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주는 삶을 주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다른 기준을 가지기에, 더욱 빛날 수 있단다.

by 유시안


거저 얻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에게 줄게 많아서가 아니다.


무언가를 얻게 되는 과정에서 오는 깨달음과, 기어코 이뤄냈을 때 가질 수 있는 그 소중함과 기쁨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아이들과 스티커 다 붙이면 선물주기 미션을 주게 된 건 사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부터다.


그저 등원 준비를 시간 내 마치는 것만으로도, 혹은 양치를 아주 야무지게 잘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아이들은

스티커를 착착 모았고, 끝내 과자 한 봉지라도 사러 가곤 했었다.

그런 스티커 모으기 루틴이 이따금 시들해 질때쯤, 나는 조금 더 강한 선물로 아이들을 꼬드기곤 했다.

관성이 생겨버린 아이들을, 점점 더 더 자극시켜야 움직이기 마련이었으니.


하지만 이런 스티커 제도의 결과는 참담했다.

아이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스티커를 ‘요구’ 했고, 선물의 기대치도 점점 더 높아져 갔다.

오히려 나는 스티커를 볼모로 육아를 장악 당하고 있었다.




큰 아이가 학교라는 문턱에 다다르게 될 7살 중순 무렵, 나는 조금은 엄격해 지기로 결심했다.


스티커는 더 이상 아이들을 움직여 주는 사탕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스티커 하나라도 힘겹게 받아야 했다.

반드시 스스로 해야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집안 일 무언가 ( 장난감 정리, 옷 빨래통에 넣기, 물병 싱크대에 올려두기 등 ) 같은 것들 이었다.

특히 형과 동생간의 양보하는 순간 만큼은 더욱 아이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단, 어떤 순간에도 경고를 받게 되면, 다시 스티커는 떼어져 버렸다.

아이들은 부욱 - 찢어진 스티커 자국을 보며 대성통곡을 했지만, 어쨋거나 그 자국을 보며

아이들은 다시 생각하고, 왜 그런지를 이해해야 하며, 순간의 슬픔를 견뎌야 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는 관문은 더 높아졌다.

나이가 든만큼 아는것도, 스스로 해야 할 책임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나이는 가만히 있어도 따라오는 건데, 그에 따라 견뎌야 할 요율(ratio)가 높아진다는 건 억울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무언가를 채워야만 하는 성과식 결과가 낳는 폐해가 없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아직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무언가를 스스로, 그것도 아주 귀하게 해냈을 때 오는 칭찬,

무엇보다도 ‘성취감’이 가장 아이들을 앞으로 내딛게 하는 원동력이라 믿는다.


흔히들 알고 있는 ‘매슬로의 5단계 욕구‘에서도, 모든 단계를 넘어선 가장 마지막 단계는

타인으로부터의 존경보다는 자아실현 즉, 자기계발과 도전, 목적이 있는 삶인 것 처럼 말이다.




아이들은 스티커 제도에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

물론 오늘은 왜 안 붙여주냐고, 왜 안돼냐고,

간혹 명확하지 않은 기준으로 스티커를 떼거나, 형제 중 한명에게 한 개 더를 붙여 주는 순간에는

늘 항의가 빗발 치곤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우리집이라는 기준 속에 살고 있고, 우리집이 가진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 또한 아이들의 항의를 구태여 억압하거나 비판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또한 앞으로를 살아가는 연습이라는 생각에서 엄격하게 이야기 하려 노력한다.

“모두가 다 같을 수는 없단다.“ 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너희들의 하루는 남보다 더 값졌으면 좋겠다.

너희들의 노력은 더욱 진실되었으면 좋겠다.

구멍하나 없는 그런 단단함을 이뤄내어, 힘든 일이 와도 무너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당장의 겉치장에만 눈을 빼앗기지 말으렴.

기초가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너희들의 다짐 과정을,내가 당분간은 도와 줄테니. (너희들에게 미움을 받을 지라도)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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