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속에 부정적인 감정이 한 톨 쌓이면 어딘가에 꼭 배출을 해야했다.
그 창구는 안타깝게도 내 주변인이었다.
감정의 당사자에겐 그리 감정을 털지도 못할거면서
주변 사람들에겐 분노 연기에 특화된 연기자가 됐다.
그렇게 감정을 터는 것이 의미 없음을 알고선 혼자 침잠하는 버릇을 들이기 시작했다.
내 감정은 내가 해소해 가라앉힐 때야 말로 삶의 주체가 나로서 중심을 잡을 거라고 추측했기 때문.
어떤 사건을 겪고 감정이 잔뜩 엉켜있는 타래가 되면 그들을 하나하나 풀어내며
감정의 원인을 찾아준다. 그 끝엔 나는 어떤 사람이구나, 그래서 여기서 이런 감정이 드네
하는 마침이 있다. 정리하기 어려웠던 감정들에 이름표를 붙여 가지런히 정리해주고 나면
채 이름이 붙지 않은 감정들도 해소된다.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면 나란 사람은 더 또렷해지며
다른 일을 겪을 때도 엉킨 감정들이 제자리를
점점 빠르게 찾기 시작한다.
이게 과잉됐을 때 독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생활을 하며 사람과 계속 마주하는 존재이니까.
그 생활과 사람의 이름표를 붙일 자리도 있어야한다.
감정의 제자리는 꼭 나에게만 있지는 않다.
그 정도가 적절할 때 나란 사람은 중도를 지키건 마음의 평화를 얻건 할 수 있는거다.
간단히 말하면 모든 감정의 화살표가 나를 향할 필요도
타인을 향할 필요도, 어떤 특정 대상을 향할 필요도 없다는 것.
생각 좀 적당히 주변에 말하라니까
이젠 침잠도 과하게 해서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이래서 뭐든 적당히가 좋은거다.
감정들이 과하게 증식하지 않게
유산균을 먹고 (장내 미생물은 사람의 컨디션에 영향을 준다.)
규칙적인 수면을 하고 내가 집중할 생활에 적절한 감정들을 담아 넣어야한다.
언젠가 애꿎은 누구에게 화살표를 마구 던지지 않도록.
그게 나일때도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