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나이일때부터, 혹은 한 문장으로 정리되기도 전에 나에겐 사는건 괴로운 일의 연속이란게 들어있었다.
직접적으로 내 삶이 괴롭다 할 만한 일은 많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삶을 볼때 그들의 삶이 괴로워보이기 일수였고 그 삶들이 내 삶이 가진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이런 감정을 가지니 어떤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리 괴로울 만한 일이 없었다고 했지만 나에겐 해결을 해야하는 크기의 감정이 들었다. 소소한 일에도 크게 괴로워하는 유약한 성격을 가진 탓이었다. 또 이런 걸 해결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까지 가진. 이 감정에 대한 내 답은 '삶은 원래 고통이다' 였다. 고민하는 일을 털어 놓을때 원래 그런거야 괜찮아 같은 말을 들으면 꽤나 도움이 됐다. 그게 내 성격이기도 했고 사는건 고통이란 불교의 교리와 맞닿는것 같아 왠지 몰랐던 세상의 진리 하나를 안 것 마냥 느꼈다. 그래 이게 맞는거야 불교 교리에도 써져있잖아. 하고
한 문장으로 정리되기 전에도 비슷한 생각이 떠다녔다. 명확한 단어로는 표현되지 않은 언뜻한 뉘앙스만 가진 것들이. 나에게 일이 생겼을때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의연한 체 했다. 이에 대해 비꼬는 말을 들어도 의연한 척. 삶에 큰 기대가 없고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건 자연스럽다는 듯 굴었다. 어떻게 보면 이때까지는 부정적인 느낌의 "삶은 고통이야" 란 생각을 한거다. 그도 그럴것이 어릴때의 내 주변은 정돈되지 않은 일들 투성이였다. 가족들의 고통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그랬다.
신기하게도 부정적인 생각을 품고 자란 아이가 커서는 같은 문장을 들고 삶을 즐기자고 하고 있다. 그래 삶은 고통이지. 그러니까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흘려보내자고 고통을 담고 잘 살아보자고. 의연한 척 하던 나는 의연한 구석을 꽤 갖게 되었고, 가끔 삶은 고통이라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아무리 고통이래도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고 하늘한테 고소장 날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새로운 나잇대에 이르러선 의연해질 수 없는 감정들에 대한 새로운 문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삶은 고통인데 이 문장으로도 이겨낼 수 없는 일이 분명 일어날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제목과 맞닿아있는, 어쩌면 시작점이기도 할 불교의 교리에서 새 문장을 찾아보려고 한다. 삶이 고통인걸 알았기에 마음의 대비도 해볼 수 있는것. 아무리 해도 막상 일이 닥치면 또 하늘을 향해서 욕을 날리고 싶겠지만 기댈 구석 하나 만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