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래 만나던 친구와 이별을 했다. 이 말만 두고 보면 제목은 참 흔하고 별말 같지 않아보인다.
제목의 말은 내 결핍에서 비롯된 말이다. 헤어지고 난 후 며칠을 하루동안 물을 안마신 줄도 모를 정도로
어떤 것도 입에 넣지 않고 그저 해야할 일들을 했다. 그러다 힘들어지면 일기를 쓰고 친구들에게 연락하며
감정을 토했다. 이때까지는 그저 지금껏 오래 봐온 사람을 하루 아침에 볼 수 없다는 사실, 정말 우리가
이제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방향도 다르다는게 마음이 아파 울었다. 생각 만큼 많이 울진 않았고
속이 좋지 않을때 아무리 해도 토는 나오지 않는 헛구역질 같은 눈물만 고였다. 펑펑 안울었다.
마음은 멍이 든 것 처럼 무지하게 울고 싶었다.
그렇게 3일을 보내다 전날 물도 한 모금 안 먹은게 떠올라 오늘부터는 입맛이 없어도 뭐라도 입에
넣자고 일어났다. 며칠 만에 먹은 밥은 평소라면 맛이 너무 없을, 맹탕 카레였는데 너무 맛있었다.
입맛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 맹탕 카레가 맛있다니. 그때부터 눈물들이 내가 쏟고 싶었던 만큼 쏟아지기
시작했다. 난 가끔 정확히 왜 우는지 모르겠을때가 있었다. 전부터 종종. 내 마음 아주 깊은 구석탱이에,
평소엔 닿지도 못할 곳인데 그곳이 나도 모르는 새에 건들여지면 꼭 울컥하고 펑펑 울었다. 가끔
무의식이 건드려져서 울때가 있지 않나, 그런 울음이었다. 이번엔 밥을 먹다 맛있다고 생각한게 어이가
없었는지 내가 운 이유를 금방 찾았다. 원래였으면 시간이 좀 많이 지난 후에야 아 그때 나 이랬네
하면서 찾아지는 이유인데 펑펑 울다보니 이번엔 그 이유가 당일에 나왔다.
나의 아빠라는 사람은 자기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에게 사랑을 많이 주기는 했지만 그만큼 가장보단
자기를 위해서 더 많이 움직였고 그렇게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옆에서 사라졌다.
관계가 아예 단절된 것은 아니였기에 가끔씩 아빠를 만날 때 마다 아빠가 좋았고 헤어질땐 너무 힘들었다.
왜 아빠가 내 옆에서 없어야만 하는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조금 더 커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됐을땐
그 나잇대 아이들답지 않게 매일 학교가 끝나면 연락했다. 나도 이젠 물리적으로 옆에 아빠가 없다는게
이해도 되고 이렇게 지내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고서 힘든 일을 연속으로 겪었을때 처음으로
어릴때 처럼 아빠를 찾았다. 조금 단절되있던 시기였는데 내가 그때 기댈 수 있을거라 생각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기대가 부서지는건 순식간이었다. 엄마에게 들었던 본인만 아는 사람이란걸 확실히 알게됐다.
내 아픔에는 관심도 없고 본인의 호기심만 채우기에 급급한 모습에 아빠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뒤로 3년쯤 지나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내 결핍을 처음 알았다. 난 내가 애정을 들인 상대가
내 옆에 영원히 있을 수 없단 사실을 받아들이는게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간 남자친구들이
영 별로인 사람이어도 내가 애정을 쏟고 노력을 하면 날 떠나지 않을거라며 미련한 노력을 했다.
아빠가 날 떠나간게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그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아 몸부림 쳤었던거다.
밥을 먹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우나 고민해보니 이유는 이거였다. 내 결핍이 건드려졌구나.
조금 뼈져리게 느껴졌다. 내가 가진 결핍이. 동시에 앞으로 만나는 이는 신중해야겠다 싶었다.
헤어지는 것에 익숙치 않으니 안헤어질 수 있는, 내 결핍이 괜찮아질 사람을 찾자.
그리고 그에게도 내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게 내가 먼저 나를 아끼자
그런 마음에서 글을 적었다. 전엔 내 결핍을 끌어안고 저 밑으로 내려갔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맺는 관계로 부터 비롯된 이것은 내가 앞으로 잘 살 수 없게끔 막는
장애물 같이 느껴졌다. 그치만 이제는 누구나 이런 결핍 하나씩 갖고 산다는것을 안다.
내가 얼마나 내 결핍으로부터 비롯된 외로움을 잘 아는지, 이를 끌어안고 어떻게
나아갈건지가 사는것이란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