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Englishmania
May 22. 2024
시를 쓰는 친구에게서 자신의 시가 게재된 이름도 생소한 월간 문학지가 배달되었다.
우선 처음 몇 분간은 무조건 반갑지. 공짜로 보내 주어 더욱 고맙고. 책을 펼치고 호흡대로 읽어 내려가노라면 너무 쉽게 책장이 넘어간다. 나야 뭐 시나 문학을 잘 모르니까. 물론 맨 뒤 정가까지 일거에 다 봐 버린다. 정가 8000원.
그 친구도 여느 글 쓰는 친구가 다 그렇듯이 별로 생활이니 씀씀이가 넉넉하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나서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한다. 과연 그 친구는 이 시를 기고하고서 고료나 제대로 받았을까? 노력한 대가는 고사하고라도 그것으로 원고지, 잉크 값이라도 된다면 좋으련만... 그러나 우리 주위의 문학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필경 이 친구도 자신의 시를 게재하는 조건으로 월간 문학지 몇십, 몇 백 권을 사서 내게 부쳐 준 게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글은 쓰되 투고하지는 않는다. 물론 내 글 솜씨가 형편없어 투고해 봐야 소용없는 일임이 분명한 것이 첫째 이유이고 설령 심사에 통과했다 손치더라도 원고료 받아 치부(?)할 만한 문학지나 신문이 얼마나 있을라고. 현대문학? 조중동?? 글쎄다. 외려 투고를 빌미로 ‘책 몇 백 권만 사 주신다면....’ 이런 조건으로 게재를 종용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아직은 때가 아닌 것이다. 사람은 다 때가 있다 하지 않은가. 글을 써서 밥을 먹고산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에서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처럼 월급쟁이로 사는 사람이 글을 써서 투고를 한다? 작품이 게재가 된다? 그러면 그다음 수순은? 정말 유수 신문이나 월간 잡지의 신춘문예라면 명성은 둘째치고 고료라도 쏠쏠하련만... 그런 경우에는 그 경쟁률이 몇 백대 일이 넘은 지 오래다. 더구나 IMF 체제 이후 누군들 글이야 못 쓰나? 더욱 돈을 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뼈 빠지게 한 달 일해야 몇 백만 원 벌지도 못하는데 투고 한 번하고 글 한 편 싣는 데 정말 몇십, 몇 백만 원어치 책을 사 줘야 한다면 이건 너무 사치스러운 취미다. 골프가 훨씬 싸게 먹히지. 그래서 월급쟁이는 글과는 자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도 글쎄다.
그러나 애당초 장사나 사업하는 사람들은 글을 쓴다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즉 글(문학)은 돈(장사)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이라는 거다. 월급이란 돈이 얼마나 공정한 일한 대가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월급체제가 유지되는 걸 보면 보편적인 기준은 있는 것 같다. 일한 만큼 받는 게 월급이니 적어도 부도덕한 돈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글은 좀은 부도덕하게 돈을 버는 장사나 사업하는 사람들이 써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적정 이윤이라는 게 있지만 장사야 때만 잘 만나면 폭리를 한들, 사업상 사기에 가까운 이윤을 낸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이런 눈먼 돈을 버는 사람이 글을 써 투고한다면 책 몇 백 권 사는 것이야 무슨 대수랴! 장사, 사업에서 한 건하면 그마만한 돈은 벌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우리 같은 월급쟁이야 한 달 벌어 빠듯하게 먹고사는 데 글 한 편 투고에 몇 백만 원이 나간다면? 고료를 받아 치부를 하여도 시원챦은 데 글쟁이 식구 모두 손가락만 빨고 몇 달을 견디며 ‘우리 엄마, 아빠는 자랑스러운 작가’나 되뇌며 지적 허영심으로 배를 채워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문학지를 보내온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대신 슬며시 치민 부아로 포장한 글을 보내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연극이, 미술이 제아무리 배고픈 작업이라 해도 아직도 희미한 불빛 아래 허름한 공간에선 예술 혼을 불어넣으며 땀 흘리는 젊은이가 부지기수이리라. 그들이 무식한가, 아니면 아직도 대한민국 파이팅인가! 글을 쓰는 내 친구! 시가 죽고 문학이 몰락하는 이 시대에도 스스로는 찬란하게 피어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자신을 찬연하게 밝히거라.
마음이 가난한 시인에게 사랑으로 글을 보낸다.