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엄마는 멋진 사람이에요.

미안하단 말보단 고맙다는 말로.

by 유시안

2달이 채 안되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했다.

다시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회사&집의 챗바퀴 같은 패턴 속에서, 나는 언제 쉬어봤냐는 듯 그 간에 쌓아둔 에너지를 단 숨에 잃고야 말았다.


집에 돌아오면 소파에 옷 입은 채로 퍽 하고 쓰러지기 일쑤였고, 자잘한 플라스틱 통에 담긴 배달 음식들이 저녁 식탁 위에 하나 둘 켜켜이 쌓여갔다.


나를 향한 회사의 요구사항은 끊임없이 늘어났지만, 결코 아이들의 요구가 줄은 것도 아니었다.

제로썸이 아닌 삶에서, 어느 날 저녁, 나는 밥상머리에서 회사에서 있었던 걱정과 푸념을 술상 안주처럼 늘어놓고 있는 - 정확히 2개월 전과 똑같은 - 나를 발견했다.


세상을 잃은 듯 턱을 괴고 매일의 고됨을 안줏거리로 씹어가는 내 앞에서, 아이들은 점점 더 왜 자기 말을 안 듣냐며 퉁퉁대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에 대응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기에, 눈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기계처럼 입만 움직이며 똑같은 답을 반복했다.


“미안해, 엄마가 일을 나가서… 너희한테 많이 신경 못 써주네.

보드게임도 같이 하고 싶고, 책도 읽어주고 싶고, 텃밭도 함께 가보고 싶은데… 엄마가 너무 바빠. 출장도 많고, 팀장님께 보고도 해야 하고…”


며칠이나 그런 영혼 없는 사과를 밥상머리에서 되뇌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윤이가 자기 전에 조용히 내 얼굴을 부비며 말했다.


“엄마. 그래도 엄마는 여전히 멋진 엄마예요.”


…. 어제가 어버이날이었나? 순간 당황해서 휴대폰의 날짜를 더듬어 찾던 찰나, 유안이가 덧붙였다.


“엄마는 회사를 나가든 안 나가든, 우리를 정말 잘 돌봐줘요. 정말 멋있는 엄마예요.”




아이는 나를 벌써 위로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8살 아이에게 내 마음을 정확히 들켜 버렸다.

안타깝다고 해야할지 … 너무 빨리 커버린 내 아이였다.


어쩌면 지금 둘러대는 미안함과 푸념은, 모든걸 다 해내지 못하는 나에 대한 강박이자 변명일 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겉이 번지르르한 배달음식보다는, 내가 아무렇게나 휘저어 내놓은 계란말이와 그 위에 케찹 하트를 그려놓은 엄마의 반찬을 더 좋아하니까.


솔직히, 언젠가 아이들이 기억할 엄마와의 저녁은 - 내가 만든 반찬의 가지 수가 아니라 - 서툴지만 아이들 입맛을 적극 반영한 엄마표 요리 하나와 함께 앉아있던 저녁 시간을 더 기억할지도 모른다.




휴직기간은 아이들을 위해 집중하던 시간이 늘어나서 참 좋았던 시간이었다.

내가 미처 몰랐던 아이들의 습관, 친구들과의 관계, 선생님들과의 상담, 짧지만 친구 엄마들과의 작은 담소.

모든 것이 아이들을 위해 참 소중하게 쓰였던 가치있는 시간들이었다.


부러웠다. 아이들을 위해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는 다른 사람들이.

회사에 매여있지 않은 엄마, 또는 아빠가 집에 있는 아이들의 삶은 얼마나 다른 것일까.

조금은 원망이 되고, 내가 정말 아이들을 낳아 놓고 맞는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자꾸만 들어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휴직 기간이 한 달 정도 지나니, 금 새 그런 시간들이 공허하게 바뀌어 갔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쉼표의 삶이었는데도, 나는 지금의 이 시간이 마치 내 것이 아닌것 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더더욱 그 시간을 어떻게든 뭔가로 채워나가려 - 운동도 끊어보고, 점심 약속도 잡아보고, 영어 시험도 보고, 또 어떤날은 미술관도 가보며 - 아이들을 집으로 하교시키기 전까지 하루를 빼곡하게 채워나가곤 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 뭐해 ? 나 너무 심심해. 초딩맘은 원래 다 이런거야? "

" 야.... 뭘 심심해.. 애들 보내고 나서 넌 제발 좀 넌 쉬어. 그래도 돼! "


친구들은 쉴 줄 모르는내가 안타까운 것인지 한 마디씩 하며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이제 나이살 만큼이나 귀가 두터워져 인지 그런 말들은 나에겐 맞지 않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시간에 후회가 있지 않았다. 오히려 내 에너지의 양에 맞게 끔 시간을 알차게 쓴 것 같았다.

쉬는 것에 대한 아이러니 처럼 보이긴 했지만, 결국 이 소중한 시간을 통해 나는 조급한 듯 더 나를 채워가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의 힘듦은 결국은 지나갈 것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바쁘지만 회복해 나가는 내 모습에서 엄마이자, 엄마 개인의 삶을 응원할 줄 아는 아이들로 성장할 것이다.





그러니까 회사를 나감으로서, 아이들에게 더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것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회사를 나가던, 나가지 않던, 나는 원래 바쁘디 바쁜 삶을 살았을 테니까.


회사에서 지쳐 끝내 집에 돌아와도, 식탁에서 도란도란 우리의 하루를 솔직하게 공유 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좋은 엄마일 수 있다.


잠들기 전 같이 베게를 나눠 베며, 딱 한 권의 책을 읽어주며 사랑한다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새근새근 코를 골 때 까지 잘 자라 토닥여 주는 것만으로도, 아직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엄마이여 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정말 훌륭하게도, '위로를 할 줄 아는 아이'를 키워내고 있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지치지만, 아이들은 그런 나를 매일같이 “멋진 엄마”라고 불러준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를, 엄마이자 나 자신으로서를 잘 살아내고 있다는 위로가 된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