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중심으로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 소설 <쥐>는 작가의 아버지인 블라덱 슈피겔만이 얘기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쓰였다. 이 책은 유대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 과정에서 겪은 고난을 담았으며, 그의 가족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받은 차별과 그 영향을 주로 얘기한다. 출생이나 인종, 경제 능력 등 비합리적인 이유로 혐오당하고 그것에서 유래한 폭행이나 살인 등의 물리적인 사건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먼저, 아트 슈피겔만은 유대인을 쥐로, 독일인을 고양이로, 다른 민족을 서로 다른 동물로 묘사한다. 이로 인해, 책에서 다루는 유대인과 독일인 간 갈등이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작가가 선택한 동물이다. 쥐는 현대까지도 사람에게 반가운 동물이 아니고, 오히려 고양이가 더 호감을 부르기 쉬운 동물이다. 결국,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읽는다면 독자의 마음은 이미 고양이(독일인)에게 치우쳤을 가능성이 크다. 자연스럽게 가해자의 시점에서 유대인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바라고 생각했다. <쥐>에서 '토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지 않기 위해 세 아이(비비, 로냐, 리슈)와의 동반자살을 택한다. 이런 내용을 거리낌 없이 보여줌으로써, 가해자의 시점에 선 독자에게 거부감을 유발하고 지나친 차별에 대한 의심으로 유도한다.
둘째로, 작중에서 '블라덱'은 가족에게 조금 불친절하고, 돈에 인색한 사람으로 비친다. 그리고 이 평가는 그가 제2차 세계대전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그는 영어, 폴란드어, 이디시어를 구사하고 이타심을 발휘하며 유대인 학살 현장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남았다. 앞서 여러 결점이 있었음에도, 그가 자신의 능력으로 생존한 사실에 감탄을 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블라덱은 반유대주의의 피해자이면서 인종차별주의자이다. 한 흑인이 그의 물건을 도둑질한 이유로, 그는 흑인을 혐오한다. 이에 대해 '아트'와 그의 아내도 적극적으로 비난하며 가족 누구도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블라덱은 인종주의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한 것이다.
이 작품은 블라덱을 통해 섣부른 일반화를 방지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발생한 비극을 알리면서, 차별당하는 사람이 무조건적인 피해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차별은 누구나 할 수도 있고 당할 수 있다. 흑백논리를 떠나 올바른 분노가 올바른 방향을 향할 수 있도록 조장한다.
이처럼, <쥐>는 유대인 학살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잘못된 신념에 의한 차별을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차별의 특징은 정치적으로 공연한 점이다. 사람이 사람을 배척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소수를 학살해 사회에서 아예 배제하고자 한다. 이것은 마치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을 떠오르게 한다.
현대의 차별도 이것과 비슷한 양상을 띄어간다. 사람들은 익명성을 보장하는 인터넷에서부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어린이, 노인, 외국인 노동자, 흑인 등. 그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문제시된 것이 바로 성차별, 여성 혐오이다.
우리 사회에는 무의식적으로, 암묵적으로 여성을 차별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계집은 밖으로 돌면 못 쓰고, 그릇은 밖으로 돌리면 깨진다"라는 속담처럼 여성의 위치를 집 안으로 제한하며 성역할을 강조해왔다. 이러한 차별에는 유교 사상에 기반한 역사와 교육이라는 근거(맥락)가 일부 존재한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차별은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맘충', '김치녀', '피싸개' 등, 여성의 생리 현상까지 멸칭의 수단으로 사용하며 비난을 주저하지 않는다. 불분명한 분노에 눈이 멀어 타당한 이유와 근거를 잃은 것이다.
나는 디지털 플랫폼이 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대중매체와 달리 법적인 제재가 부족한 유튜브나 SNS 등에서, 사용자는 다양한 의견을 쉽고 빠르게 주입받는다. 그것을 따르든 따르지 않든, 많은 사용자의 관심은 제작자로 하여금 자극적인 행동을 계속하도록 유혹한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이용한 콘텐츠를 제작해 사용자의 관심을 되려 유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기 SNS 중 하나인 트위터가 있다. 트위터에서는 차별에 관한 논쟁(혹은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한남*' 같은 용어를 이용해 여성 혐오를 '미러링**'하고 관련 주제에 적대적으로 반응한다. 서로에게 쉽게 칼을 겨누는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사용 환경이 심하게 오염된 사례이다.
*한남: '한국 남자'의 준말. 한국 남성을 가해자로서 범주화하는 용어이다.
**미러링: 본래 컴퓨터 그래픽에 쓰이는 용어이지만, 현재 '의도적으로 모방하는 행위'라는 뜻을 가진 신조어로 자주 사용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성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갈등 단계에 놓였다. 우선 나는 '미러링' 자체를 잘못된 행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부당한 대우를 역으로 행함으로써 역지사지를 유도하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러나 사상 갈등이 격화한 상황에서도, 미러링이 유의미한 행동인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성차별은 유교 사상과 함께 전승되어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어야 하고, 여자는 집에서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단번에 뿌리 뽑기란 사실상 어렵다. 오히려 구세대와 신세대, 남자와 여자의 갈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기분 나쁘다고 공격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교육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도 차별 범죄의 일종이다. 특별히 능하거나 부족한, 혹은 별난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태도는 성인의 '혐오' 감정에 무엇보다 가깝다. 그러므로 교육을 통해, 타인을 합리적인 근거 없이 함부로 대하는 것이 부적절한 행위임을 알려야 한다. 이때 적절하게 교육해야만 학교폭력을 넘어 혐오에 기인한 차별 범죄를 막을 수 있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처벌이다. 성범죄의 경우, 학교나 기업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범죄 사실 자체를 숨기는 일이 없지 않아 존재한다. 알려지더라도, 피해자가 2차 가해로 인해 원래 자리를 떠나면서 일상을 되찾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성범죄가 증가하는 지금, 피해자를 향한 부적절한 비하를 지양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조치가 시급하다.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법을 통해, 행위의 부적절함을 객관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세대보다 휴대전화를 더 오래 사용하고 이것에 더 의존하는 세대가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성차별 또한 지금보다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학교에서부터 철저한 예절 교육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IT 기술력만을 고집할 뿐 그 부작용을 무시하고 있다. 오히려 이 흐름은 지금까지 외면했던 문제를 마주해야만 할 때라는 징표이다. 우리나라에서 불필요한 갈등과 싸움이 사라지고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흐름이 자리 잡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