셔보잔다. 같이 마셔보니 문제점이 있었다. 마시는 리듬이 다린 것이다. 나는 두 번에 나누어 마시는 버릇이 있는데 그는 원샷파다. 그 리듬에 맞추면 내가 빨리 취하고, 내 리듬에 맞추면 그가 취한다. 방법은 한 가지, 지부지처(지가 따르고, 지가 처먹는다)였다. 술은 각 1병씩 한 번에 두병을 주문해서 각자 먹는 방법이다. 그가 5병을 마셨을 때 나는 4병을 마셨다. 그렇게 4040클럽 자격에 대한 자가테스트를 해보니, 나는 평상시에도 소주 40잔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맥주 10병도 문제가 아니지, 배가 불러서 그렇지... 그렇게 40,40 클럽이 현실이 되었다. 알콜도수가 16.9도 까지 내려간 요즘은 더 쉽지 않을까? 하지만 요즘은 체력도 딸리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아 내가 한때 4040클럽이었다는 자부심으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