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일 데가 없는 감정

by 공원

(1) 첫 번째 감정

제목에 감정이란 단어를 쓰기 전에는 '마음'이 있었다. 마음의 사전적 정의는 몰랐지만 내 기준에는 다소

감성적이었다. 마음의 의미는 사전에 '사람이 사물에 대해 어떤 감정이나 의지, 생각 등을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그 상태.' 라고 나와있다. 지금 찾아보니 '실제의 행동, 또는 실질의 상태나 실현이 없는, 생각·의식·상상만의 작용에 의한 상태.' 라는 말도 되서 단순한 의미로 본다면 틀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엄마는 일을 많이 한다. 이제는 몇 안되게 머리에 남은 어릴때 기억 중 하나도 엄마가 만삭의 몸으로 출근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때부터 내가 26살을 먹은 지금까지 일을 하지 않은 날을 본 적이 없다. 가끔 오는 그런 날이면 꼭 나랑 동생들을 데리고 어디를 갔다. 시간이 들 수록 엄마가 엄마를 위해 시간을 쓰면 좋겠다고 감정이 들었다. 이 감정이 쓰일 데가 없는 첫 감정.


아무리 엄마를 위한 시간을 썼으면 좋겠어 하고 마음 먹어봤자 당장 가까운 미래 정도까지는 쓰일 데가 없다.

우리 집엔 식구가 많고 아직은 다들 제 밥 벌이를 할 정도는 못 된다. 그러니 엄마에겐 당장의 일들을 처내는 것 만이 집중할 과제일거다. 그래도 나는 엄마가 많아도 5년 안에는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온전히 자기를 위한 시간을 갖길 바란다. 나 만큼이나 꿈이 많았던 사람이니.


(2) 두번째 감정


엄마의 시간은 단순히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는데 쓰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남동생의 입시가 막바지에 이르고, 이사를 생각하는 요즘이라 잠을 자고, 먹는 시간도 엄마를 위해 쓰이지 못한다. 내일이면 또 6시 반에 울리는 알람을 듣고 정신 없이 서울로 출근해야 할 텐데. 잠을 줄이며 조금이라도 벌어야한다며 외주 작업을 하는 게 안쓰러웠다.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냥 내일부터 생산적인 일을 해서 내 밥 벌이를 부단히 해야겠다 하고 계획을 세웠을 뿐. 그래도 남동생의 입시가 끝나고 어서 엄마가 이런 벌이에서 해방되길.


엄마는 점점 자기 시간의 방향을 자신이 아닌 우리로 돌리며 살아왔다. 몇년에 한 번씩은 그 방향이 너무 옥죄어서 우는 모습도 봤다. 어려서는 몰랐던 엄마의 시간이 어떻게 쓰이는 지가 자꾸 눈에 들어오는 지금.

그때마다 머리가 뎅뎅 울리면서 몸의 중심이 바로 세워지는 기분이 든다.


엄마는 도시,조경 건축을 공부하러 일본에 가려다 나를 낳았다.

그녀가 나이가 들어도 좋아하는 언어, 분야를 공부하는 할머니였으면.


엄마는 가정을 위해 쇼핑몰도 하고 외주도 하고 온갖 돈 벌이를 했다.

그녀가 자신의 건강, 취미, 재미를 위해 돈을 몽땅 쓸 수 있었으면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잠을 줄이고 밥 먹는 시간을 줄였다.

그녀가 돈 생각 없이 8시간은 일찍 푹 자고 밥도 좋아하는 대로 여유있게,예쁘게 만들어 먹는 시간을 썼으면


좋겠다. 이 마음들이 쓰일 때가 있도록

과로하지 않게 너무 기본적인 것들도 해치지 않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행동으로 옮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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